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폐기 담보되지 않는 정상회담은 짐만 만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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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 폐기 담보되지 않는 정상회담은 짐만 만들뿐
    <칼럼> 고비마다 돌파구 열어준 한국…제재 불사하고 북한 도우라?
    문 대통령의 진의는?…과거 두 대통령 평양행, 북한 기고만장만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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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8-13 08:23
    이진곤 언론인
    <칼럼> 고비마다 돌파구 열어준 한국…제재 불사하고 북한 도우라?
    문 대통령의 진의는?…과거 두 대통령 평양행, 북한 기고만장만 초래


    ▲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4월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남측 문재인 대통령과 북측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오늘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린다. 이 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시기‧장소‧방북단 규모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합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사전 조율은 끝난듯하다. 이달 안에 열 것인지 아니면 다음 달로 넘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정사실화된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다는 조건이 전제되지만….

    작년 1월 취임한 드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선배 대통령들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며 취임 초부터 무력시위에 나섰다. 그 바람에 한국과 그 주변 해역은 한동안 미국 최신 전략무기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트럼프는 이와 함께 어느 때보다 강화된 국제사회의 대북경제제재를 이끌었다.

    고비마다 돌파구 열어준 한국

    김정은으로서는 체제의 붕괴를 예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기상천외의 돌파구가 필요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거니와, 그도 구멍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 김정일이 찾아서 뚫고 나갈 수 있었던 그 구멍, 즉 남쪽의 대한민국이었다. 그때처럼 진보좌파가 한국의 정권을 장악했다. 물실호기(勿失好機)! 그는 낚시를 던졌고 한국정부는 지체 없이 이를 물었다.

    김정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은둔의 독재자’에서 ‘통큰 지도자’로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김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이라는 필생의 소망을 이루었지만 김정일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체제회생이란 성과를 거뒀다. 그 아들 김정은은 남‧북정상회담, 미‧북정상회담을 거치며 ‘고사총 살인자’에서 ‘친근감‧신뢰감을 주는 젊은 지도자’로의 변검(變瞼: 가면을 순간적으로 바꾸는 마술)에 성공했다. 동시에 체제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게임을 주도하려는 욕심을 드러낼 만큼의 여유까지 얻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독재체제다. 주민의 신뢰는 고갈됐고 경제적으로는 파산상태에 이르렀지만 고비마다 국제사회, 특히 한국이 독재 비용을 대주며 소생시켰다. 최근 전개되는 양상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최대 현안은 북한의 핵 위협이다. 저들은 핵무장 완성을 선언한 상태이고 우리는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처지다.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해야 할 때 우리는 오히려 동맹관계를 이완시킬 궁리나 하는 인상을 주었다. 그 틈새를 놓칠 북한이 아니다. 대남 선전매체 ‘우리끼리’에 실린 ‘외세에 대한 맹종맹동은 판문점 선언 이행의 장애물’이라는 제목의 글이 바로 그들의 전형적인 이간 술책이다.

    이 글은 “남측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여건>이란 미국과 유엔의 대조선제재가 해제되었을 경우라며 그 누구의 비핵화가 이루어졌을 때로서 이를테면 저들은 감나무 밑에 가만히 누워 홍시가 저절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글은 또 “지금은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정치적리속이나 체면유지를 위해 급급할 때가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제정신을 가지고 진정으로 북남관계개선을 위해 나서야 할 때”라고 억지를 부렸다. 언론보도로는 그렇다.

    제재 불사하고 북한 도우라?

    후안무치도 유분수다. 핵무기로 우리 5000만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면서도 그 문제는 거론하지 말라고 한다. 대가도 없이 홍시를 먹겠다는 것이냐고 되레 호통이다. 언제 북한 김정은 집단이 우리의 살뜰한 ‘민족’이었다는 것인지 부터 설명해주면 좋겠다. 70여 년간 우리를 후견해 온 미국에 등 돌리고 자신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라는 협박이기도 하다. 참으로 꿈도 야무지다.

