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종교의 땅에 뿌리는 희망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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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바랜 종교의 땅에 뿌리는 희망의 씨앗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29> 스톡홀름 한인 교회 주영찬 목사
    혼전 동거와 동성애, 정죄할 수 없지만 원칙 어기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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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5-12 08:08
    이석원 객원기자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 스톡홀름 한인 교회 주영찬 목사. 그는 5년 째 이곳의 담임 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은 루터교가 국교다. 루터교는 1517년 독일의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 개혁이 이뤄지고 생긴 첫 개신교, 프로테스탄트다. 1523년 구스타브 바사 왕이 덴마크로부터 독립시키고 스웨덴을 건설할 때 독일에서 마틴 루터와 교우한 올라우스 페트리(Olaus Petri)는 바사 왕과 함께 스웨덴의 사회제도와 종교개혁을 이끌었고, 그 후 1560년 루터교는 스웨덴의 국교가 됐다.

    그 중에서도 스웨덴국교회(Svenska Kyrkan)라고도 불리는 복음루터파가 스웨덴 루터교다. 스웨덴 전체 인구의 90%가 복음루터파에 속해 있다. 실제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그중 20%가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종교가 뭐니?”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루터란(Lutheran. 루터교인)”이라고 대답한다.

    루터교를 시민들의 정신적 기반으로 삼고 살고 있는 스웨덴에서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스웨덴은 195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다른 종교의 활동에 자유가 보장됐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이다 보니 종교도 국가의 포괄적 관리 하에 있었던 탓이다. 종교 단체라고 해서 스웨덴 국가의 조세 정책에서 제외되지 않았고, 또 교회의 조직도 국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루터교가 아닌 다른 기독교, 예컨대 가톨릭이나 장로교, 영국 성공회 등에 대해서도 국가의 통제, 엄밀히 말해서는 일종의 속박이 이뤄졌다. 효과적으로 종교를 국가가 간섭하려면 종교의 다양화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으니.

    ▲ 지난 2016년 추수감사절 예배 때 설교를 하고 있는 주 목사. (사진 = 주영찬 목사 제공)

    그러다가 스웨덴 정부와 교회는 ‘교회의 자유’를 선언했다. 루터교가 아니더라도, 때로는 국가의 적극적인 간섭을 받지 않더라도 선교의 자유가 보장됐다. 루터교 외 교회를 설립하는 것은 스웨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리고 조세 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가 이뤄진 것이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간섭을 받지 않는 개신교 교회가 하나 있다. 스톡홀름 한인 교회다. 스톡홀름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부촌인 외스테르말름에 위치해 있는 대단히 평화롭고 안정된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약 120명의 한국인 교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있는 목회자는 주영찬 목사(49)다.

    “제가 이 곳에 온 건 5년 전인 2013년 11월입니다. 그 전까지 한국 부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죠. 스톡홀름 한인 교회에서는 한국인 목사를 초빙하는 광고를 냈고, 저는 친구 목사님의 권유로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스톡홀름은 물론 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한다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고, 스톡홀름에 오는 것에도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저에게 들려온 소명이 있었죠. 그리고 그 세월이 어느덧 5년에 이르네요.”

    주 목사는 이미 유럽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2003년 한국에서 목사 안수(예장합동)를 받고 얼마 후 그는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예배’라는 교회의 핵심이 되는 형식에 대한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4년 간 영국에 머물렀다. 그가 스톡홀름에 부임하고 너무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스웨덴과 제법 비슷한 면이 많은 영국 유학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스톡홀름 한인 교회는, 스웨덴국교회에 속한 채 한국 크리스찬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임마누엘 교회에서 독립한 교회다. 1987년 8월 30일 완전히 독립된 한국인의 기독교 신앙 공동체로 설립된 스톡홀름 한인 교회는 스웨덴 정부나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회들에서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는다. 100% 신자들의 헌금으로 교회가 운영되고 스웨덴국교회인 ‘올라우스 페트리 교회(Olaus Petri Församlingshus)’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 한국인 교인이 120명 가량인 스톡홀름 한인 교회에서 주 목사는 신앙의 지도자일 뿐 아니라 초기 스웨덴 정착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자리잡기 위한 여러가지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사진 =이석원)

    주 목사가 스웨덴에 처음 왔을 때, 일반적으로 한국이나 영국 등에서 느낄 수 있는 목회자에 대한 인식과는 사뭇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스웨덴 사람이나 혹은 스웨덴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들에게 ‘목사’는 그저 자기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목사라는 직분 자체가 여러 가지 것을 의미하거나 관계를 설정해주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죠. 일종의 ‘종교 공무원’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어요. 낯설었죠. 처음에는 당황스러움도 있었지만, 지내면서 익숙해지는 면도 있고, 차차 적응이 되어간다고 할까요. 하지만 교회 공동체에서는 다른 환경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차츰 교인들과 더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생활하고, 관계할 수 있는 이유가 되더군요.”

