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기자의눈]한국지엠 노조, 스스로 가치 깎아내리지 말아야


입력 2018.07.25 13:53 수정 2018.07.25 14:10        박영국 기자

생산-R&D 공존보다 중요한 것은 생산부문 자체의 경쟁력

한국지엠 노조가 24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공장 노동조합 지부에서 '신설법인반대 구조조정 중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데일리안 한국지엠 노조가 24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공장 노동조합 지부에서 '신설법인반대 구조조정 중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데일리안

생산-R&D 공존보다 중요한 것은 생산부문 자체의 경쟁력

한국에 ‘글로벌 제품 개발 업무를 집중 전담할 신설 법인’을 마련한다는 제너럴모터스(GM)의 계획이 한국지엠 노조의 반대에 부딪쳤다. 한국지엠 노조(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R&D법인 설립은 또 다른 구조조정 음모”라고 반발하며 결사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R&D법인 설립은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GM International) 사장이 얼마 전 내놓은 한국지엠 경영정상화 계획 몇 가지 중 하나다. 나름 한국에 제시한 ‘선물 보따리’ 중 일부인데, 노조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의 불안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GM은 지난 2월 13일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나 노조와 사전 협의는커녕 미리 언질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그런 원죄(原罪)가 있으니, 무슨 일만 벌이면 제2의 군산공장 사태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도 하다.

노조의 주장대로 생산부문과 R&D 부문을 분리해 놓으면 향후 GM이 한국 철수를 결정할 경우 후속 절차가 훨씬 간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GM이 해외 공장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이 브랜드와 차량 설계 등 지적재산권 분야를 따로 떼 내는 일이었는데 R&D 부문이 분리돼 있으면 신속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구조를 만든다는 게 반드시 GM이 한국 철수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GM이 결코 철수할 수 없는 시장인 중국의 경우 생산법인인 상하이지엠과 R&D 법인인 PATAC이 별도로 존재한다.

반대로 GM이 기어코 한국에서 철수할 생각이라면 생산과 R&D가 붙어 있다고 한들 계획을 바꿀 리 없다. GM은 과거 스웨덴 사브와 독일 오펠 매각 과정에서 원매자에게 브랜드와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을 내건 바 있다. 철수가 불가피하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R&D에 매달려 근근이 생산부문의 수명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생산부문 자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한국지엠 노조가 구조조정 가능성을 언급하며 R&D와의 분리를 반대하는 것은 ‘생산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R&D가 알짜’임을 자인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인 셈이다.

한국지엠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를 모기업으로 하는 르노삼성자동차는 현재 닛산으로부터 중형 SUV ‘로그’의 미국 수출물량을 위탁받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르노삼성이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 로그는 12만3202대에 달한다. 이는 르노삼성의 전체 판매량(27만6808대)의 절반에 육박한다. 내수판매 부진에도 불구하고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정상 가동될 수 있는 것도 로그 수출물량 덕이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미국 판매용 로그 생산을 르노삼성 부산공장에 맡긴 것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인한 관세 혜택도 있었겠지만 높은 품질과 안정적 물량 공급에 대한 믿음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세계 곳곳에 공장을 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각 지역 공장간 물량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서로 물량을 따내기 위해 생산성과 품질을 높인다. 그런 경쟁의 와중에 회사의 사업계획에 비협조적인 노조의 존재는 치명적인 핸디캡이 될 수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게 공장 운영을 통한 고용 유지는 해당 공장 소재국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을 일이 아니라 역으로 정부에 큰소리를 칠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 장벽을 쌓으려 할 때마다 우리 산업계가 가장 크게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은 현대자동차 앨라배마공장과 기아자동차 조지아공장을 통한 고용효과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를 상대로 고용보장이나 확대는 강요하는 게 아니라 설득해야 할 부분이다.

GM은 한국지엠 정상화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대가로 2028년까지 신차투입과 투자를 비롯한 사업계획을 확약했다. 한국지엠 근로자들이 혈세 투입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다.

그 이후에도 생존을 보장받으려면 한국지엠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의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 수출물량이 내수물량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지엠으로서는 GM으로부터 해외 다른 시장으로 물량을 공급할 생산기지로서의 효용성을 높이 평가받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높은 품질과 비용경쟁력, 그리고 안정적인 물량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 건전한 노사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능적 실력행사가 아닌 물리적 실력행사는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일 뿐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