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된 '클린디젤'의 말로…사라지는 디젤 승용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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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11월 15일 20:30:28
    허황된 '클린디젤'의 말로…사라지는 디젤 승용차들
    디젤 승용차 없다고 욕먹던 현대차, 기껏 개발한 디젤차 '용도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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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8-11 06:00
    박영국 기자(24pyk@dailian.co.kr)
    ▲ 디젤모델이 사라지는 현대차의 승용차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랜저, i30, 쏘나타.ⓒ현대자동차

    디젤 승용차 없다고 욕먹던 현대차, 기껏 개발한 디젤차 '용도폐기'

    한때 고연비의 장점만 부각돼 ‘클린디젤’로 불리던 디젤 승용차가 사양길을 걷고 있다. 디젤엔진이 질소산화물(NOx)과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며 규제가 강화돼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디젤 모델 축소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1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국내 디젤 승용차의 배출가스 측정 기준이 국제표준시험방식(WLTP)으로 더 엄격해진다. 9월부터 생산되는 차종 중 새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차종은 판매가 금지되고, 9월 이전 생산된 차종도 새 기준에 미달하면 3개월 유예 이후 12월부터 판매할 수 없다.

    WLTP는 기존의 유럽연비측정방식(NEDC)보다 한층 강화된 테스트 기준이 적용된다. 급제동과 급가속 등 실제 도로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최대한 반영해 실주행 연비는 10% 이상 떨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나아가 내년 9월부터는 연구원들이 실도로에서 직접 차량을 운행하며 배출가스를 측정하는 실주행테스트(RDE)까지 적용되는 등 앞으로 디젤 차량의 규제는 더욱 강화된다.

    이에 따라 자동차 업체들은 강화된 기준에 맞춰 자동차를 생산하느라 원가 부담이 높아져 차량 가격을 올리거나 디젤 모델을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10일부터 국내 공장에서 그랜저와 쏘나타, i30, 맥스크루즈 등 4개 차종의 디젤모델 생산을 중단했다.

    이들 중 단종을 앞둔 맥스크루즈를 제외한 3개 모델은 모두 승용 라인업이다.

    기아차 역시 현대차의 그랜저, 쏘나타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K7과 K5의 디젤모델 운영을 지속할지 여부를 조만간 결정해야 한다. 현대차처럼 디젤 생산을 멈추거나 환경 규제에 맞추느라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아차는 앞서 올해 2월 준중형 승용차 K3 풀체인지 모델을 출시하면서 엔진 라인업에서 디젤 엔진을 제외한 바 있다.

    현대·기아차가 이처럼 승용차 부문에서 디젤 라인업 정리에 나서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새로운 규제에 맞추려면 대당 평균 200만원 내외의 원가상승 요인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의 경우 여전히 디젤 모델이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가격을 올리건 마진을 줄이건 어떤 식으로든 규제를 맞춰야 한다.

    SUV 라인업의 경우 현대차 싼타페는 지난 2월 풀체인지 모델을 출시하며 규제에 맞췄고, 현대차 투싼과 기아차 스포티지 역시 최근 페이스리프트 모델과 상품성 개선 모델을 내놓으면서 강화된 측정 기준을 충족시킨 상태다.

    하지만 디젤 비중이 낮은 승용차까지 무리해가며 디젤 모델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랜저 디젤은 전체 판매의 4%, 쏘나타 디젤은 2%에 불과하다”며 “대부분 차종에서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가 디젤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대·기아차가 불과 7~8년 전만 해도 디젤 승용차 라인업이 약하다고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디젤엔진의 고연비 특성만 부각시켜 ‘클린디젤’이라는 미명 하에 친환경차에 포함시키는 등 디젤차를 장려했고, 그런 분위기 탓에 현대·기아차는 소비자들로부터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고연비 디젤엔진을 개발하는 동안 허송세월을 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일부 업계와 정치권에서는 ‘디젤 택시 보급 지원’을 주장하거나 이와 관련된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 사이 폭스바겐·아우디는 디젤 승용차를 국내에 대거 들여오며 ‘디젤 전도사’로 불렸고, BMW와 벤츠도 다양한 디젤 모델들을 앞세워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넓혔다.

    결국 현대·기아차도 시장 방어를 위해 2014년부터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 K7, K5, K3 등 승용 라인업에 디젤 모델을 추가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러다 다시 디젤엔진이 질소산화물(NOx)과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며 기껏 개발해 놓은 디젤 승용차를 단종시키는 상황이 된 것이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관점으로 보면 단순히 연비가 좋다고 ‘클린디젤’이라는 용어 자체가 허황된 것인데 디젤 승용차를 팔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다는 취급을 받았던 게 아이러니하다”면서 “자동차 업체의 기술 개발 방향성은 한때의 유행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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