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폭압체제는 미국이 아니라 神도 보장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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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폭압체제는 미국이 아니라 神도 보장 못한다
    <칼럼>웃는 얼굴 한번 봤을뿐인데 무조건 믿으라니...
    과도한 기대감 부풀게 하기보다는 신중한 스텝 절실
    기사본문
    등록 : 2018-05-07 06:27
    이진곤 언론인
    ▲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남측 문재인 대통령과 북측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찬 디저트인 '민족의 봄'을 개봉한 후 박수를 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1] USB 준 건 기밀누설 아닌가

    "남북사이에 강한 신뢰가 구축됐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4.27 판문점 정상회담 후 KBS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정말 대단하다. 분단 73년, 전쟁발발 68년, 휴전 65년의 해에 갑자기 남북한이 ‘강한 신뢰’로 맺어졌다. 그게 판문점 선언이다. 이런 일이 우리 생애에 일어나다니! 이야말로 세계사적 기적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당장의 확인이 불가능한 일방적 ‘주장’이라는 데 있다. 정말 그렇다면야 온 국민이 여광여취(如狂如醉)하여 춤을 춘다고 누가 뭐라고 하랴. 그런데 정부는 그 근거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 오랜 세월을 적대관계에 있던 양측 사이에 언제 그처럼 살뜰한 믿음이 생겼다는 것인지…. 일단 그렇게 믿고 있으면 도널드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끝난 후 말해 주겠다는 것일까?

    지금까지 짐작되기로는 말 만으로의 신뢰다. 정말 변할 것 같지 않던 김정은이 우리의 짐작과는 판연히 달라진 표정과 화술로 우리 앞에 등장해서 종전과 평화를 역설했고, 두 정상의 합의문이 이를 확인해줬는데, 그걸 안 믿고 뭘 믿겠느냐는 투다. 그렇지만 변화의 폭이 너무 커서 믿고 싶기는 하지만 믿기지는 않는다.

    그간 동원할 수 있는 가장 험악하고 추악한 용어를 모두 구사하며 우리를 위협하고 저주하고 윽박지르던 저들이 어느 날 갑자기 태도와 말투를 바꿨다. 그게 너무 기특해서인가. 그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체면이 많이 섰다고 여겨 그러는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단 하루의 만남이 서로를 겨누는 총구를 ‘강한 신뢰’의 관계로 바꿨다는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

    그걸 확신할 수 있는 내밀한 대화, 나아가 맹약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런 게 없었다면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한반도 신경제공동체에 대한 설명자료가 담겼다는 USB를 전달할 수 있었던 근거와 배경은 무엇으로 설명하려 하는가.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검증도 없지 않았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연설문 등을 남에게 미리 보여줬다는 것으로 1심 재판에서 ‘국가기밀누설죄’ 적용을 받았는데,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넘긴 문서의 성격은 아주 다른가.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것은 문 대통령을 모든 국민이 철석같이 믿어서인가, 아니면 그 위세에 주눅들어서인가.

    정부는 그 ‘강한 신뢰’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휴전선 확성기를 철거하고 민간의 대북전단 보내기를 저지하고 나섰다. 저들이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는 그 신뢰를 이번에는 확실히 지킬 것으로 믿지만(문 대통령이 보증한 셈이니까), 만약 다시 배신당할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이런 걱정을 비웃듯 북한에 대한 믿음이 전 국민적으로 확산(여론조사에 따르면)되고 있다. 정말 세상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2] 돌연한 변화엔 배경 있게 마련

    벌써 노벨평화상이 누구에게 주어질 것인지를 두고 우리 사회에 추측이 만발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관심도 우리에 못지않은 모양으로 공화당 의원 여럿이 벌써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들린다. 문 대통령은 물론 김정은까지 수상 가능성이 운위되고 있다. 세계의 정치인들과 관찰자들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뜻이겠다. 그렇게만 되면 오죽 좋으랴.

    문 대통령은 특히 북한 문제와 관련, 평화의 화신이 된 인상이다. 미국보다는 북한쪽으로 정서적 편향성을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강력한 전쟁 반대자, 평화 애호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는 특럼프-김정은 회담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과 노력을 다할 결의에 차 있다.

