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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거래'라 쓰고 '사법부 장악'이라 읽는다


입력 2018.06.02 07:42 수정 2018.06.02 09:30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블랙리스트 안나오니 '재판거래' 다른 의혹 제기

장기집권 위해서는 사법부 장악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주최로 열린 '사법농단 몸통 양승태와 그 관련자 형사고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열린 '사법농단 몸통 양승태와 그 관련자 형사고발 기자회견'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주최로 열린 '사법농단 몸통 양승태와 그 관련자 형사고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열린 '사법농단 몸통 양승태와 그 관련자 형사고발 기자회견'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언론에는 온통 ‘북핵협상 이슈’뿐이다. 그나마 공간이 좀 남아도,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전국선거인 ‘지방선거’관련 뉴스는 없다. 대신 ‘대법원 적폐’관련 뉴스로 채워진다. 처음에는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뒤지더니, 이제는 박근혜 정부와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을 부풀리며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과정을 보면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 때와 판박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일부에서 ‘외부충돌설’이 있었다. 이게 여의치 않자 박 대통령의 ‘숨겨진 7시간의 비밀’이 이슈가 된다.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연애설’, ‘사이비종교의식설’, ‘성형시술설’ 등 국가원수에게 차마 꺼내기 힘든 의혹들이 제기됐다.

결국 ‘외부충돌설’에 이어 모두 근거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 의혹들에 대한 관심은 이미 떠난 뒤였고 다른 의혹이 뒤를 이었다. 그 과정에서 최순실이 등장했다.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렇게 쌓인 억측이 실체가 되어 결국 대통령 탄핵사태를 만들고 그 반사이익으로 현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세월호 참사도 안타깝지만, 그 과정에서 위기관리를 못하고 탄핵사태까지 이르게 한 전정권의 행태는 정말 한심한 것이었다.)

‘반사이익’으로 정권은 잡은 사람들은 그 과정을 잘 알고 있다. 다른 영역도 익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정리해 나갔다. 1년이 넘게, 온 사회가 ‘적폐청산’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렇게 모든 영역을 자기 사람들로 장악해 나갔다. ‘논공행상’을 넘어 끝도 없는 식욕을 보였다. 자리가 필요했고 자리를 만들려고 기존의 인사를 숙청했다. 적폐로 몰면 가장 손쉽게 숙청을 할 수 있었다.

행정부는 대통령이 임명한 조직이니 더 말할 것도 없고, 검찰 등 사정기관은 바람이 불기 전에 이미 고개를 숙였다. 언론도 이제 정리가 거의 됐다. 입법부야 여당이 소수지만, 대통령지지도가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에는 그런대로 버틸 수 있다. 어차피 국민의 욕을 먹을 대상이 필요한데 지금 국회가 그 역할을 하고 있으니 ‘딱’이다. 이제 최종 목표인 사법부다.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사법부 장악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다.

사법부 장악의 방법은 대단히 교묘한 동시에 매우 거칠다. 사법부를 정치적으로 활용한다. 그 전제는 법원을 정치판으로 만들고 있다. 사법부도 ‘블랙리스트’로 불씨를 지폈다. 거듭 조사를 했으나 증거를 찾지 못했다. ‘특조단’이 구성되어 수백의 사람들을 불러대고, 온갖 자료를 뒤졌다. 그리고 최종 발표에서 ‘블랙리스트’대신 엉뚱한 꼬투리를 잡아냈다. 그게 ‘재판거래’다.

박근혜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사법부의 이익(상고법원)을 챙기기 위해 정권과 야합해 잘못된 재판을 했다는 것이다. 재판에서 패한 측은 또 다른 세월호 희생자가 되어 동력을 만들 것이다. 언론이 앞장서고 현 대법원은 검찰조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법원을 검찰이 수사한다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걸 민주화라고 좋아만 할 수 있을까?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검찰은 ‘정권의 충견’이니 임명된 대법원장이 미처 하지 못한 ‘사법개혁’(장악)을 검찰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고도의 역할분담이다.

