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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붙들고 싶다"…작별상봉 마친 이산가족, 또 한 번의 이별


입력 2018.08.26 14:18 수정 2018.08.26 16:13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어머니 한 풀었다"…태어나 처음 父 본 아들 "아버지 이해했다"

"화신백화점 있어? 파고다공원은?"…고향 삼청동 그리는 北 언니

"나이가 많으신데…이번이 마지막 아닐까" 기약없는 이별 '눈물'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 둘째 날인 25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최성순(안길자∙85) 할머니가 남측 동생 최성택(82) 할아버지 등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 둘째 날인 25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최성순(안길자∙85) 할머니가 남측 동생 최성택(82) 할아버지 등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어머니 한 풀었다"…태어나 처음 父 본 아들 "아버지 이해했다"
"화신백화점 있어? 파고다공원은?"…고향 삼청동 그리는 北 언니
"나이가 많으신데…이번이 마지막 아닐까" 기약없는 이별 '눈물'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인 26일 남북 이산가족들은 작별 상봉으로 또 한번의 이별을 나눠야 했다. 꿈에 그리던 휴전선 너머의 가족들을 만난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작별 상봉 및 오찬을 끝으로 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됐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지난 2박 3일 간 총 6차례에 걸쳐 12시간을 만났다. 남북 분단으로 잃어버린 지난 70여년의 세월을 12시간 안에 눌러담기는 부족했다. 또 한번의 이별을 앞둔 가족들 사이 아쉬움의 탄식과 눈물이 터져나왔다.

"어머니 한 풀었다"…태어나 처음 父 본 아들 "아버지 이해했다"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북측 아버지를 만난 조정기(67) 씨는 상봉 첫 날 아버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 아버지 덕용 씨는 6.25 전쟁 때 홀로 북으로 갔고, 당시 어머니 뱃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정기 씨가 있었다.

정기 씨의 어머니는 남편 조덕용 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불과 50여일 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정기 씨의 어머니는 그동안 68년 평생을 남편 덕용 씨를 기다리다가 끝내 숨을 거두셨다고 아들은 전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누나 리숙희(90) 할머니가 남측 동생 이용희(리용희, 89) 할아버지와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누나 리숙희(90) 할머니가 남측 동생 이용희(리용희, 89) 할아버지와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기 씨는 아버지를 만난 첫날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물을 봤다.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아버지를 만나는 회를 거듭할 수록 정기 씨의 표정은 밝아졌다. 정기 씨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어머니 대신 한풀이 했으니 이제는 그냥 좋아요"라며, 처음보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남측 취재진에게 "맞다. 처음에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으로 그랬던 거다"라고 털어놨다.

정기 씨는 "둘째 날 개별상봉 때 아버지께서 모든 말을 다 해주셨다"며 "그때 당시 올라가지 않았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에 납득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얼굴 봤으니 좋다"고 웃어보였다.

"화신백화점 있어? 파고다공원은?"…고향 삼청동 그리는 北 언니

과거 서울 종로 삼청동에 살던 북측 리현순(86) 씨는 남측 동생 이인숙(82) 씨 가족을 만나 어릴적 살던 동네를 그리워했다. 삼청동에 살며 중부세무소에 다녔다는 리 씨는 6.25 전쟁 당시 출근을 했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리 씨는 인순 씨에게 "화신 백화점 아직 있어?"라고 물었고, 인숙 씨의 아들 조카 맹용하(55) 씨는 "없어졌어요. 서울에 얼마나 큰 백화점들이 많이 들어섰는지…"라고 답했다. 인숙 씨는 "화신 백화점은 동네 구멍가게야. 얼마나 큰 것(백화점)들이 많이 들어왔는지"라고 설명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북측 심창길 (83)할머니와 남측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북측 심창길 (83)할머니와 남측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리 씨는 이어 "파고다 공원 있어?"라고 물었고 인숙 씨는 "있다. 삼청동 파출소도 있어. 우리집 파출소에서 조금만 걸어서 올라가면 됐잖아"라고 추억을 되짚었다. 조카 용하 씨는 "삼청동도 변했다. 외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걸어다니며 보는 관광코스가 됐다"고 지금의 삼청동을 설명했다.

