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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행정관-감사원 국장 부부의 '조폭 갑질'


입력 2018.04.22 09:21 수정 2018.04.22 11:19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남편은 한미연구소 예산 문제 제기하고

부인은 연수시켜주면 문제 해결시켜준다고 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홈페이지 화면 캡처.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홈페이지 화면 캡처.

“제가 아는 한 남편과 김기식 전 의원은 한미연구소(USKI)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김 전 의원의 행동이 연구소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면, 제 남편이 이를 중재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홍일표 청와대 정책실 선임행정관의 부인인 감사원 국장 장모 씨가 지난해 1월 28일 미국 한미연구소의 방문연구원으로 선정돼 국비 연수를 가기에 앞서 구재회 연구소 소장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홍 행정관은 김 전 의원이 19대 국회의원 시절 한미연구소 예산을 문제 삼을 당시 그의 보좌관 이었다.

또한 홍 행정관은 부인이 1년간 한미연구소에서 연수를 하고 돌아온 올 3월을 전후해 한미연구소 예산 지원 중단 실행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예산 지원을 끊겠다는 압력을 중재해주겠다고 하여 연수를 다녀온 후 오자마자 지원 중단을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홍 행정관과 장 국장의 행위는 불법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파렴치한 갑질중의 슈퍼 갑질이다.

"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중국 양(梁)나라의 소통이 엮은 '문선', '군자행(君子行)'에 있는 말로, 군자는 남의 공연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연수기관중 왜 하필이면 남편이 예산 지원 중단 압력을 넣고 있던 한미연구소인가? 압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싫어서라도 피하는 게 상식 아닌가?

법적으로도 홍 행정관과 장 국장의 행위는 충분히 직권남용죄와 강요죄의 성립이 가능하다고 본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행위 양태(樣態)가 폭행이나 협박을 필수 요소로 하고 있지 않고, 보호법익이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라는 점에서 강요죄와 다르다. 따라서 공무원이 폭행이나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할 경우 직권남용죄와 강요죄의 실체적 경합범이 된다는 것이 판례이다.

먼저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 중 '직권남용' 부분에 대해 살펴보자.

메일 내용중 장 국장이 “나를 뽑아주면 감사원이 의미 있는 결정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한 부분은 직권남용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다.

또 “나를 김기식 전 의원 보좌관의 부인으로 보지 말고 한국 감사원의 국장으로 봐주면 좋겠다. 감사원과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미래 관계를 생각해달라”고 한 부분도 문제다.

감사원과 SAIS의 미래 관계가 본인의 연수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가? 감사원은 헌법 제97조에 따라 국가의 세입과 세출을 감사하고, 국가기관과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를 상시 감독하여 그 집행에 적정을 기하는 감찰기관이다.

또한 행정기관의 사무와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여 행정운영의 개선을 도모하는 것도 감사원의 주요 직무다.

감사원의 직무범위가 이처럼 넓은 만큼 감사원 직원의 공공기관에 대한 갑질이나 청탁도 폭넓게 직권남용이 인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권리행사방해' 부분에 대해 살펴보자.

“장 국장의 메일이 ‘도와주겠다’는 의미였을지라도, 메일을 받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받을 불이익이 어떤 것일까’라는 점이었다.”

한미연구소 사무총장을 지낸 주용식 교수의 말이다. 당시 모든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장 국장은 메일에서 ‘'나를 뽑은 걸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나를 뽑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말로 읽히기 때문이다.

당시 예산삭감, 더 나아가 존폐의 위기까지 몰린 한미연구소 처지에선 장 국장의 압력성 갑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을중의 슈퍼 을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예산권과 결산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 보좌관과 감사원 국장의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모든 정황과 법리를 감안할 때 결국 직권남용 내지 협박에 의한 강요죄의 성립은 넉넉히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판결을 보면 승마지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직권남용 내지 강요죄다. 그렇다면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을 부르짖는 현 정권의 처벌기준도 최소한 과거 정권과 동일하거나 아니면 더 엄격해야 한다.

동서와 고금의 역사에서 개혁의 주체 세력이 개혁의 객체 세력보다 도덕적 우위를 갖추지 못한 경우에 성공한 개혁은 없었기 때문이다.

검경은 장 국장의 직권남용뿐 아니라 남편의 공모 여부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부인이 1년간 연수를 간다면 홍 행정관 또한 부인이 메일을 보낸 사실 등 자초지종을 알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기 때문이다.

이미 홍 행정관이 부인의 선정 과정에 구재회 한미연구소장과 한 차례 통화했다는 증언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결국 홍 행정관은 부인의 의혹과 관련해 일언반구 말이 없이 침묵의 벽뒤로 숨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상하게 국민앞에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청와대의 초기 해명도 문제다.

청와대는 이 사건에 대한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확인 결과 정당하게 국가 비용으로 연구를 갔다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세한 내용의 확인도 않고 일단 부인부터 하다가 나중에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나오면 슬쩍 말을 바꾸는 이런 행태야말로 진정 청산해야할 적폐중의 적폐다.

이제라도 감사원은 스스로 제살을 도려내는 각오로 제기된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 직권남용이나 품위손상 같은 비위 행위 여부를 엄정히 가려내야 한다.

검경 또한 이 문제를 감사원의 자체 감찰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범법 여부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누가 봐도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은 공정하지 못했으며, 결과도 정의롭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적폐청산이나 개혁은 항상 자기 자신부터 솔선수범하여 행해야 한다.

청와대와 감사원, 금융감독원 등 최고 권력기관의 갑질부터 ‘국민 눈높이'에 맞춰 근절하는 것이 진정한 적폐청산이요 개혁이다. 현 정권은 아무리 개혁의 '방향'과 '내용'이 옳더라도 '내로남불식의 개혁'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글/서정욱 변호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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