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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거품 붕괴, 몇년 남았나 살펴보니...


입력 2018.04.17 22:42 수정 2018.04.18 05:58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2020년쯤 그것도 미증유의 큰 규모로

중국의 흐름은 무신(戊申)이란 간지(干支) 코드 하나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60년마다 戊申(무신)년은 한 번 온다, 1968년 그리고 오는 2028년이 무신년이 되는데 그 해가 중국에겐 운세 바닥 즉 입춘(立春)이 된다. 그러면 크게 10년마다 중국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고 또 예측도 가능하다.

가령 1968년의 2년 전엔 이른바 문화대혁명(줄여서 문혁)이 시작되어 온 중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밀어 넣으면서 엄청난 수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중국 당국이 공식 인정한 사망자 수만 해도 3만 4800 명이고 정확한 수치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대략 500만에서 많게는 1000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혁은 1966년에 시작되어 1976년 마오쩌뚱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는데 흔히 중국인들이 ‘10년의 대동란(大動亂)’이라 부르는 이 혼란기를 확실하게 마무리 지은 사람이 바로 덩샤오핑이다.

입춘 바닥으로부터 10년이 경과한 1978년 무렵부터 중국은 실로 엄청난 방향전환을 시도했다. 국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심하던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은 1979년 1월 1일부로 급기야 소련과의 동맹을 끊어버리고 미국과 전격적으로 수교하는 그야말로 일대 방향 전환을 했던 것이다.

미국과의 수교야말로 오늘날 중국이 부강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다. 달리 무슨 이유가 있으랴! (미국에 맞서는 자는 고생할 것이고 미국과 친해지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가 모두 잘 알고 있다, 중국이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을까나.)

그러면 다시 10년이 흘러 1988년 무렵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중국 안에서 일어났을까? 바닥에서 20년이 지났으니 말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많은 면에서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국민들 특히 젊은 대학생들에게 강렬한 민주주의 열풍도 불러 일으켰다. 이에 터진 사건이 바로 1989년 6월의 천안문 사건 달리 천안문 민주화운동이 그것이다.

일당 체제인 중국은 청년들의 요구를 무력으로 강제 진압했다. 하지만 비록 민주화 시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제 분명해진 것은 중국이 그만큼 변화와 발전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는 사실이었다. (강제 진압을 지시한 것은 덩샤오핑이었는데 이 조치에 대해 역사가들은 두고두고 쟁론을 펼칠 것이라 본다.)

비록 안타깝게도 민주화는 실패했으나 중국 경제는 서서히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다시 10년이 흘러 1998년 무렵이 되자 이제 개혁개방에 따른 효과가 본격화되고 있었다. 덩샤오핑은 1996년에 사망했으나 중국은 이제 일제히 약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2001년 중국은 WTO에 가입했고 이로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인 수출 길을 텄다. 역사상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돈 즉 투자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으니 이제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탈바꿈해가고 있었다. 물론 매연과 미세먼지 생산의 글로벌 공장도 되어갔다.

다시 10년이 흘러 2008년, 국운의 바닥으로부터 40년이 흐른 때가 되자 이제 중국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것이 확인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식 당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사실상의 일반석에 앉아 비지땀을 뻘뻘 흘려야만 했다, 중국의 의도된 연출이었다.

미국은 금융위기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고 나머지 글로벌 강국들도 비틀거리는 판국에 중국은 홀로 약진하고 있었던 2008년이었다.

이처럼 사람도 그렇지만 나라 역시도 바닥운으로부터 40년이 지나면 절정기를 맞이하는 법이다. 시간과 순환의 일반 공식이다. 일본의 경우 1985년이 바로 그때였는데 그 무렵 일본은 겁을 상실한 나머지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를 무려 두 배 이상 상승시키는 조치에 사인해주면서 거품을 만들고 얼마 가지 않아 붕괴 국면을 맞이했다. 바보들!

일본의 몰락을 지켜본 우리나 중국은 최대한 환율 문제만큼은 조심스럽게 대응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가계부채에 낚여 들었고 중국 역시 전혀 다른 방면에서 허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8년 이후 중국인 모두가 들뜨기 시작했다. 예전의 중화제국이 지녔던 위용을 되찾자는 바람이 중국 사회의 지배적인 흐름으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에 2013년에 등장한 시진핑은 그런 욕구를 ‘중국몽’이란 단어 하나로 요약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그 무렵 성장의 속도가 서서히 떨어져가기 시작했다. 급격한 통화량 증가와 부채 증가를 통해서만이 그런대로 경제 활력을 유지해갈 수 있었다. 이미 중국의 고성장 시대는 끝이 났건만 시진핑 체제는 무리를 해서라도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시키느라 바쁘다.

뿐만 아니라 겁을 상실한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제 우리 중국의 시대가 왔으니 너희들 미국은 얌전하게 물러가라는 요구였다.

