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아빠 육아 휴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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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11월 14일 00:03:40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아빠 육아 휴직’이에요”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31> 제일기획 노르딕 법인 송두휘 씨
    한국에서라면 꿈도 못꿨을 일 통해 가족의 진정한 가치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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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6-09 07:48
    이석원 객원기자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 제일기획 노르딕 법인에 근무하면서 9개월 째 '아빠 육아 휴직'을 사용하고 있는 송두휘 씨. (사진 = 이석원)

    “육아휴직은 제 평생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입니다. 처음 회사에 육아 휴직을 신청할 당시만 해도 굉장히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때는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제가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면 아마도 육아 휴직은 꿈도 꾸지를 못했을 겁니다.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제 자신이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기도 했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육아 휴직을 할 수 있었던 게 우리 모두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제일기획 노르딕 법인에서 5년 넘게 일하고 있는 송두휘 씨는 9개월 째 육아 휴직 중이다. 말로만 들었고, 아주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만 했던 바로 그것이 현재 두휘 씨의 현재진행형 모습이다. 그리고 그 육아 휴직 기간 동안 두휘 씨는 삶의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고, 그리고 보람을 느꼈다. 가족이라는 근원적 연대감이 최고였던 때라고 감히 말하고 있다.

    두휘 씨가 스웨덴이라는 낯선 나라에 온 것은 독일이라는 ‘덜 낯선’ 나라를 거쳐서다. 한국에서 현대자동차 계열의 광고 기획사인 이노션에 근무하다가 제일기획 독일 법인에 입사한 두휘 씨. 2012년 1월 처음 프로젝트 때문에 스웨덴 땅을 밟은 후 다음 해 5월 제일기획 노르딕 법인을 스웨덴에 설립하면서 아예 스웨덴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본인이 육아 휴직을 사용한다는 것은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아들 효준이(8)가 태어났을 때야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육아 휴직이라는 말 자체도 낯설었다. 아이가 태어났으니 더 열심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정답이었던 때다. 그런데 스웨덴으로 이주한 후 태어난 딸 윤아(5). 하지만 그 때도 곧바로 육아 휴직이라는 것을 생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두휘 씨가 회사 설립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그런 회사가 스웨덴에서 이제 막 사업을 시작했을 때였다.

    ▲ 지난 해 4월 부활절 연휴 때 덴미크 코펜하겐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대표적인 관광지인 뉘하운(Nyhavn)에서. (사진 송두휘 제공)

    두휘 씨가 육아 휴직이라는 것을 생각한 것은 윤아가 이미 4살이 다 됐을 때다.

    스웨덴의 육아 휴직은 엄마와 아빠가 각각 240일 씩, 합쳐서 480일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중 한 쪽의 육아 휴직 180일은 상대방에게 양도할 수 있다. 즉 엄마나 아빠 중 한 사람이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없을 경우 다른 한 사람이 180일을 더 사용할 수 있다. 두휘 씨의 경우 아내 이정은 씨가 육아 휴직을 사용할 상황이 아니다보니 두휘 씨 본인의 육아 휴직 240일에, 아내에게서 양도받은 180일을 보태서 총 420일의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만 4살 전까지 육아 휴직을 사용하지 않으면 원래 240일인 육아 휴직 상한 기간이 96일로 줄어든다. 그래서 두휘 씨는 윤아가 만 4살이 되기 전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그게 지난 해 9월이다.

    “육아휴직 신청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었고 조금 두려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왠지 모르게 죄를 짓는 느낌도 들었고요. 5년 동안 스웨덴에서 일을 했는데도 아직 한국의 사고방식이 남아있었던 거죠. 하지만 주변 스웨덴 사람들이 얘기를 해주더군요. 세금 내고 있으면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는 혜택이라고. 스웨덴 사람들 대부분은 잘했다면서 축하를 해줬죠.”

