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 연남동, 문 닫은 기사식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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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 연남동, 문 닫은 기사식당들
    연남동 식당거리, 서울미래유산 선정된 지 1년 만에 뒤안길로
    택시 기사들도 연남동 기사식당에서 밥 안 먹는 것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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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9-12 11:30
    이혜진 에디터
    ▲ ⓒ소셜콘치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기사식당들이 줄지어 문 닫았다. 연남파출소에서 북쪽으로 약 400m 구간에 걸쳐 늘어섰던 기사 식당들은 이젠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2015년 개업해 같은 해 MBC <무한도전>에 소개된 ‘감나무집 기사식당’과 도보로 6분 거리에 있는 41년 전통의 ‘연남동 돼지구이 백반’ 두 곳 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지 불과 1년여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연남동 기사식당거리’. 30년의 세월이 3년 만에 뒤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 ⓒ소셜콘치

    ‘연남동 토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60대 택시 기사 A씨는 “요즘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연남동) 기사식당에서 밥을 잘 안 먹는다”며 “예전처럼 싸고 양 많은 데가 없다”고 말했다.

    주차 문제도 지적했다. A씨는 “3년 전만 해도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옆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식당 거리) 바로 옆에 경의선숲길공원이 생겨 주차장들이 공영주차장이 됐다. 그러면서 돈을 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 ⓒ소셜콘치

    지난 2015년 공원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기사식당들은 마포구 시설관리공단에 한 면당 하루 3만5000원을 내고 점포 옆 주차 공간을 전용으로 썼다.

    하지만 공원이 완공된 후 연남동이 젊은 층의 ‘핫 플레이스(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로 떠오르자, 구청은 같은 해 8월 기사식당거리 인근 주차장들을 돈을 내고 이용하는 공영주차장으로 바꿨다.

    그러면서 기사식당거리는 몰락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택시운전사들이 매번 유료주차장에 차를 댈 수는 없는 노릇.

    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동네가 좋아지면 임대료 높아져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현상)’과 기사식당의 ‘박리다매(이익을 적게 보면서 많이 판매)’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동네를 찾는 젊은 층이 기사식당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 ⓒ소셜콘치

    취재를 위해 최근 ‘감나무집 기사식당’에 들어갔다. 이어 ‘연남동 돼지구이 백반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식사하는 동안 택시 기사와 젊은 고객을 찾긴 어려웠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성 고객 한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근에서 일하는 중장년층의 남성 고객들이었다.

    두 식당의 차이는 바로 옆에 주차장이 있냐의 여부와 고객 수의 차이. 주차장이 있는 ‘감나무집 기사식당’의 경우 고객은 많았지만 주차장에 택시는 없었다. 식당 앞 도로를 지나치는 차들 중엔 일반 승용차보다 택시들이 많았다. ‘연남동 기사식당거리’라고 불리던 식당 옆 도로는 요즘도 기사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 ⓒ소셜콘치

    ‘연남동 돼지구이 백반’ 길목에서 차를 운행하던 40대 택시기사 B씨는 “여기가 (상수동) 홍대입구역 출구에서 걸어서 10분밖에 안 되는 곳인데 연남동이 아무래도 교통이 불편하다보니 그쪽 근처에서 택시를 타는 분들이 많다”며 “(기사식당거리라 불리던 곳)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에 화교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깔려있다”고 전했다.

    B씨의 말을 듣고 ‘연남동 돼지구이 백반’에서 TV에 자주 출연해 유명해진 요리사 이연복의 식당 ‘목란’으로 이동했다. 식당은 기본요금 3000원만 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이제 연남동을 찾는 젊은 층 중 상당수는 택시를 타고 ‘연희맛로’에 간다. 그 곳에 ‘목란’을 포함해 화교들이 운영하는 유명 중식당들이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택시가 많은 길목, 완비된 주차장, 높은 회전률에도 연남동 기사식당들이 줄줄이 문을 닫은 또 다른 이유다.

    ▲ ⓒ소셜콘치

    ‘연남동 기사식당은 택시 기사들이 찾지 않는다’고 단언할 순 없다. ‘연남동 기사식당거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유명 빵집인 ‘리치몬드 과자점’ 성산동 본점과 도보로 5분 밖에 차이나지 않는 곳, 연남동과 성산동을 가로지르는 도로 바로 옆에 ‘연희동 할머니네’이라는 기사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생선구이 백반을 전문으로 하는 이 곳은 오후 12시 40분쯤 식당 옆 전용주차장을 찾았을 땐 이미 택시로 꽉 차 있었다. 남아있는 한 자리에 간신히 주차한 택시와 아쉽게 발길을 돌린 택시도 눈에 띄었다.

    ‘연희동 할머니네’의 메인 메뉴인 ‘생선구이 백반’의 가격은 7000원. ‘감나무집 기사식당’과 ‘연남동 돼지구이 백반’에서 가장 싼 ‘돼지불고기 백반’이 8000원인데 비해 천 원 더 싸다. 게다가 이 곳은 공원과 떨어져 있어 무료 주차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차 공간이 넓지 않아 주차 금지 안내문에도 도로에는 불법 주차된 택시들로 가득했다.

    ▲ ⓒ소셜콘치

    대조적으로 ‘연희동 할머니네’ 건물에 나란히 입점한 또 다른 기사식당들은 같은 메뉴와 같은 가격에도 손님이 없었다. 한 식당을 건너 위치한 ‘원조 시골집 할머니네’의 경우 ‘연희동 할머니네’와 더불어 ‘원조’를 내세웠지만 매장의 불은 꺼져있었다.

    골목에 차를 주차했던 60대 택시 기사 C씨는 “두 식당 모두 원조는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던 ‘진짜 원조’는 문을 닫았다”면서도 “그나마 여기가 유일하게 전용 주차장이 있는 데라 맛은 잘 모르겠지만 자주 찾는다”고 밝혔다.

    문 닫은 ‘연남동 기사식당거리’ 식당 중 가게를 옮긴 곳도 있다. 서교동으로 이전한 ‘조박사복해장국’이다.

    ▲ ⓒ소셜콘치

    가게를 이사한 이유에 대해 ‘조박사복해장국’ 관계자는 “(공원이 생기기 전인) 4년 전만 해도 (택시)기사들만 하루에 백여 명이 왔다”며 “(가게를 옮기기 전인) 지난해엔 하루에 3~4명 올까말까 했다”고 전했다.

    한편, 마포구는 ‘연남동 기사식당거리’로 불리던 경의선숲길공원 인근의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연남동의 한 연립빌라 자리에 공영주차장 건설 사업을 추진 중이다.[데일리안=이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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