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국가주의 논쟁,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국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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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12월 13일 16:20:28
    김병준의 국가주의 논쟁,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국가는?”
    <칼럼> 한국당, 자중지란과 메신저 불신…정비 시작 첫 일성 ‘현정부 국가관’
    ‘적폐청산’ 드라이브 약발 다한 듯…‘전정권탓’이 만능 해법일 때는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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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8-05 05:00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칼럼> 한국당, 자중지란과 메신저 불신…정비 시작 첫 일성 ‘현정부 국가관’
    ‘적폐청산’ 드라이브 약발 다한 듯…‘전정권탓’이 만능 해법일 때는 지나


    ▲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병준 교수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지 보름 이상 지났다. 그동안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 지금의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기에, 보수진영에서는 기대가 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대보다 ‘한숨을 돌렸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평가하기는 좀 이르지만, 김병준 체제 첫 일성은 나쁘지 않았다. ‘국가주의 논쟁’이다. 우리 정치에서 모처럼 보는 신선하고 의미있는 논쟁이다.

    국가와 시장,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현대 민주주의국가의 대표적인 숙제다. 정답은 없지만 어느 사회나 나름의 방향으로 정립해야 하는 문제다. 우리 현실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현정권의 정체성과 정책의 성격에 관련된 논쟁이기에 때문이다. 이제 그럴 시점이 됐다.

    지금 한국정치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있다. 방향을 잘 잡으면 새로운 도약이 기다리겠지만, 자칫 실수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키를 잡으면 낭떠러지 폭포다. 국제정치가 그렇고, 한반도 정세가 그렇다. 대한민국호가 순항을 하느냐, 지난 70년의 성과까지 날려 버리고 ‘폭망’하느냐, 또는 침체의 길을 가느냐 갈림길에 처해있다. 이런 격변기에 대처하는 정부여당은 많이 불안하다. 아마추어 같다. 좌충우돌이다. 경제적으로 세계는 호황인데, 우리만 거꾸로다. 안보적인 측면에서 세계는 ‘힘의 경쟁’을 하는데, 우리는 인륜과 정을 앞세운다. 남북관계에서도 북핵은 뒷전이고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이산가족상봉에 매달린다. ‘나라다운 나라’를 말하는데, 정확히 그들이 추구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국민들은 알 수 없다. ‘약자 편에 서는 정치’를 주장하는데, 진정한 약자는 현 정부들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집권 1년이 넘도록 이를 비판하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야당이 지리멸렬이었기 때문이다. ‘현정권이 추구하는 국가는 무엇인가’ 질문해야 할 야당이 자중지란과 메신저 불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1야당인 한국당이 정비를 시작하고, 첫 일성이 ‘현정부의 국가관’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정치학에서 “국가주의(國家主義, Statism)”는 ‘국가를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 인정하고 국가 권력이 경제나 사회 정책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조를 의미’한다. (출처 : 위키백과) 일단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이는 것 같다. ‘국가주의’는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좌우의 끝에 위치한다. 한쪽은 파시즘이고, 한쪽은 소비에트 독재다. 둘 다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정부형태는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치스타일도 이런 요소가 있었기에 헌법재판소에 서야했다. 그 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 개인을 내세우며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그러나, 그 통치행태는 박근혜 정부에 비해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이는 시민친화적인 정부를 너무 폄하하는 것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지 모른다. 지나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쯤 그런 논쟁이 있고,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역사의 실패를 반복할 뿐이다. 독일 나치 정부도 국민이 세운 정부다. 초기에는 열열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국민(의회, 시민사회)통제가 안 되었기에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선의를 믿고 맡기는 시스템이 아니다. “견제와 균형”가 강조되는 이유다.

    여권은 김병준 위원장이 국가주의 문제제기를 했을 때 대응하지 않았다. 가공할 비판인데도 말이다. 왜일까? 무시전략? 다른 데 정신이 팔려서?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휴가 중이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와 안보가 가장 중요한 숙제다. 그러나 그 문제에만 매몰된다면 진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머리만 아프고 해법을 찾지 못할 수 있다. 문제는 ‘국가관’이고 그에 기초한‘통치 스타일’이다. 거시서부터 시작해야 할 때다. 현 정부가 국가를 어떻게 보는가? 현 정부의 정책이 국민과 시민사회를 존중하는가? 국민의 삶을 위한다고 하면서 선동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국회, 야당 등 민주주의 국가시스템에 상응한 대접을 하는가? 독선과 아집에 빠져 사실과 진실을 외면하지는 않는가?

    문제제기가 있다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국가주의’가 이념적으로 좌우 극단이라고 하면, 중간지역 ‘중도보수’와 ‘중도진보’가 대안이 되야 한다. 표준분표상 가장 많은 국민이 포함된 구간이고 합리성을 중시하는 영역이다. 합리적 보수는 ‘시장’을 중시한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간여가 민생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 시민사회의 DNA다. 인권도 중시한다. 개인의 양심과 표현, 사상의 자유는 하늘이 인간에 준 신성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자유시장과 북한인권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뼈대로 한다.

    반면 합리적 진보는 시민사회를 강조한다. ‘이게 나라냐?’는 질문은 시민사회를 무시하는 독단적인 국가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보면 좌우극단의 중간쯤에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가 있고, 중간인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중간쯤에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ony Giddens)의‘제3의 길’이 있다. 이념보다는 실용주의를 강조한 사상이다. 지금 한국의 합리적 진보는 ‘제3의 길’의 다른 버전이다. 원형적이 ‘막스-레닌주의(Marxism·Leninism)’는 이미 역사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그 다음 좌파의 대안은 ‘포퓰리즘(populism)’이다. 포퓰리즘도 절대적인 국가의 위상을 전제로 한 것이다. ‘국가주의’의 다른 형태다. 힘의 원천은 무력이 아니고 여론지지다. 무력은 더 큰 무력으로 막을 수 있지만, 여론지지는 스스로 망가져 정신을 차릴 때 까지는 해법이 없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많은 정치인, 나라가 그 길을 갔는데, 지금도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피할 수 없는 유혹이라면 그 위험을 충분히 흡수할 정도의 연착륙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정부 정책은 경착륙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법정 근무시간 단축, 재정으로 일자리 창출, 탈원전 등등... 모두 국고로 그 간극을 막겠단다. 국고는 화수분이 아니다. 그동안 쌓아 놨던 국고가,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그래서 현 정부가 좌파정권이란 비난을 듣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 중반에 들어섰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할 때다. ‘적폐청산’ 드라이브도 약발이 다한 듯 하다. ‘전정권탓’이 만능 해법일 때는 지났다. 야당도 자리를 잡아간다. 지금쯤 차분히 점검할 때다. ‘국가주의 논쟁’이 그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치열하게 논쟁하길 바란다. 그래서 국민이 수긍하고 합의하는 결론을 도출하기 바란다. 그래야 일을 해도 힘이 생긴다. 이게 민주주의의 힘이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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