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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A 순위 낮아도 스웨덴 교육은 옳아요”


입력 2018.05.26 06:21 수정 2018.05.26 16:31        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30> 108년 소피아 학교 교사 신미성 씨

“올바른 학교 교육은 성과가 아닌 과정과 방식이 더 중요하다”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2004년 스웨덴 남편과 결혼한 신미성 씨는 유치원 교사를 거쳐 현재 스웨덴 소피아 학교의 교사로 일하고 있다. (사진 = 신미성 제공) 2004년 스웨덴 남편과 결혼한 신미성 씨는 유치원 교사를 거쳐 현재 스웨덴 소피아 학교의 교사로 일하고 있다. (사진 = 신미성 제공)

신미성 씨는 한국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미성 씨(39)는 서울이 무척 낯선 한국 사람이다. 경상도가 삶 대부분의 무대였다. 대학 4학년 때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다. 생전 처음 나가보는 해외였다. 그 또래의 대학생들 상당수가 그렇듯이.

신미성 씨는 남반구에서 사랑을 시작했다.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던 한 스웨덴 청년을 만났다. 그 청년은 여행 애호가였다. 해외가 생전 처음이었던 미성 씨와는 달리 그는 이미 30여 개 국을 여행한 경험이 있다. 자그마한 배로 세계일주를 한다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니다. 그 청년은 호주에 머물렀고,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을 시작했다.

신미성 씨는 스웨덴의 아내와 엄마가 됐다.

호주에서 돌아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 스웨덴 청년과 장거리 연애를 했다. 롱디 커플이 된 것이다. 직선거리로 약 7800km다. 그러다가 2004년 결혼을 했고, 스웨덴으로 삶의 무대를 옮겼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됐으며 멋진 스웨덴 남자의 아내가 됐다. 그렇게 선택한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복지 제도가 좋은 나라라니.

“처음 스웨덴에 오자마자 스웨덴어 공부를 시작했죠.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 교육인 SFI를 신청했고, 공부를 하면서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어느 정도 스웨덴어 공부를 한 후 다시 대학에 진학했죠.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유초등 교육을 전공했어요. 이미 저는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었으니까요.”

신미성 씨는 스웨덴의 유치원 선생님이 됐다.

스웨덴 유치원은 ‘포르스콜라(Förskola)’라고 부른다. 생후 12개월이 지나면 다닐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웨덴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닌다. 맞벌이 부부가 워낙 많은데다, 부모들은 일찌감치 아이들이 사회를 배우게 하려고 유치원에 보낸다. 말도 배우기 전에 가정과 학교라는 가장 기초적인 2개의 사회를 배우게 하는 것이다.

스웨덴 학교의 교육은 아이들의 학습 능력 뿐 아니라 자율성과 창의성을 토대로 인성을 키워나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스웨덴 학교 규정상 아이들의 얼굴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어 일부 어린이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사진 = 신미성 제공) 스웨덴 학교의 교육은 아이들의 학습 능력 뿐 아니라 자율성과 창의성을 토대로 인성을 키워나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스웨덴 학교 규정상 아이들의 얼굴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어 일부 어린이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사진 = 신미성 제공)

그는 대학을 마친 후 2009년부터 유치원 교사가 된다. 유치원 교사는 꽤나 안정되고 유망한 직종이다. 최근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더욱 각광받는 직업이다. 아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명감만 있다면, 비교적 스웨덴어에 능숙하지 않아도,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에 다소 늦은 나이라도 할 수 있다.

미성 씨는 아이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공공의 교육이라는 점은 그에게 더 없이 매력적이었다. 또 사회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었다. 학생이나 부모들과의 친밀감이 높다보니 스웨덴의 다양한 가족관계를 간접 경험해 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스웨덴의 유치원은 스웨덴 교육의 토대다. 아이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표현된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포용력을 기른다. 스웨덴 사람보다 많은 이민자 선생님들을 통해 사람이 다르지 않음을 배운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배우지도 않는다.

“유치원 교사는 종교나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존중돼야 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죠. 그런 신념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아직 말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유아들에게도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주려고 노력하교요.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 자신이 먼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깨어나야 해요. 남자 아이도 자동차 장난감이 아닌 인형을 가지고 놀 수 있고, 어렸을 때부터 화장실의 남녀 구분도 없애주는 것, 그게 스웨덴 유치원에서의 교육이죠.”