    낯선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일이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다소 용기도 있어야 하고, 과감할 필요가 있었다. 스웨덴 사람들이 많이 근무하는 회사지만, 그래도 근본은 한국 기업 아닌가? 그리고 두휘 씨도 한국 사람이고. 그러니 여성도 아닌 남성이 육아 휴직을, 그것도 아이가 태어나고 이미 4년이나 지난 후에 사용한다는 것은 ‘이게 맞는 일인가?’하고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송두휘 씨의 육아 휴직은 부부의 애정에도 윤활유 역할을 했다. 아내 이정은 씨는 두휘 씨의 육아 휴직 덕분에 석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사진 송두휘 제공)

    하지만 스웨덴에서 육아 휴직이 국가에서 법으로 보장 받는 권리다. 그게 여성이든 남성이든, 엄마이고 아빠라면 당연한 것이다. 대체로 3개월 전에 회사에 신청을 하면 회사에서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그나마 한국 기업이니 3개월 전 신청이다. 대부분의 스웨덴 회사들은 1~2개월 전에 육아 휴직을 신청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엄마인 여성이 육아 휴직을 신청하려고 해도 회사 눈치, 상사 눈치, 다른 동료나 심지어 업무 연관성을 가진 후배 눈치까지 봐야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면, 스웨덴에서는 여성은 물론 남성도 육아 휴직을 함으로써 회사와 동료들의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받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크게 기뻐하고 환영하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두휘 씨는 지난 8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24시간 눈앞에서 목격하며 피부로 느꼈다. 아이들 또한 그런 두휘 씨와 함께 하면서 더 알차게 커주었다. 두 아이가 커 가는 동안 두휘 씨는 방관자나 관람객이 아니었다. 영화배우 조진웅이 모델로 등장하는 한 자동차 보험 회사 광고에서 자동차 옆 좌석의 낯선 딸을 보며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하는 카피는 정말 아주 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였다.

    “육아 휴직을 시작한 후 주로 아내의 몫이었던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들을 조금씩 배우면서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 등하교와 축구 수업, 아이스하키 수업 등 모든 기타 활동 등을 같이 다녔죠. 또 가족 여행도 최대한 많이 다니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온 가족과 함께 18시간 운전해서 스웨덴 북부도시인 키루나를 다녀왔는데. 처음으로 일 생각안하고 마음 편하게 다녀온 가족 여행이었습니다.”

    ▲ 송두휘 씨는 가장 전형적인 스웨덴 아빠인 '라떼 파파'이기도 했다. 사진은 스톡홀름 북쪽에 있는 오래된 도시 시그투나(Sigtuna)에 갔을 때 모습이다. (사진 송두휘 제공)

    그런데 아이들 학교를 오가면서 두휘 씨는 자신의 모습이 특별하지 않은 것에 놀랐다. 효준이가 다니는 국제학교인 BISS(British International School of Stockholm)나 윤아가 다니는 국제 유치원인 Futura International Pre-school에는 두휘 씨 같은 아빠가 차고 넘쳤다. 그 자신이 육아 휴직 중인 ‘라떼 파파’면서 순간적으로 “엄마가 없는 아이들인가?”하는, 대단히 ‘한국적 편견’이 꿈틀댈 정도였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평범하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두휘 씨의 육아 휴직은 아이들에게만 신나는 일인 것은 아니었다. 아내 정은 씨는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두휘 씨가 육아 휴직 중에 정은 씨는 편안한 마음으로 석사 과정 공부를 했으니. 그러다보니 부부 간의 사랑도 돈독할 수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는 물론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전혀 손상되지 않을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가 됐던 것이다.

    이 육아 휴직이라는 최상의 사회 복지 혜택은 두휘 씨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가족은 자신만의 일 속 파묻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컸다. ‘내 아내’를 넘어서 ‘나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들 모두의 어머니들의 삶이 어땠는지를 처음 제대로 알게 됐던 것이다.

    “육아 휴직으로 알게 된 것이 정말 많았죠. 그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몸과 마음을 헌신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머니들 모습이었습니다. 전에는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야근하는 게 제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하지만 그건 고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그 모든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 각각의 노력과 힘겨움이 어우러져 가족의 기쁨과 행복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그게 육아 휴직으로 배운 가장 큰 가치이자 보람이죠.”

    ▲ 송두휘 씨는 육아 휴직 중인 지난 2월,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접경 지역인 이드레(Idre)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 송두휘 제공)

    두휘 씨는 원래 이달 말까지 육아 휴직 기간인데, 한 달 연장했다. 육아 휴직을 마쳐가면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볼 계획이다. 무척 열심히 살아왔지만 옳게 살아왔는지, 또는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볼 생각이다. 그리고 육아 휴직으로 알게 된 많은 것들을 앞으로 자신과 가족의 삶에 멋지게 투영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 해볼 생각이다.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두휘 씨의 ‘아빠 육아 휴직’. 그래서 그는 살아온 지난 시간보다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이 더 멋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슴에 새겨놓고 있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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