    지금 한국 정부는 북한산 석탄 도입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이른바 ‘고위관계자’가 지시하지는 않았겠지만, 북한을 돕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수입업자나 발전소 등이 겁 없이 미국과 유엔의 제재를 무시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북한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에 걸리면 우리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게 불을 보듯 한데도 미국 의식하지 말고 자신들을 도우라고 한다. 저런 억지의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만만하게 보인 탓이겠다. 그래서 GDP규모 세계 11~12위를 오르내리는 우리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북한의 눈치나 살피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북한의 이런 태도로 미루어 오늘 세부 일정이 합의된다는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핵 폐기는커녕 한반도 비핵화문제조차 구체적으로 논의되긴 틀렸다. 그 문제를 의제로 삼자고 했다간 회담자체를 보이콧 당하기 십상이다. 이미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면 북한 비핵화문제는 의제에 없다고 봐야 한다.

    사실 지난 4월 27일의 남북정상회담도, 국민은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하기 위해서 추진된 것으로 알았다. 정부는 정상회담만 이뤄지면 모든 문제가 풀릴 듯이 국민의 기대감을 충동질하더니 ‘판문점 선언’이라는 것에는 북한 핵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기껏 넣었다는 게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라는 모호한 표현들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큰 진진이나 있었던 것처럼 포장했고, 그 결과를 가지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미‧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서른 너 댓살의 김정은이 예순 다섯 살의 문 대통령을 시켜 트럼프와의 회담을 주선토록 한 것이다. 최근에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설로 알려진 것이지만 김정은은 1년 내 비핵화를 해내겠다고 문 대통령에게 약속했고, 문 대통령은 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다(그게 아니었다면 볼턴이 거짓말을 한 게 된다).

    미국과 북한간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미군유해 55구(구라고 하기보다는 55개의 관이라는 게 옳겠지만) 송환 이외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곧 네 번째로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하나 크게 기대할만한 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비핵화에 동의했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서 핵 지식은 보존할 것이다.” 지난 10일 이란의 알리 라리자니 의회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했다는 말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이루려면 미국이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이를 거부한다”는 말도 했다. 미국이 자신들의 잔꾀에 넘어가주지 않는다면 비핵화는 안 하겠다는 것이다. 비핵화를 하더라도 핵 지식과 기술까지 포기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통보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진의는 무엇인가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만남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분위기다. 김정은이 두 번의 판문점 회담에서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문 대통령이 어느 선까지 양해를 하겠다고 했는지, 3번째 만남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기대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직접 말한 적이 없다.

    문 대통령과 그의 대북정책 핵심참모들이 진보좌파적 마인드와 이념을 감안한다고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보다. 설마 김정은 체제와 국가 목표를 공유하고 있기야 하겠는가. 북한 체제가 우리에게 지나치게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기염을 토했듯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믿음에서일까? ‘모든 통일은 선(善)’이라고 한 장준하의 말을 믿어서인가?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자신의 신조 때문일까?

    김정은 집단이 ‘선(善)의 군단’(조지 버나드 쇼가 영국의 박애주의자들에 붙여준 칭호.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 주변국 침략의 의도가 명백해졌을 때조차 평화지상주의자들은 전쟁준비론자들을 거칠게 공격하거나 야유하며 영국의 정치를 이끌고 있었다)은 아니지만 ‘악의 축’도 아니라는 믿음을 가진 인상이다. 개인으로서 어떤 신념‧신조를 갖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호리(毫釐)의 오판도 허락되지 않는다. “백성의 생활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마침내 출현하신 것 아닌가”라고 김정은에 찬사를 보냈던 이낙연 국무총리의 인물평이 문 대통령에게서 비롯된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어 하는 말이다.

    과거 두 대통령의 평양행이 북한의 기고만장과 우리의 부담가중만 초래했다. 그 후로 한반도 안보상황은 더 악화됐다. 문 대통령의 평양행이 남북한 간 선도적 종전선언, 대북 제재 완화로 나타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되지만 만에 하나 그 비슷한 합의라도 하는 날에는 정전협정 폐지→평화협정 체결→유엔사 해체→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해체가 ‘한반도 비핵화’의 우선적 과제로, 북한에 의해 주장되기 십상이다. 북핵 폐기는 그 모든 과제가 이뤄진 후 논의될 수 있는 과제로 우선순위가 밀릴 테고….

    이게 다 기우라는 말을 청와대로부터 듣고 싶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폐기를 확고한 원칙으로 강조할 것이며, 북한과의 각종 협력사업은 그 후에라야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할 것이라는 의지 또한 확인하고 싶다. 거기에 더해, 적어도 북한의 핵‧미사일‧생화학무기 폐기에 관한한 한‧미간 공조체제는 결코 틈새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보장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받고 싶다. 과욕인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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