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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盧정부 국무총리에서 文정부 여당대표로…이해찬은 누구?


입력 2018.08.25 19:48 수정 2018.08.25 20:27        김민주 기자

국회의원 선거 7차례 출마, 7차례 당선 '선거의 귀재'

6년만에 당대표 복귀 "2012년 사퇴 안했으면 文대통령 당선"

국회의원 선거 7차례 출마, 7차례 당선 '선거의 귀재'
6년만에 당대표 복귀 "2012년 사퇴 안했으면 文대통령 당선"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3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연설을 마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두 팔을 들어올려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3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연설을 마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두 팔을 들어올려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해찬 의원이 25일 오후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8·25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해찬 신임 대표는 1952년생 7월 10일생으로 올해 66세이며, 고향은 충청남도 청양이다.

이 대표는 용산고등학교를 나와 1972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이해 10월 유신이 단행되자, 이 대표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민청학련 사건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돼 두 번의 옥살이를 했다.

1985년 대학을 졸업한 이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1988년 서울 관악을에서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첫 발을 디뎠다. 이후 이 대표는 이 지역구에서 17대 국회의원까지 5번 연속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며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이 대표는 교육부장관을 맡았다. 노무현정부에서는 국무총리에 올라 실권을 가진 '책임총리'로 중책을 맡기도 했으며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특별자치시의 건설을 직접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민정수석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과는 가까운 사이다. 이 대표는 당권 레이스 기간 중 문 대통령과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의 관계로 교류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문 대통령을 당시 명칭으로 편하게 '문 실장'이라고 호칭했다가 경쟁 후보들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19대 총선 때는 세종특별자치시에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공천에서 탈락했는데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세종에서 다시 당선, 7선 고지에 올랐다. 7번의 국회의원 선거 동안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았다.

'킹 메이커'라고 불리는 이 대표는 대통령 선거 전략에도 관여해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15대 대선에서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았고 이후에도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이 대표는 이날 선출로 6년만에 당대표 자리에 복귀했다. 지난 2012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당대표로 선출된 바 있는 이 대표는 이후 18대 대선을 앞두고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당시 후보 측의 요구로 지도부 총사퇴를 결의하고 당대표직을 사퇴했다.

이번 당권 레이스 과정에서 이 점을 공격받자, 이 대표는 태연하게 "2012년 안철수 후보가 나보고 당대표를 사퇴해야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고 해서 당대표를 사퇴했다"며 "내가 사퇴를 안하고 당대표로 (대선을) 이끌었으면 선거에서 이겼을 것"이라고 맞받기도 했다.

△1952년 충남 청양 △용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돌베개 출판사 대표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관악을 국회의원 △교육부장관 △참여정부 국무총리 △민주통합당 당대표 △제13·14·15·16·17·19·20대 국회의원

김민주 기자 (minjoo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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