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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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11월 18일 08:58:44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찬양하라
    ‘알쓸신잡 - 스웨덴⓹’ 하지 축제 미드솜마르(Midsommar)
    길고 지루했던 지난 겨울의 어두음에 대한 보상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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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6-16 05:00
    이석원 객원기자
    ▲ 매년 6월 20일 직후의 토요일에 열리는 스웨덴 최대 민속 축제인

    스웨덴 사람들에게 가장 행복한 날이면서, 이방인들에게도 가장 흥미로운 날인 하지, 스웨덴어로 미드솜마르(Midsommar)다.

    한국에서는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인 하지보다는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가 좀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동지에 왕과 왕세자, 그리고 대신들이 모여 회례연이라는 잔치를 베풀기도 했고, 동지사라는 명나라에 보내는 사신도 있었다. 민간에서도 팥죽을 끓여먹는 것은 지금도 그렇고, 겨울철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것도 예전 동지 때 어려운 이웃을 구휼하던 것의 연장선이다. 요즘은 동지가 되면 새해 달력을 주고받는 신풍습도 있다니.

    그런데 스웨덴은 동지보다 하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나라 전체가 들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에 이르면 스웨덴의 그 찬란한 백야가 바야흐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은 스웨덴의 가장 큰 축제일이다.

    하지 축제인 미드솜마르는 고대 스웨덴 농경 사회 풍습과 그리스도교가 어우러진 전통이다. 고대 북유럽 농경 사회에서 낮은 대단히 중요했다. 그래서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을 기념하며 전통적인 축제를 지낸 것인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예수 탄생 꼭 6개월 전인 세례자 요한의 축일 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6월 셋째 주 토요일을 미드솜마르로 지낸다.

    전통적으로 북유럽에서는 하지 때 마법의 기운이 가장 강하다고 여긴다. 스웨덴에서도 그날은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신비로운 마술을 경험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스웨덴의 소녀들은 이날 ‘꿈죽’이라는 뜻의 ‘드룀그룃(Drömgröt)을 먹으면 꿈에 미래의 남편이 모습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또 맑고 성스러운 샘에 얼굴을 비추면 자신의 얼굴이 아닌 미래의 남편의 얼굴이 비친다고도 믿었다고 한다.

    ▲ 미드솜마르 때 스웨덴 일반 가정의 식탁에 꼭 올라가는 것이 절인 청어와 삶은 달걀과 감자(사진 위), 그리고 연어를 통째로 구운 음식이다. (사진 = 이석원)

    이날은 마을의 넓은 들판 한복판에 ‘마이스통(Majstång)’이라고 불리는 높이 15m 짜리 기둥을 세운다. 이미 지난 밤 마을의 남자들과 여자들은 이 기둥을 자작나무 잔 줄기와 들판을 가득 메운 꽃들로 장식한다. 유럽 일대에서 긴 겨울을 지내고 다시 살아난 초목을 기념해 만든 메이폴(Maypole)에서 유래된 말이다. 6월에 하지 축제를 하는 스웨덴에서도 그냥 마이스통이라고 부른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이 마이스통을 중심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한꺼번에 둥근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스모 그로도르나(små grodorna)’라고 불리는 우스꽝스러운 춤이다. 작은 개구리라는 뜻의 이 춤은, 귀와 꼬리가 없는 개구리 모습을 재밌게 표현한 노래와 함께 춘다. 남자와 여자, 애와 어른 할 것 없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마이스통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서 춤을 추는 모습은 재밌으면서도 묘한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이 날 보통의 가정집 식탁에는 정갈하게 차려진 스웨덴 전통 음식으로 테이블이 가득하다. 맛깔스러운 자태를 자랑하는 연어가 큰 접시에 놓이고, 절인 청어가 여러 가지 모양과 빛깔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어른들은 맑고 투명한 술을 마신다. 아콰비트(Aquavit)라고도 불리는, 감자를 주원료로 한 도수가 45도에 이르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독주 슈납스(Schnaps)를 마신다.

    스웨덴 사람들은 술 취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어지간한 주말 시내 번화가에서도 술에 취한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봄이 시작됐음을 기념하는 4월 30일 ‘발보리’와 더불어 미드솜마르에는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고 할 정도다.

    스웨덴이 이토록 하지 축제에 몰두하는 것은 순전히 햇빛 때문이다. 5월 말 북위 59도인 스톡홀름을 기준으로 아침 해 뜨는 시간은 새벽 3시 50분, 해지는 시간은 저녁 9시 40분이다. 바야흐로 백야가 시작되는 것이다.

    ▲ 술 취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스웨덴 사람들도 미드솜마르 때는 밤새 술을 마시고 취한다. 1년 중 가장 흥이 오르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진 = 이석원)

    백야가 좀 더 극심한 북위 67도 북쪽 도시 키루나(Kiruna)는 이 즈음 새벽 1시 30분 경 해가 떠서 밤 11시 30분 경 해가 진다. 그러다가 미드솜마르 때 키루나는 아예 해가 지지 않는다. 이때부터 3개월 이상 서쪽으로 기울던 해는 지평선(또는 수평선) 위에서 평행으로 이동하다가 사라지지 않고 다시 떠오른다. 이게 진짜 백야인 것이다.

    반면 겨울에는 극야다. 스톡홀름은 북극권이라고 하기에는 남쪽이지만, 12월에는 보통 오전 9시가 돼야 해가 뜨고, 오후 3시 30분이면 해가 진다. 키루나는 9월 20일 경인 추분부터 다음 해 3월 20일 경인 춘분까지 하루 종일 밤이다. 이 시기 오전 11시가 넘어야 해가 뜨고, 오후 2시면 해가 지는 날이 많다. 동지를 즈음한 12월 20일에 이르면 사실상 아예 해가 뜨지 않는다.

    그러니 스웨덴 사람들에게 미드솜마르는 지난 겨울의 어두움과 추위에 대한 보상이다. 하루종일 낮인 것이 행복하다. 1년 중 6, 7, 8월에만 누릴 수 있는 태양의 축복이기에 스웨덴 사람들이 이 때를 찬미하는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정치인인 올로프 팔메 전 총리(1969년~1976년, 1982년~1986년 총리 역임. 1986년 2월 28일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는 과거 총리 재임 때 한 외국 정상과 피카를 하며 “스웨덴 사람들은 스웨덴의 복지 시스템 보다 6월 말 하지 축제를 더 사랑한다”고 말해 상대방을 어리둥절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제 곧 스웨덴 전국은 백야를 찬미하며 미드솜마르를 즐길 것이다. 수십 만 명의 스웨덴 사람들은 낮부터 밤새워 모처럼 흥건히 술에 취할 것이다. [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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