과거 살았던 서울 삼청동에 대해 얘기하면서 리 씨는 다시 그리웠던 그곳에 가보고 싶어하는 눈빛이 가득해보였다.

"나이가 많으신데…이번이 마지막 아닐까" 기약없는 이별 '눈물'

북측 외삼촌 윤병석(91) 씨를 만난 심인자(76) 씨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며 "시간을 붙들어매고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인자 씨는 "기약없는 이별인데, 나이가 많으시니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아닐까"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잘 살고 있는지 정도의 안부라도 묻는 게 가능했으면 좋겠다"면서 "아무 거리낌없이 버스 타고 오고 싶으면 와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북측 언니 박영희(85) 씨를 만난 박유희(83) 씨는 언니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유희 씨는 휠체어에 탄 언니를 안으면서 "학생 때 헤어져서 너무 아쉬웠어. 다시 만날 날이 또 있겠지?…이게 무슨 불행한 일이야. 가족끼리 만나지도 못하고"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에 영희 씨는 "통일이 되면…"이라고 조용히 달랬고, 감정이 복받친 유희 씨는 "그 전에 언니가 죽으면 어떡해…"하면서 오열했다. 영희 씨는 끝까지 동생을 달래며 "내 죽지 않는다. 죽지 않아"라고 말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2회차 상봉행사 둘째 날인 25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동생 리재용(이재섭,80)이 북측 형 리갑용(83)의 손을 잡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2회차 상봉행사 둘째 날인 25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동생 리재용(이재섭,80)이 북측 형 리갑용(83)의 손을 잡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동안 단체상봉 내내 말수가 적었던 북측 오빠 정선기(89) 씨와 남측 여동생 정영기(84) 씨 남매는 작별상봉에서 만나자마자 오열했다. 영기 씨는 "아이고, 아이고…드디어 오늘이 왔구나"라며 통곡했고, 선기 씨는 우는 동생의 손을 쓰다듬으며 "이 오래비가 지혜롭지 못했다. 내가 큰 죄를 지었다"며 동생을 달랬다. 영기 씨는 아무 말 못하고 통곡했고, 오빠는 그런 여동생을 보며 눈물을 훔치고 "내가 미안하다"고 되풀이했다. 정 씨 남매가 꼭 붙어 우는 모습에 이를 지켜보던 북측 남성 보장성원은 눈이 벌게지도록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북측 동생 김점룡(87) 씨를 만난 김교남(91) 씨는 헤어짐을 앞두고 부모님 산소 가는 길을 설명하는 등 제사 얘기를 꺼냈다. 교남 씨는 "(너 만난 걸 부모님이 아시면) 엄마, 아버지가 좋아하실 거야"라고 말했고, 동생 점룡 씨는 "내가 가야하는데…구정에 가야하는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런 남동생을 지긋이 바라보던 교남 씨는 본 교남 씨는 "아이고…"라며 말을 잊지 못하고, 허공을 바라보며 마른 눈물 속 깊은 탄식을 내쉬었다.

남측 가족들은 작별 상봉 및 오찬을 끝으로 오후 1시 20분 금강산을 떠나 귀환길에 올랐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지난 20일부터 2박3일 간 남측 이산가족이 북측 가족을 만나는 1차 상봉을 마무리하고, 24일부터 26일까지 북측 이산가족이 남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으로 진행됐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량차옥 (82) 할머니와 남측 언니 양순옥(86), 동생 양계옥(79), 동생 양경옥(74), 동생 양성옥(71), 동생 양영옥(77) 등 6자매가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량차옥 (82) 할머니와 남측 언니 양순옥(86), 동생 양계옥(79), 동생 양경옥(74), 동생 양성옥(71), 동생 양영옥(77) 등 6자매가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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