보다 못한 양승태 전대법원장이 언론앞에 등장했다. 처연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한때 사법부 수장이었던 그의 모습은 초라해 보였다. 기자들에 둘러싸여, 질문공세에 쩔쩔매는 그는, 육식동물 무리에 몰린 늙은 초식동물같았다. 자기 종족(조직, 국가)이 존망의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는 위기감에 자리를 피할 수 없는 안타까운 처지다.

그가 언론에 나서 발표한 핵심 메시지는 두가지다.

첫째, (대법원)재판은 어떤 경우에도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상도 못한 일’이라고 했다. 본인이 지금 나서는 것은 ‘재판결과에 대한 평가가 왜곡 전파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가 강조한 ‘사법부의 핵심은 재판’이란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힘을 잃었다. 법관은 재판 판결문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언론에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럼에도 언론 앞에 나서야만 했던 현실이 무엇이었을까?)

“대법원재판의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고도 했다. 당연한 말이다. ‘법은 윤리의 최소한’이다. 법이 무너지면 윤리도 무너진다. 그 법의 수호자가 법원인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와중에도 우리나라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법부가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법부는 3권부 중 가장 ‘보수적인 조직’이다. 국가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하고 입법부에서 법을 만들어야 사법부는 그 법을 적용을 한다. 항상 늦게 가는 것이 사법부의 숙명이고 책임이다. 사법부가 신뢰를 잃으면 국가는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다.

기자들의 질문은 사법부의 위상과 전직 대법원장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말의 꼬투리를 잡았고, 법원을 폄하했고, 양 전대법원장을 범법자로 간주했다. 마지막에 ‘KTX승무원들을 만날 것이냐’는 질문이 압권이었다. 정치인들에게나 물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최근 검찰, 경찰의 장들이 피해 당사자들을 만나 사과를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사법부까지 최종심인 재판의 패소자들을 만나 사과를 한다면 사법부의 신뢰는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당시 재판관들이 명확한 범법을 행하지 않았다면, 사과는 또 다른 정치행위일 뿐이다. 국가기구 구성원 모두가 정치인이 될 수도 없고, 되서도 안된다. 재판이 잘못됐다면 재심재판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러면 그 재판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옳다.

문제가 된 ‘말씀자료’가 작성된 계기가 된 ‘대통령과의 만남’은 해당 재판이 끝난 뒤였다. 법원행정처가 오버했을 수는 있지만, 14인의 대법관들은 모두 설득해 재판을 인위적으로 조정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묵시적인 불법작업이 있었다면, 야당추천 대법관들이 그냥 넘어갔겠나?

두 번째는 어떤 경우에도 법관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은 없었다는 것이다. 양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 ‘상고법원’을 추진한 것은 본인도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정책에 반대한 법관 누구에게도 편향된 조치나 불이익을 준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는 내용이다.

현 사법부 특조단이 구성된 것은 ‘블랙리스트 의혹’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차례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러자, 결국 검찰에 의한 ‘강제조사’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이 등장했다. 검찰에서 수사하고, 증거를 찾아 (혹은 만들어) 기소하면, 법원이 법원을 피의자로 재판을 벌이게 된다. 일부의 ‘정치판사’를 제외하고, 이를 찬성할 판사가 있겠는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이다. ‘재판이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일반적인 법치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개인권리 구제’와 등가인 ‘법적 안정성’을 위해 법원이 정부와 일정한 보조를 맞출 수는 있다. 그러나 재판을 대상으로 정권과 거래를 한다면, 그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판이 거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법부를 장악하면, 그 상상이 (‘말씀자료’만이 아니라) 실제 재판에서도 구현될 것이다. 그러면, 권위주의 정부가 부활하고, 국민의 ‘사법불신’은 극도로 가중될 것이며, 사회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될 것이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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