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또 잔꾀를 부려 시간을 끌려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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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11월 21일 06:14:24
    김정은이 또 잔꾀를 부려 시간을 끌려고 한다면...
    <칼럼>전형적인 시간 끌기 어정쩡한 합의로 주도권 잡기 가능성
    한반도 비핵화한다며 주한미군 검증 요구 명약관화 부담은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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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6-11 05:41
    이진곤 언론인
    ▲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의 회담을 마치고 이스타나궁에서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1] 트럼프 조련술 기대해도 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사이의 핵 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이미 싱가포르에 도착해서 각자 회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른바 ‘세기의 담판’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그 구도를 감안하면 표현이 좀 허풍스럽다.

    국부‧군사력‧영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 빈곤‧유례없는 폭압통치‧핵 및 미사일 쇼로 지구적 악명을 떨치고 있는 사이비 신정체제의 집권자가 벌이는 일종의 상담을 ‘세기적’이라는 거창한 관형사로 치레하는 게 영 어색해 보인다.

    그런데도 다들 그런 표현에 별 거부감을 드러내지는 않는 까닭은 핵무기의 위험성, 김정은 집단의 불가예측성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이런 인간형의 독재자를 잘 길들여 개과천선시킨 사람은 없다. 그래서 세계인들의 관심이 더 싱가포르 핵협상에 쏠린다. 과연 트럼프가 김정은을 잘 조련해 낼 것인가 해서다.

    트럼프는 한 손에 선물을, 다른 손에 채찍을 들고 조련사의 화려한 제스처를 곁들이며 무대에 등장하려 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던 ‘친근하고 선한 이웃’ 이미지로 나설 공산이 크다. 트럼프는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는 1분이면 충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천부적 협상력을 가졌다니까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결과를 예상하기는 물론 어렵다. 트럼프나 김정은이나 남의 짐작을 허용치 않는다.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회담이 1분 만에 끝나는 일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럴 것이면서 싱가포르까지 갔을 리가 없다. 최소한 마주앉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단 한 차례의 만남에서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다고는 트럼프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대원칙에서는 두 사람 공히 만족할 만한 합의에 이르렀다, 다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절차‧과정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발표가 나오지 않을까?

    트럼프는 CVID가 안 된다면 김정은의 백기(白旗) 퍼포먼스도 괜찮다는 계산일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자신의 권위와 체통을 세우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테니까. 반면에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시간여유다. 제재를 느슨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는 데는 시간만한 영약(靈藥)이 달리 없을 것이다.

    [2] 폭압통치자 개과천선 예 없다

    그런데 일단 시간을 벌게 되면 김정은은 과거의 예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합의가 필요한 수많은 사안들에 대해 일일이 트집을 잡고 거부하고 역공을 가하는 식으로 세월을 보내면 북한은 자연스레 핵보유국이라는 인식을 세계인의 뇌리에 심어주게 된다. 그 사이에도 트럼프의 잔여임기를 줄어들고, 미국 정부나 정가의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다. 어느 날 “검증은 우리만 받아야 하는 게 아니다. 한국과 주한미군 기지, 나아가 한반도 주변의 미군 기지도 당연히 검증 대상이다. 우리도 중국 러시아 등과 공동 검증단을 구성하겠다.” 이런 말이 안 나오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북한이 정해진 기간 안에 신뢰할 만한 핵 및 미사일 폐기와 포기 작업의 실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게 하는 정도의 합의는 이뤄야 한다. 물론 미국 혹은 국제검증단의 제한 없는 활동을 북한이 보장하는 것도 필수조건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검증은 실패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약속을 어길 경우의 제재 방법을 명문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길은 여러 갈래다. 트럼프가 정말로 회의장을 떠나 버릴 수 있고, 김정은이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고 나설 수도 있다. 아니면 1차 회담에서는 원칙 합의만 하고 2차 회담을 약속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원칙이라는 것이 구체성을 결하면 또 북한의 상투수법에 넘어가고 만다는 위험성이 따른다.

    혹 북한이 숨 돌릴 여유를 확보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아주 바빠지지 않을까?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적극화하고 남‧북협력사업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이들이 숨기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국회에 대해서도 판문점 합의서 비준을 압박할 게 뻔하다. 서두를수록 기정사실화하기가 쉽고 그럴 땐 미국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계산할 법하다.

