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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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11월 14일 00:03:40
    양심적 병역거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칼럼>전쟁 벌어지면 누가 합법적 병역기피 안하고 입대할까
    양심의 객관적 증명과 비종교인과의 형평성 문제도 숙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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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7-01 08:37
    서정욱 변호사
    ▲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대체복무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는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로써 우리 사회를 오래도록 뜨겁게 달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법적'으로는 '최종적'으로 정리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징병제를 실시하는 80여개국 가운데 40여개국이 대체복무를 인정하고 있고, 유엔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보편적 인권 규범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의미가 있다.

    또한 종교적 집총(執銃) 거부자들에게도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 소수자의 인권을 보다 두텁게 보장했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처럼 이 문제는 앞으로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수많은 부작용과 갈등이 예상된다. 운용 여하에 따라서는 헌법상 규정된 '국민 개병제(皆兵制)'의 대원칙을 뿌리째 뒤흔들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올바른 제도 정착을 위해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전시(戰時)'의 심각한 병력자원의 부족 문제다. 1950년 병역법 시행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약 1만 9000여명으로 매년 500명 안팎이 처벌되고 있다. 2016년 징병 검사를 받은 34만명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로 병역자원 감소를 논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만약 대체복무제가 시행되면 어떻게 될까? 이는 결국 대체복무의 기간과 단체생활 여부, 업무의 강도(強度) 등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대체복무를 일반 군역보다 길고 어려운 일을 하도록 설계하면 당장은 급격히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독일 헌법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나치게 길거나 강도가 높은 대체복무는 병역거부자를 역차별하고 양심적 결정을 포기하게 만듦으로서 오히려 양심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결국 대체복무와 현역복무가 '실제적으로 같은 가치'를 가지는 선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위의 기준이 현재와 같은 '평시'를 전제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평시'의 현역복무의 가치와 '전시'의 가치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6.25 전쟁을 가정해 보자. 역사상 크고 작은 전쟁을 모두 합치면 최소 1000여 회에 달하니 불가능한 가정은 아니다. 이 때도 과연 대체복무 신청자가 극소수에 불과할까?

    물론 임진왜란 당시 불꽃처럼 일어난 의병이나, 6.25 당시 학도의용군 등을 볼 때 이 또한 섣불리 단정할 순 없다. 인간은 명예를 중시하는 '호명지심(好名之心)'과 이익을 추구하는 '호리지성(好利之性)'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전시에 대체복무제라는 합법적인 병역 회피 권리가 있음에도 자발적인 입대를 기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기 목숨을 초개(草芥) 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평소에도 병역기피자로 적발된 사람만 최근 5년동안 5천여명에 달하는데 전시에는 과연 어떻겠는가?

    판단컨대 헌재의 이번 결정에는 진보 재판관으로의 교체와 더불어 최근 한반도 긴장 완화 추세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군의 존립 근거와 존재 이유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다. 따라서 군과 관련한 모든 논의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하여 논의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내년 대체복무를 허용해도 병역자원 및 수급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국방부의 상황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안보는 국민이 모든 자유를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전제 조건이다. 안보 없이는 양심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도 없다. 국방부는 전시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비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절대 발붙일 수 없도록 제도의 정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둘째, 사이비 병역 기피자들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의 문제다. 대체복무 지원자가 정말 '양심적 병역거부자'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양심을 속인 병역기피자'인지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의 문제다.

    헌재 판결에 의하면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의 ‘양심’은 ‘선한 행위에 대한 의지’라는 일반적 개념이 아닌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는 마음의 소리’라는 법률적 개념이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신(神)이 아닌 이상 어떻게 타인의 내면의 마음의 소리를 판단하는가? 국방부의 안처럼 종교인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확인서나 자술서를 받으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지금도 사회 특권층에서 별의별 방법으로 신성한 병역 의무를 회피하고 있는데 만약 제도가 바뀌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정부는 최대한 객관적이며, 공정하고, 통일적인 기준 마련에 노력해야 한다.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판정기관, 판정절차, 판정기준 등에 한치의 헛점도 없도록 설계해야 한다.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얼마나 '정확하게' 양심의 진실성 여부를 구별할 수 있느냐에 이 제도의 존폐 여하가 달려 있다 할 것이다.

    셋째,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인과 비종교인 간의 입증의 난이도에 따른 형평성 문제다. 현재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숫자를 보면 기독교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99%가 넘는다. 과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분단을 겪고 징병제를 실시했던 독일에서도 없었던 이례적 현상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의 법조 경험에 의하면 입증의 문제도 주요원인 중 하나다.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 단체의 경우 교회를 다닌 기간이나 교인들의 증언 등을 통해 양심의 진실성 여부를 비교적 쉽게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비종교인의 경우 사실상 입증이 거의 불가능하다. 교회를 다닌 경력도 없고, 진실성 여부를 증언해줄 동료 교인도 없는데 어떻게 양심의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는가?

    독일의 경우 과거 징병제 시절 병역거부가 양심에 따른 것인지 판별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의 무력거부 성향' 등을 면밀히 검토했다. 그런데 병력 숫자가 훨씬 많은 우리의 현실에서 과연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나의 위원회에서 지금도 최소 1,000명이 넘고 앞으로 얼마가 될 지도 모르는 병역거부 신청자들을 어떻게 어릴 때부터 일일이 검토하는가?

    이번의 헌재 결정이 특정 종교집단을 위한 특혜가 되어서는 결코 국민의 전폭적이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 오로지 병역 기피를 위해 특정종교의 사이비 신도가 대폭 늘어나는 일이 있어서도 절대 안 된다.

    지금도 병역 기피를 위해 신체훼손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데 병역기피를 위한 계획적인 개종이 없을 것이라고 어떻게 단정하는가?

    정부는 비종교인이 입증 부족으로 양심의 진실성이 부정되지 않도록 판정절차와 기준을 섬세하게 정비해야 한다. 양심의 진실성 여부에 관한 불복 재판이 폭증한다면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인해 이 제도는 결국 와해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남북의 200만 무장 병력이 대치하고 있는 세계의 화약고인 우리의 현실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아직은 '시기상조'라 생각한다.

    "병역의무는 궁극적으로는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가 위와 같은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는 할 수 없으니,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부정한 과거의 판결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의 안보 상황에 좀 더 적실(的實)하다고 본다. 모든 개혁과 진보도 한발은 현실에 굳건히 딛고 한발만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 졌고, 최고 헌법 재판 기관인 헌재의 결정은 내려졌다. 이제는 더 이상의 소모적인 찬반 논쟁보다는 같이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모아 좀 더 나은 제도의 정비에 전력할 때다.

    지금은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지만 최악의 안보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스스로 책임지고 지킬 것인가? 어떻게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목숨 걸고 숭고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대다수 젊은이들과 형평을 맞출 것인가? 만에 하나 양심을 가장한 병역의무 기피 풍조가 확산된다면 어떻게 이를 막을 것인가?

    이러한 합리적인 우려 제기에 대해 모두가 합심하여 지혜를 모아 좀 더 나은 제도의 설계에 전력할 때다. 공기와 같은 안보는 결코 실험 대상이 아니며 한번의 시행착오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번 무너진 안보의 둑은 결코 복원이 쉽지 않다.

    정부는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여론 수렴을 통해 모든 가능성에 대한 열린 검토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안보에 한치의 빈틈도 없도록 만전의 대비를 하여야 한다. 국가의 제1의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글/서정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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