성의 정체성에 따른 사람의 구분이 적고, 다른 종교나 철학적 신념이 인간의 관계를 규정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스웨덴 사람들의 보편적인 성격이 이렇게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스웨덴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보다도 유치원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1910년 개교한 소피아 학교. (사진 = 신미성 제공) 1910년 개교한 소피아 학교. (사진 = 신미성 제공)

신미성 씨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변했다.

스웨덴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있다. 전체 9학년의 학제 중 1~3학년은 저학년(lågstadiet), 4~6학년은 중간학년(mellanstadiet)이다. 우리로 치면 여기까지가 초등학교 과정이다. 7학년부터 9학년까지는 고학년(högstadiet), 중학교다. 9학년을 마치면 임나지에스콜라(Gymnasieskola)라고 부르는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미성 씨가 2017년부터 근무한 소피아 학교(Sofia Skola)는 1910년에 개교했다. 108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학교가 개교할 당시 스웨덴의 국왕이었던 구스타브 5세와 빅토리아 왕비가 개교식에 참석했다. 이 학교가 있는 지역은 쇠데르말름(Södermalm)인데, 특히 스웨덴의 언론인과 작가, 그리고 대학 교수 등의 인텔리 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그는 저학년을 맡고 있다. 주로 미술과 창의력, 그리고 야외 활동을 통한 자연친화적 수업을 한다.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자연친화적이고 인간 중심의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도 자연스럽게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학습을 이어간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편안하게 자아가 형성돼 가는 것이다. 그런 초등학교의 교육이 매우 마음에 든다. 자신이 받았던, 한국에서의 비인격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부 교육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의 학교 교육에는 어떠한 체벌도 존재하지 않죠.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더라도 집중을 강요하기 보다는 스스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옳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게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무리 어린 학생이라도 인격적인 모욕감을 느낄 만한 행동은 교사에게 절대 금물이고, 아이들 스스로도 서로의 인성에 손상을 입힐 행동들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죠. 아이들은 훈육의 대상이 아니고 교육의 대상이니까요.”

일부 한국의 학부모들은 스웨덴의 학습 능력이 매우 낮다는 문제제기를 한다. 한 마디로 ‘스웨덴의 학교는 아이들을 공부시키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뛰어 놀기만 한다’거나 ‘중학교를 졸업해도 제대로 푸는 수학 문제가 없다’는 토로를 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 PISA 순위를 든다.

아이들과 숲속에서 야외 활동 중인 신미성 씨. 스웨덴 아이들의 수업 시간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야외활동이다. (사진 신미성 제공) 아이들과 숲속에서 야외 활동 중인 신미성 씨. 스웨덴 아이들의 수업 시간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야외활동이다. (사진 신미성 제공)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는 학업성취도 평가 프로그램이다. 지난 2000년부터 3년마다 OECD와 주요 국가의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Math), 읽기(Reading), 그리고 과학(Science) 세 과목의 시험을 치러 순위를 매긴다. 2000년 첫 시험에서 한국은 핀란드에 이어 종합 2위를 기록했고 스웨덴은 10위였다.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싱가포르가 1위, 일본이 2위, 핀란드 5위, 한국 11위, 그리고 스웨덴은 28위였다.

스웨덴의 교육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근거로 제시되는 자료이기도 하다. 한국의 학부모 뿐 아니라 스웨덴의 학부모 중에서도 PISA 성적을 우려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스웨덴의 교육계가 고민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미성 씨의 생각은 다르다.

“대학 때 스웨덴 학교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졸업 논문을 썼었죠. 그래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아봤었는데, 스웨덴 언론에는 한국의 교육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없더군요. 한국은 교육열도, 학업 성취도도 높지만 교육 방식의 문제 때문에 배울 점이 있는 대상은 아니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죠. 결국 성과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과정과 방식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PISA 순위 높은 한국의 교육 방식보다 PISA 순위 낮아도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스웨덴의 교육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성 씨는 교사로서 자긍심과 함께 충분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나 학부모들 또한 그렇다. 교사의 맹목적 권위 의식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권 추락’이라는 비관적인 상황도 없다는 것이다. 충분히 존경받는 존재이고, 또 사명감을 갖는 존재라고 그는 생각한다.

신미성 씨는 스웨덴의 멋진 선생님으로 살고 있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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