    어떻든 트럼프가 확실하게 김정은의 핵 폐기 및 포기 다짐을 받아내야 한다는 게 우리의 희망이다. 그게 안 된다면, 그러니까 김정은이 또 과거의 예처럼 잔꾀를 부려 시간을 벌려고 한다면 차라리 트럼프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버리는 것이 낫다. 어정쩡하게 합의하면 북한은 또 국제사적 감시와 제재의 그물망을 빠져 나가버리기 십상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엉뚱하게도 우리가 심각한 갈등과 대립의 수렁에 빠져들 개연성이 높다. 일은 김정은이 저지르고 그 부담을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 해괴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3] 질 때가 있으면 이길 때도 있다

    싱가포르 미‧북 회담 바로 다음날엔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분위기로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다. 보수 야당은 그냥 패배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궤멸 당할 수도 있다는 기류가 강하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직전의 집권여당이라기에는 너무 한심한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제20회 총선에서 참패를 당하고, 기운을 추스르기도 전에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까지 겪었다. 그러고도 당이 와해되지 않은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그렇다고 이를 변명거리로 삼을 처지는 아니다.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참패했으면 철저한 복기를 통해 당 재건 방안을 세우고 추진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의 청와대와 여당은 계속 망하는 길만 선택했다. 그러고도 여당 지위를 지킬 수 있었다면 이야말로 기네스북 감이라고 하겠다. 보수 유권자들이 걱정하고 도와주려 하는데도 한사코 망하겠다고 하는 모습은 기이할 지경이었다.

    당의 분열은 대통령 탄핵을 초래했고, 그게 부메랑이 되어 당은 지리멸렬했다. 이번 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은 1~2곳 확보도 장담하기 어려울 처지라고 한다. 같이 치러지는 12곳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완퍠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양이다.

    말 그대로 참담한 처지가 되었지만 그래도 제1야당이라는 지위나마 유지하고 있는 게 어딘가. 이 말은 정신을 차릴 때로서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이다. ‘목숨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했는데, 쪼그라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소속 의원 113명이라는 결코 허약하지 않은 당세를 가졌다. 재기할 기반으로서는 오히려 넘친다고 하겠다.

    사실 지금의 집권 더불어민주당도 여러 차례 참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예컨대 2002년의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장 16명 가운데 단지 4명을 당선시키는데 그쳤다.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11명을 당선시키며 기염을 토했다. 또 서울 25개 구의 구청장 가운데 새천년 민주당은 3명을 확보했을 뿐이고 한나라당이 22곳의 구청장 자리를 차지했다.

    그 다음번 선거, 그러니까 06년의 제4회 지방선거 때는 그 전의 새천년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된 바람에 더 큰 패배를 맛봐야 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1곳, 민주당은 2곳에서 이겼을 뿐이고 한나라당이 12곳을 휩쓸었다. 서울 구청장 선거의 경우 25곳 모두를 한나라당이 석권했다.

    제3회 지방선거 2년 후에 실시된 08년 제17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역풍 등으로 멸문지화의 위기에 까지 내몰렸다가 기사회생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위기 속에 대표직을 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앙당사와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한다고 밝히고 천막당사에서 당을 이끌었다. 50석도 못 건질 것이라는 절망적 분위기에서 치른 선거 결과 121석을 얻어냈다.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2008년의 18대 총선에서는 정권 탈환의 여세를 몰아 한나라당이 153석 확보로 대승을 거뒀다. 다시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은 81석을 얻는데 그쳤다. 특히 보수정당의 경우 자유선진당이 18석, 친박연대가 14석을 얻음으로써 거대세력을 형성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기정사실화됐다고 해도 선거는 계속 이어진다. 21대 총선은 20년 4월 15일에 실시된다. 정신만 차리면, 그리고 보수 및 중도 유권자를 결집시킬 역량만 발휘한다면 판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날이 가물거나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불평해 봐야 소용이 없다. 그러는 시간에 저수지와, 홍수방지댐을 만들 일이다. 유권자가 표를 주고 싶어 해도 그걸 받을 그릇이 없으면 어쩔 수가 없다. 인심은 조석변(朝夕變)이라지만 정치 과정을 주관하는 민심은 아무렇게나 흔들리지 않는다. 다시 일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유한국당은 물론 범보수 정치세력들은 함께 깊이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천할 일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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