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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항쟁 38주년’ 이제 국민통합의 길로 가자


입력 2018.05.19 08:04 수정 2018.05.19 09:30        데스크 (desk@dailian.co.kr)

성역 생겨…‘일본군위안부’, ‘세월호’, ‘5. 18’, ‘4. 3’ 등

‘적폐청산’땅 깊이 파…구덩이에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여야가 5월 18일 '드루킹 댓글 사건' 특검과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국민의 지탄을 받으며 그렇게 끌던 국회공전을 끝낸 것이다. 하지만 민주평화당이 15일 "합의를 재고하라"고 요구했다. 이유는 "5·18 무시하는 반역사적 처사"라는 것이다. 내용인 즉은 ‘5. 18기념식’에 국회의원들이 참여치 못하게 되기 때문이란 것이다. 호남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민주당도 합의한 일인데, 왜 민주평화당이 저랄까 생각도 해 봤다. 호남 대표성을 강조하려는 고육책이라지만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실재로 우려와 달리 많은 여야 국회의원들이 참여했으니 기우였음이 증명됐다.

우리사회에는 근래에 몇 가지 성역이 생겼다. ‘일본군위안부’, ‘세월호’, ‘5. 18’, ‘4. 3’ 등이 그것이다. 이런 주제만 나오면 사람들은 극도로 조심한다. 결론은 정해져 있고, 이견은 용인되지 않는다. 때로는 온-오프라인에서 험한 말 들을 뿐 아니라, 신변의 물리적 위협까지 받게 된다. 그 중 규모나 실체 측면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이 ‘5. 18 민주항쟁’이다.

‘5. 18 진상규명’은 DJ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도 있었다. ‘호남정부’때로, 직접적인 피해를 봤던 DJ가 대통령이 된 뒤의 일이다. 그 때 많은 성과가 있었다. 국민통합에도 기여한 측면이 많다. 거기 까지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것을 보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 밝히지 못한 ‘진실’을 지금 밝히겠다고 온 땅을 파헤치고 있다. 온갖 미심적은 증언이 난무한다. 그런 증언을 친정부 언론이 대서특필한다. 허기에 찬 시민단체, 지역단체는 이를 받아 더 크게 재생산한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산을 투입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한다. 현 정권이 정치에 활용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행태다. ‘진실’을 밝히는데 시효는 없다. 그러나 정권이 정치적으로 이용할수록 ‘역사적 실체’는 오염되고 만다.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고맙다’고 한 정권은 새로운 은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 정부가 들어선 후 다시 ‘5.18’이 이슈가 됐다. ‘지역주의’는 퇴행적이지만 현존하는 정치적 힘이다. 호남민심의 정치적 정체성은 ‘5. 18’에 있다. 그 정체성은 ‘한(恨)’에 기반하기 때문에, 보다 높이 승화되지 않는다면 본질적으로 과거지향적이고 퇴행적이다. 현 정부들어 암매장당한 희생자를 찾겠다면 광주교도소를 파기 시작했다. 특별한 성과가 없자, 국가예산을 배정해 발굴지역을 확대하고 더 깊이 파겠다고 한다.

이제는 당시 계엄군 등 관련자들을 전수조사해 증언을 받아내겠다고 한다. DJ정권 이후에도 정말 많은 세월이 지났다. 5. 18이후 38년이고, DJ정권은 20년이다. 그 정도의 세월이면 기억하던 명확한 사실도 헷갈릴 수 있는 시간이다. DJ정부 때도 나오지 않은 증언을 새삼 억지로 짜내겠다는 것인가? DJ때도 말 못하던 ‘진실’이 지금 발설될 것이라고 믿는가? 그 ‘비상식’을 보정하기 위해 더 큰 장치들과 더 큰 예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예산을 받아내기 위해 일을 계속 확대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기억은 너무 불안정하고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가능한 것이다. 기억의 불확실성에 관한 연구들은 워낙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그래서 물증 없는 증언만으로는 죄를 입증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증언과 추측에 근거한 혐의로 구속을 해 놓고, 물증이 없어 무죄를 선고받는 일’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래서 정치적인 사건은 형을 받더라도, 구속사유와 판결사유가 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원칙적으로 ‘별건수사’고 불법이다.

‘의심’은 끝이 없다. 무엇인가 밝혀져도 이에 머물지 않는다. 그 기저에는 ‘불신’과 ‘미움’의 감정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 미움의 감정은 불과 같아서 이성적 통제가 안 된다. 무엇이든 태울 재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의 근거를 찾고자 한다. 증거가 없으면 발명하기도 한다. 세월호의 온갖 괴담들이 그런 발명품이다. 나중에 보면 상식적이지 않지만, 그 때 그 사람들은 믿고 싶으니 우기고, 그 우기는 마음이 모여서 실체가 되고 사실을 만든다.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이다. 그 때도 ‘그 큰 배를 침몰시킬 정도로 상처를 입힌 잠수함이 흔적도 안남기고 그 지역을 무사히 빼져 나올 수 있었겠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만화적 상상력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선체가 인양되고 세워졌다. 충돌했다는 위치에 상처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음모론을 제기했던 사람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새로운 의혹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정부의 예산을 써가며 말이다. 그들은 ‘진실’을 추구한다지만, 애초가 진실 따위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정적에 타격을 입힐 기회로 삼고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사실이 밝혀져도 그들의 ‘확증편향’은 새로운 의심의 원동력이 된다. 결국 의심은 끝없이 바닥을 녹여 떨어지고, 더 이상 녹일 수 없는 밑바닥까지 도달할 것이다. 그 곳은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일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는 모든 국민이지만, 최고의 피해자는 세월호 유족들이다. 그들을 돕겠다고 하면서 유족들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기고 원한을 주입시켰다. 이미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힘든 지경에 이르렀기에 그냥 상황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다. 꼼짝없이 포로와 인질이 된 것이다. 인질들은 인질범에 동조하는 ‘스톡홀름증후군’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 동력’은 이제 거의 소진되었다. 정치적 활용을 위해 이성을 무기력하게 할 더 광범위한 ‘의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바통을 이어받을 만큼 가소성이 큰 사건이 ‘5. 18’이다. 이미 많이 탔지만 아직도 태울 수 있는 자원이 많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은 아주 단순하지만, ‘5. 18’은 너무 광범위하고 증언도 다양하다. 그 증언을 좆아 증거를 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다. 넉넉히 예산도 배정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시민과 호남 국민들은 또 다시 불쏘시개와 인질이 되고 있다.

‘진실’이 있다면 당연히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그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다. 그 진실이 국민의 삶과 국가의 존속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거나, 그 과정이 일상에 지나치게 피해를 준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시점 권력자나 주도세력의 ‘진실’이 보편적인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거짓 진실’이다. ‘진실’을 추구한다며 끊임없이 ‘의혹’만을 부각시키면 국민적 피해는 헤아리기 힘들다. 진실보다는 ‘푸닥거리’에만 관심이 있는, ‘먹튀에 능한 사이비 종교인들’이 주도하는 세상은 재앙을 맞을 것이다. 지금같이 국민통합이 필요한 안보와 경제의 위기에선 더 그렇다.

‘적폐청산’이라며 무모하게 땅을 깊이 파는 사람은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묻힐 수도 있다. 38주년 ‘5. 18기념일’을 맞아, 국민통합의 길을 찾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고 정권이 생존하는 방법일 것이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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