    그런데 한국인 목회자인 주 목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스웨덴의 문화와 제도에 속한 것들이다. 스웨덴은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고 불리는 성소수자들의 천국이다. 세계에서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고, 매년 7월이면 성 소수자들의 퍼레이드인 'PRIDE‘가 그 어떤 종교 행사나 전통 행사보다 성대하게 열리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최고 수준의 출산율을 자랑하지만, 혼인율은 낮고 대신 혼전 동거인 삼보(Sambo)가 기혼과 거의 같은 법적 상태를 인정받는 곳이다. 또 젊은 여성들의 흡연율도 높고, 자유로운 성관계가 일상화 돼 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열린 사회 중 하나였다.

    성직자, 그것도 다소 보수적인 성향의 한국 기독교 목사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쉽지 않은 벽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매주 주 목사의 설교를 듣는 사람 중에 결혼이 아닌 동거 관계인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한국의 정서나, 한국 교회의 도덕적 잣대를 그대로 들이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혼전 동거, LGBT, 그리고 술과 담배와 자유로운 성관계 등의 문제는 가장 난해했습니다. 그것은 스웨덴의 문화였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스웨덴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수도 없고, 한국의 정서로만 이야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안돼!”라거나 “그건 죄야!”라고 몰아세울 수 없었지만 그저 방관하고 묵인할 수도 없었죠. 그래서 저는 성경에 입각한 길을 제시했죠. 원칙에서 물러서지는 않았지만, 결국 길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일 수밖에 없었죠.“

    ▲ 주 목사가 이끄는 스톡홀름 한인 교회는 스톡홀름 지역에서 유일한 완전 독립적 신앙 공동체이다. (사진 = 이석원)

    교회의 목사는 단순히 신앙의 면에서만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는다. 특히 그 규모가 크지 않은 공동체일수록, 그리고 한국인의 감성으로는 성직자는 삶의 선생 노릇까지 해야 한다. 한국인들에게는 지극히 작은 사회인 스웨덴에서 5년을 산다는 것은, 이제 스웨덴의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이나 시작한 사람들에게 정보 제공자의 역할과 선험적 지식의 공유자의 역할도 함께 해야 한다.

    특히 최근 주재원, 유학, 취업, 국제 결혼 등으로 스웨덴으로 삶의 공간을 옮기는 한국인이 많은 때 주영찬 목사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 뿐 아니라 ‘먼저 스웨덴에서 살아가고 있는 선험자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그런 그는 “우리는 한국이 아닌 스웨덴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 스웨덴을 롤모델로 생각하는 경향이 요즘 들어 더 강한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보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죠. 스웨덴을 보기만 할 때는 때로는 선망하고, 어떨 때는 실망도 하지만, 살 때는 스웨덴의 법과 제도를 따라야 합니다. 특히 높은 세금, 사람이 최우선시 되는 운전 문화 등은 이들의 법이자 제도인데, 빨리 익숙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가 강조하는 것은 ‘느림’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살려면 느림의 미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이 느리죠. 이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원래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고 용인해야만 합니다. 일반 상점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심지어는 병원과 교회에서도 모든 게 느리고 천천히 진행됩니다. 그건 한국인들에게는 대단히 답답한 일이지만, 익숙해지면 그 또한 여유일 수 있으니까요.”

    스톡홀름 한인 교회는 풍족하지 않지만 알차다. 자신들의 신앙의 공간에서 적당히 만족하고 크게 피로함을 느끼지 않는다. 어느 정도 지친 삶의 활력소가 되고, 적절한 피로 회복제가 돼 준다. 그건 마치 스웨덴의 ‘라곰(Lagom. 적당이, 알맞게 하는 뜻으로 스웨덴의 기본 정신이다)’을 많이 닮아 있다.

    주영찬 목사는 그런 스웨덴의 교회를 이끌어 나가면서 평안함을 느낀다. 그는 교인들과 절대 괴리되지도 않지만, 요구하지 않는 교인들의 삶 속으로 깊이 관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성경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소망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인 교회 목회자지만 가장 스웨덴스러운 생각으로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정신적인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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