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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사가 아니라 청와대 언론통제가 '비수'


입력 2018.05.31 06:12 수정 2018.05.31 06:14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안보 관련 보도 제한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 입증할때만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 택하겠다" 경구 곱씹어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29일 조선일보에 대한 논평을 냈다.(자료사진)ⓒ연합뉴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29일 조선일보에 대한 논평을 냈다.(자료사진)ⓒ연합뉴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조선일보와 TV조선 보도에 대한 비판적 논평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언론에 대한 청와대 대변인의 직접적인 공격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로 필자는 김 대변인의 논평은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자 국민의 알 권리의 본질을 훼손하는 아주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김 대변인이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비수 같은 위험성을 품고 있는 기사라고 거론한 것은 다음의 세 가지다.

'한미 정상회담 끝난 날, 국정원 팀이 평양으로 달려갔다(조선일보 5월 28일), 풍계리 갱도 폭파 안해...연막탄 피운 흔적 발견(TV조선 5월 24일), 북, 미 언론에 ‘풍계리 폭파’ 취재비 1만달러 요구(TV조선 5월 19일)'

국정원 팀의 평양 방문에 대해서는 아직 반론이 제기되지 않았고, 풍계리 갱도 폭파 건에 대해서는 즉시 정정했으므로 취재비 1만달러 요구 건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첫째, 김 대변인은 위 보도가 허위라고 단언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북한이 외신기자들에게 요구한 것을 청와대가 도대체 어떻게 진위 여부를 단정적으로 확언할 수 있는가?

위 기사를 보도한 TV조선은 "외신 기자를 상대로 직접 취재해 보도했다”며 “이 같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증언한 취재원과의 대화 녹취록과 이메일도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청와대는 위 기사가 허위라는 어떠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만일 청와대가 단지 북한측의 주장만 믿고 위 기사가 허위라고 단정했다면 이야말로 대단히 엄중하고 심각한 문제다. 북한측의 주장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철석같이 믿으면서 우리 언론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불신부터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청와대는 무조건 허위라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흔쾌히 믿을 수 있도록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둘째, 청와대는 위 기사들이 '비수 같은 위험성'을 품고 있다고 주장하나 이 또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국가안보와 관련해 보도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언론 보도가 국가안보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피해(direct, imminent, and irreparable damage)'를 끼쳤다는 점을 '정부'가 입증해야만 한다."

1971년 베트남 전쟁의 허구성을 폭로한 뉴욕타임스의 소위 '펜타곤 페이퍼' 사건에서 미 연방 대법원이 판시한 내용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확립된 법원칙이다.

그런데 위 기사들이 과연 국가안보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쳤는가?

국정원 2차장이 몰래 평양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그대로 믿게 된다고 해서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우리 정부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을 정직한 중재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논리비약이다.

또한 북한이 취재비를 요구했다고 해서 상종하지 못할 존재로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고 거액을 뜯어내는 나라가 돼버리고 만다는 것도 명백한 침소봉대다.

결국 필자는 위 기사가 비수 같은 위험성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한 언론 통제'야말로 더 큰 비수 같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청와대는 ''앞으로 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는데 이야말로 언론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협박이다.

언론도 사람이 하는 이상 실수가 있을 수 있고 본의 아니게 오보가 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우리 법은 언론중재를 통한 정정보도 청구 등 충분한 구제절차를 두고 있다. 청와대도 일반 국민들처럼 통상적인 위와 같은 절차를 거치면 그만이다. 이 외에 더 단호한 조치가 도대체 무엇인가?

만일 청와대가 혹시라도 방송허가권 등을 염두에 두고 단호한 조치를 언급했다면 이야말로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정면 부정이다.

모든 발언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을 기준으로 그 적절성을 판단해야 한다. 현실 권력의 중심인 청와대가 앞으로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은 언론 입장에서는 당연히 협박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제퍼슨의 경구를 겸허히 되씹어봐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청와대의 논평 중 국익과 관련한 보도는 한번이라도 더 점검하는 게 의무며, 크로스체크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에게 북한은 ‘사실 보도’라는 기본원칙이 매우 자주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던 보도영역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우리 내부의 상대편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엄하면서도 유독 북한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춘풍처럼 관대해지는 현 정권의 편향된 인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자유들보다도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토의할 자유가 중요하다. 언론의 자유를 죽이는 것은 진리를 죽이는 것이다."

청와대는 밀턴의 위 경구를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공포를 벗어던질 수 있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일부 언론 보도'가 그 위태로움을 키우고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무책임', '무능력', '무원칙'의 극치다.

"백성의 언론을 억압하는 해로움은 물을 막는 해로움보다 더 크다. 냇물을 막으면 일시 급한 것은 면할 수가 있다. 그러나 한번 둑이 터지면 그 해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중국 춘추 시대 정나라의 자산(子産)이 한 위 말을 청와대는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글/서정욱 변호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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