    트럼프의 경우, 어쩌면 노벨평화상의 매력에 벌써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난달 28일 미시간주 워싱턴 타운십에서 열린 유세집회에서 청중들이 ‘노벨 노벨’을 연호하자 흐뭇한 표정을 지었었다. 뮬러 특별검사의 수사, 11월 중간선거, 2년여 후의 대선 등 큰 과제와 문제를 안고 있는 그로서는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려 할 리가 없다. 따라서 미국의 안전이 보장되는 선에서 과감한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다만 미국 정치의 전통과 미국인의 가치관으로 미루어 트럼프가 개인적․당파적 이익을 위해 다 잡은 야수를 다시 풀어주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리라고 믿고 싶다).

    김정은의 갑작스런 변모는 여전히 난해하다. 뭔가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문 대통령에게는 솔직히 고백했을지도 모르지만). 국제제재가 장기화함에 따라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핵은 보유하고 있는 만큼 ‘ICBM포기’ 정도로 트럼프를 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면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현실적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일까? 한국에 진보좌파 정권이 들어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책략일 지도 모른다.

    세계사의 물줄기가 이렇게도 바뀔 수 있는 걸까. 대한민국 5천만 국민, 남북한 8천만 겨레의 운명이 단 몇 사람의 결심에 좌우될 수 있다니! 김정은이 그 중 한 명, 그러니까 민족의 운명에 대한 결정력의 한 자락을 쥐고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은 너무 심한 고통이고 오욕이다.

    [3] 웃는 얼굴 단 한 번 봤을 뿐인데

    강력한 권력을 희구하는 리더들에게는 남다른 모험심이 있는 것 같이 여겨진다. 모험이야말로 정치리더십의 진면목이다. 좋게 말하면 모험심이지만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자면 도박심리 이겠다. 북한의 김씨 3대가 그 전형적인 측면과 양상을 보여 왔다. 이른바 ‘벼랑끝 전술’이다. 트럼프의 경제 제재 및 군사 압박도 갬블링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

    최근 갑자기 대화를 통한 해결의 물꼬가 트인데 대해 트럼프는 ‘최대한 압박’ 전략의 효과라고 자랑한다. 김정은은 자신의 통 큰 결단이 거둔 성과라고 여길 법하다.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자신들의 딜러역할이 절묘했다고 자찬하고 있지 않을까? 샴페인병마개를 이미 반쯤 딴 분위기다. “크게 내질렀더니 미국과 북한은 물론이요, 우리 국민들도 일거에 열광적으로 호응해 오고 있지 않느냐”는 기분이 되어 있을 듯하다.

    문제는 김정은의 계산이다. 정말로 평화공존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열망과 자신감을 갖고 있을까? 이 들뜬 분위기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있을까? 김정은은 진실로 달라졌을까? 이제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 공동번영’만 노래하면 되는 것일까?

    김정은은 겨우 한 번 얼굴을 세상에 공개했을 뿐이다. 그 얼굴이 앳되고 순진해 보여서, 그 태도가 예절을 아는 것 같아서 사람들은 더 열광했다. 진실로 그가 바뀌었다면 이미 북한 내부에서는 정치범 수용소 철폐, 온갖 억압 기제의 폐기가 진행되고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주민들의 용서와 동의를 얻어낼 때만이 그는 북한을 대표할 수 있다. 북한 학정 체제와의 화해는 그곳 겨레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리고 폭정으로 존립하는 체제는 미국이 아니라 신도 보장하지 못한다.

    당연히 우리에 대해서도 진실이 담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 그럴 기미조차 없다. 단지 그가 웃으며 말하는 것을 봤을 뿐이다. 문 대통령은 더 깊이 파악했을지 모르나 말을 하지 않으니 국민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지키며 일궈 온 나라인지, 우리에게 오늘이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야 했는지를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전쟁의 폐허, 그 깜깜한 바닥에서 출발해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라는 고지에 올라섰다.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앞 세대의 힘으로! 그래서 더욱 명심할 일이다. 추락은 삽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청컨대 북한 김정은 체제를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여주시라. 그게 없다면 국민을 들뜨게 자극하지 마시라. 5천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 정부라면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이 과도한 기대를 갖게 하면 그것이 오히려 짐이 된다는 것을 유념하시라.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거저 얻어지는 안전이 아니라 안전을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와 용기이다. 그걸 북돋우는 것이 바로 정직한 정부의 책무라고 믿는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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