바닥운에서 50년이 흐른 2018년 올해, 급기야 시진핑은 중국의 꿈을 구현한다는 명분 아래 헌법 수정을 통해 장기집권체제를 갖추었고 불만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국가감찰위원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전 인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린다. 중국은 국방비보다 내부 치안에 더 많은 예산을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란 사실이다. 신문에 보면 중국이 국방비를 대폭 증액한다는 뉴스는 있어도 내부 공공안전비용이 국방비보다 더 크다는 소식은 전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최정예 부대는 베이징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바, 이는 다른 나라보다도 내부의 반란이나 봉기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옛날 중국 왕조들은 반란에 대비해 수도 주변에 최고의 정예인 금군(禁軍)을 두긴 했지만 오늘날에도 그렇다니 실로 어이가 없다.

올해 시진핑의 임기철폐는 역사의 퇴행이다. 그간 승승장구해오던 중국도 이제 본격적으로 맛이 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더 없는 징조라고 본다.

이런 역사의 역행이 올 3월에 있었으니 앞으로 2년이면 조짐이 나타나고 3년이면 중국은 어떤 식으로든 굉음을 내면서 무너질 것으로 단정한다. 이 또한 철저한 순환의 공식이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8년엔 조용히 망해있을 나라가 바로 중국이란 확신을 갖게 된다. 2028년은 때마침 또 한 번의 중국 국운의 바닥이란 점도 공교롭다.

올 해 시작된 미중간의 무역전쟁 역시 중국의 붕괴에 큰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 미국으로선 더 이상 중국을 그냥 두고만 볼 순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물리적인 전쟁을 택하진 않을 것이라 본다, 다른 수단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사실상 중국의 고도성장은 2010년으로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그 이후 엄청난 무리를 거듭해온 중국이다.

2000년에서 2015년까지의 15년 사이에 중국의 GDP는 무려 8배나 커졌다. 5년마다 더블로 늘어난 셈인데 이는 놀라운 기적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엄청난 무리가 수반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성장의 배경에는 바로 너무나도 막대한 통화량 증가와 부채 증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이 우리보다 국운의 주기가 4년 후인 까닭에 중국의 2000-2015년 사이는 우리에게 있어 1996-2011 년 사이가 된다. 우리는 그 기간 동안 어땠을까? 한 번 살펴보자. 우리의 경우 1996년의 1인당 GDP는 1만 2000 달러였고 2011년은 2만 2000 달러였으니 두 배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같은 운세 기간 동안에 무려 8배나 성장했으니 이를 두고 좋게 평가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그간의 엄청나 폭주를 통해 무지막지한 거품, 어쩌면 역사상 미증유의 대규모 거품이 중국 경제 내부에 서려있다는 말도 된다.

동시에 중국의 양극화는 우리보다 더 심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인민의 불만이 급속도로 높아지는 바람에 불안을 느낀 중국 공산당이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용인했다는 말도 들려오는데 나름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간 미국에선 중국이 과연 언제 붕괴하느냐를 놓고 이제나 저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는 사람들 특히 전문가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까지도 겉으론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 점에 대해 변방의 호호당이 한 수 지도해주고자 한다. 이미 벌써 중국 붕괴에 관한 많은 단서들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과 수교하면서 대박이 났다. 미중수교가 1979년 1월 1일이었으니 그로부터 36년이 경과한 2015년부터 미중 관계는 이제 협력보다 갈등 관계로 접어들었다. 36년의 법칙이다. 그러니 2015년부터 그 반대급부가 준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하나 중국의 붕괴를 주제로 책을 써서 한 때 주목을 받은 이가 있었는데 2001년의 일이다. 책 제목은 'The Coming Collapse of China'이고 저작자는 중국인 2세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 이후로도 멀쩡했고 더 승승장구했기에 작자는 인기를 잃고 말았다.(이처럼 너무 사정을 잘 아는 자는 그것에만 집중하기에 너무 앞서게 된다, 그 바람에 처음엔 주목을 받지만 곧 망각되게 된다.)

그러나 나 호호당에겐 그 양반이야말로 좋은 휴먼 지표가 된다. 책 출판으로부터 20년 뒤가 바로 중국의 붕괴시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21년이 된다.

또 하나 단서가 있으니 섣불리 선진 강국을 따라잡겠다는 목표 아래 마오쩌뚱의 지시에 의해 시작된 대약진운동이 그것이다. 1958년에 시작되어 1962년 초에 중단될 무렵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안겨준 일이 그것이다. (시진핑의 지시에 의해 시작된 ‘일대일로’ 사업이 바로 그것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따라서 탄착군은 2020년이나 2021년경으로 집약이 된다. 바로 중국의 붕괴 시기는 그 때가 될 것이다. 중국의 거품이 붕괴할 것 같으면 그 규모 역시 대국(大國)인 중국답게 역사상 미증유의 대규모 스케일로 진행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말을 하면서 오늘 글을 맺는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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