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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개혁을 스스로 안하고 검찰 손에 맡긴다고?


입력 2018.06.04 05:58 수정 2018.06.04 06:03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대위기, 뼈를 깎는 자성(自省)으로 돌파해야

여론몰이 보다 조사단 조사 결과 존중하고 검토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연합뉴스

사법부가 미증유(未曾有)의 대혼란 속으로 빠져들면서 국민의 불신도 높아지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상고법원 설립과 관련해 특정 사건의 판결을 청와대와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혼돈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고, 특정 성향을 가진 법관에게 불이익을 준 적이 없다”고 강력 부인했지만 파문은 좀처럼 가라않지 않고 오히려 확대일로에 있다.

'판결의 권위’와 '법의 지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과연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근간으로서 사법부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국회의 국정조사나 검찰과 특검의 수사 등 여러 방안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외부의 타율적 개입보다는 법관들의 양심과 정의, 의지와 소신을 믿고 스스로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사법부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국회의 국정조사는 어떤 형태로든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부에서는 개개의 판사들마다 정치적 성향들이 있다는 진실을 존중해야 한다며 '재판이 곧 정치'라는 견해도 있지만 필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같은 법률 문제라면 결론은 하나여야 하는데 정치성향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면 어떻게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며, 또한 누가 그 판결을 신뢰하겠는가?

“나는 판사에 대한 보수, 진보라는 이념적인 리트머스 시험을 믿지 않는다. 그냥 판사들이 있을 뿐 공화당 판사, 민주당 판사 같은 것은 없다.”

닐 고서치 미국 연방대법관 청문회 당시 한 청문위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스캘리아의 빈자리를 보수적인 판사로 채우겠다”고 했다면서 고서치 후보자도 보수적인 법관 아니냐는 뉘앙스로 공격하자 그가 한 답변이다.

이처럼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의 거리가 멀수록 좋다는 것은 양(洋)의 동서를 불문한 진리다. 결국 필자가 보기에 국정조사는 정확한 진실규명은커녕 현 집권세력과 과거 집권세력과의 지리한 정치공방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음으로 검찰과 특검의 수사에 대해 살펴보자. 이미 참여연대와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등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했고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수사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실제 재판의 거래가 있었는지를 조사하려면 당시 재판을 한 대법관들을 전원 조사하여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

결국 전현직 대법관 등 고위 판사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대법원 등의 판사실 여러 곳이 압수수색을 당할 것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한가? 이것이 과연 사법부 독립의 핵심인 재판의 독립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한가?

재판은 오로지 법과 원칙, 법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이루어지는 '내면의 영역'이다. 검찰이 직접 칼을 대며 재판의 과정을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코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 현 단계에서는 '범죄의 명확한 혐의'보다 '의혹'뿐이다. 조사단 스스로 "부적절한 일들은 있었지만 뚜렷한 범죄혐의를 찾기는 어렵다"고 발표하지 않았는가?

명백한 혐의가 아니라 단순한 의혹만으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 법관들을 검찰이 강제수사를 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수사다. 설사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렸다 하더라도 탄핵주의 재판 구조상 검찰은 기소권만 가지고 검찰 주장의 진실성은 결국 법원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해당사자인 법원이 과연 어떻게 판결하는가? 현 고위 법관들중 이번 사태와 전혀 무관한 분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심지어 김명수 대법원장도 이번 사태의 피해를 당했다는 판사들이 많이 소속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장을 거친 이상 일종의 이해당사자가 아닌가?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근대 사법상 확립된 대원칙이다. 그렇다고 법원도 특검처럼 '특별법원'을 구성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결국 검찰이 기소해도 법원이 최종 판단할 수밖에 없는 한 검찰 수사는 '분란의 끝'이 아니라 '분란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대법원이 상고법원 신설을 위한 정부 설득 자료로 정부에 도움 되는 판결을 모은 홍보자료를 만든 것은 결코 올바른 처신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 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이라는 문건(2015년 11월 19일자)도 공정한 재판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재판거래가 실제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며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더 이상의 불필요한 억측이나 여론몰이 보다는 일단 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존중하고 차분히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고도 합리적 의심이나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신망있는 법조인들로 '외부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실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판사의 판결은 대법원장인 나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시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부당하게 재판에 개입하려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한 일갈이다. 필자는 아직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사가 대다수라고 믿는다. 사법부의 독립이 이승만 대통령 시절보다 결코 후퇴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No hint, No forecast, No preview”라는 원칙하에 오직 법정에서 판결로만 말할 뿐 사전에 '어떤 힌트나 예측, 시사'로 추악한 거래를 하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법조인인 필자의 주위에는 정의로운 판결을 위해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을 쪼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판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이번 위기를 전화위복(轉禍爲福),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행여나 '정치적 고려'나 '여론에 경도'되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개혁의 방향과 내용은 오로지 '법과 원칙', '팩트와 증거'에 입각한 '자율적 개혁'이어야 한다.
정치와 여론에 입각한 개혁은 걷잡을 수 없는 사법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은 정치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지만 특히 사법부에서 중요하다. 당사자가 신뢰하지 않는 재판은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갈등의 조장'이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가 무너지면 결국 나라 전체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이미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대법정에 난입해 ‘판결 불복’ 시위를 벌이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불필요한 과잉 언행으로 더 이상 분란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 차분하면서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시스템 개혁을 통해 조속한 사법부 안정에 만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정 성향'이 아니라 '전체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대공지정(大公至正)'의 자세로 오로지 허물어진 법원에 대한 믿음을 바로 세우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글/서정욱 변호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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