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체제' 바라보는 한국당이 속으로 웃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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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 체제' 바라보는 한국당이 속으로 웃는 이유
    '불통‧버럭' 성격에 각종 구설 등 정치적 흠결 적지 않아
    야권에선 내심 '자책골' 기대…"여권 내부 갈등 빚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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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8-27 01:00
    이충재 기자(cj5128@empal.com)
    '불통‧버럭' 성격에 각종 구설 등 정치적 흠결 적지 않아
    야권에선 내심 '자책골' 기대…"여권 내부 갈등 빚을 것"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8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해찬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로 뽑히자 자유한국당은 "보수를 향한 날선 인식은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날을 세우면서도 내심 반색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이 대표의 독설은 물론 '불통‧버럭' 성격이 여권에 악재로 작용하는 등 자책골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26일 "워낙 이미지가 좋지 않고, 독선적인 분이라 국민 눈높이에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도 "우리 입장에선 이해찬 체제가 시작되면 여야 선명성이 강화될 것"이라며 "나쁠 게 없다"고 했다.

    실제 이 대표의 정치사를 돌아보면 각종 논란과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바늘 하나 꽂아 넣기 어려울 것 같은 경직된 성격과 고압적 태도는 정치인으로서 한계로 지적된다. 당내에서도 그를 상대하는데 어려워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송영길 의원은 "나도 4선 의원이지만 이해찬 후보에게 전화드리기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 입문 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1988년 13대 총선 때 36세 나이로 금배지를 단 뒤 서울 관악을에서만 내리 5선을 했고, 세종시로 지역구를 옮겨 두 차례 총선 승리를 거뒀다. 이번 전대 과정에서 "나는 30년 동안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번도 안 떨어졌다. 왜 떨어지죠"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 2011년 8월 17일 이해찬 전 총리와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혁신과 통합 제안자 모임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세가도'에 드리운 '불통‧오만‧고압적' 이미지

    현역 국회의원 가운데 그가 '선배'로 부를 사람은 사실상 없다. 문희상 국회의장이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국회 입문은 이 대표 보다 4년씩 늦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노무현 전 대통령 보다 먼저 장관으로 입각했고, 노무현 정부 때도 국무총리를 지내며 문재인 대통령 보다 상석에 앉았던 이 대표다.

    그래서 일각에선 이 대표가 전대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문 실장'이라고 지칭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분의 옛날 직함을 얘기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이라는 지적이다. 여권에선 "대통령마저 하대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특유의 불같은 성격으로 인한 돌출행동이나 발언 등이 위험요소로 꼽힌다. 보좌진이나 주변 인사, 기자들에게도 거친 언변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워낙 정치입문한지 오래돼서 웬만한 주변사람은 자신의 아래로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해찬 신임 당대표가 두 팔을 들어올려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생방송 중에도 '버럭' 고집스러운 '골프사랑'

    2012년 6월 5일 생방송 라디오 인터뷰 중단 사건은 이 대표의 성격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전대 후보로 나섰던 이 대표는 대북 문제와 관련한 진행자의 질문에 "원래 취지에 맞는 질문을 하라. 그래야 답변을 한다"는 훈계조 질책을 남기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사회자는 진보성향의 평론가 김갑수씨였다. 그가 청취자와 국민을 어떻게 보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당시 상임고문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이 대표가 전대에서 고전한 이유 중 하나가 생방송 사고 때문이었다. 매우 잘못했다"고 지적했다.

    고집스러운 '골프 사랑'과 얽힌 뼈아픈 기억도 안고 있다. '골프광'인 이 대표는 집중호우로 수해가 나고, 산불이 나도 골프를 즐기다가 결국 2006년 3.1절 골프파문으로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삼진아웃이었다.

    이 대표는 당시 논란이 커지자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는 등 수습에 나섰으나 들끓는 여론을 잡진 못했다. 당초 유임에 무게를 뒀던 노무현 대통령은 마음을 바꿔 사표를 6시간 만에 수리했다. 당시 노 대통령에게 '이해찬 사퇴'를 직언한 인물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이었다.[데일리안 = 이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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