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대들은 무얼 했는가”라고 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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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그대들은 무얼 했는가”라고 물으면
    <칼럼>중국 두고 북한과 총애경쟁 벌이는 일 없어야
    북한주민들로부터 "그때 독재자 편에 섰나" 안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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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4-02 05:40
    이진곤 언론인
    ▲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북한을 방문 중인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얼어붙었던 북남관계가 올림픽을 계기로 극적인 해빙기를 맞이할 수 있은 것은 전적으로 국제올림픽 위원회의 공로"라고 말했다.(자료사진) ⓒ연합뉴스

    “40일(북경 체류 기간)이 되면 사신과 그를 따라온 무리는 대북경로를 따라 귀국하게 되는데 이곳에는 그들의 연례적인 통행을 표시하기 위하여 으리으리한 탑이 세워져 있다. 온 천하가 발아래 굽어보이는 마천령산(摩天嶺山)을 넘어 한만국경에 세워진 목책을 지난 다음, 오늘날 조락(凋落)하게 된 음산한 피난민촌을 거쳐 소름이 끼치는 마적 떼가 들끓는 압록강변을 지나면 그들은 또 다시 어둡고 신비에 싸인 그들의 나라에로 빨려 들어간다.”

    1908년에 출판된 F.A. 매켄지, 대한제국의 비극(신복룡 역) 1부 ‘은둔의 왕국’ 머리 부분이다.

    사신 일행이 ‘빨려들어’간 ‘그들의 나라’가 바로 ‘대한제국’이었다. 폐쇄된 사회를 극적으로 묘사한 표현이지만 어쨌든 그 왕국이 주는 느낌은 ‘어둠’과 ‘신비’였다.

    “Corea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극지방의 불모지를 통과하려는 탐험가나 여행자가 겪는 것과 꼭 같은 위험을 겪게 된다.”

    ‘어둡고 신비스런 그들의 나라’

    W.E. 그리피스가 1906년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The Hermit Nation) 8판’ 서문에 인용한 초판(1882년) 발행인들의 기록이다. 아마도 출판사가 책 소개를 하면서 그렇게 썼던 듯하다.
    은둔(隱遁), 은자(隱者). 그게 외부세계인들이 인식한 개국 이전의 우리나라, 우리국민들이었다. 조선말의 흥선대원군만이 아니라 왕조자체가 쇄국의 전통을 고집했다. 강대국들과 국경을 접한 처지에서는 그저 조용히, 표 나지 않게, 우리끼리 사는 게 상책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 후 10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나갔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개방돼 있다. 한민족 순혈주의에 집착하는 인상을 주었던 이 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2021년에는 3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법무부 자료가 예측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작년 중 해외여행에 나선 국민은 2640만 명이었다. 명실상부한 ‘지구가족’의 일원이다.

    북한은 어떨까? 여행은 엄격히 제한된다고 알려졌다. 해외 여행객 유치에 적극적이라는 언론보도가 있기는 했지만 아마도 아주 제한적일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폐쇄 지역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라면 100년 전 외국인들에게 인식되었던 Corea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송별오찬을 가진 김정일은 “나는 그전에도 중국, 인도네시아에 비공개로 갔습니다. 나보고 은둔생활 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습니다”라고 말했었다. 그의 이 유머는 대히트였다. 어둠의 왕국을 통치하는 마왕쯤으로 인식되었던 그가 사람, 그것도 편안한 이웃 아저씨의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언론들이 발칵 뒤집어질만했다. 그의 통치 스타일이라고 북측이 자랑하던 ‘통큰 정치’ ‘광폭정치’도 한동안 정치리더십의 주요덕목으로 인구에 회자됐다. 특히 우리 국내 언론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순간에 김정일이 세계 정치무대의 스타로 떠오르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그의 ‘통큰 결단’으로 남북화해, 북한의 개혁‧개방 시대가 금방이라도 도래할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김정일은 금새 커튼 뒤로 숨어버렸고, 외부 세계엔 추측만 만발했다. 이후 그는, 특히 핵 및 미사일 개발‧실험으로 우리와 세계를 괴롭혔다.

    이번엔 그의 아들이 다시 장막을 젖히고 얼굴을 쑥 내밀었다.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 당국간 대화 용의를 표명한 이래, 그는 세계 언론의 시선을 몰고 다녔다. 은둔의 나이어린 ‘로켓맨’이 자신의 부인까지 대동하고 한국 특사단을 맞이했을 뿐 아니라 파안대소하는 모습으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적 주선이 더해져 남북정상회담, 미국정상회담이 일사천리로 약속됐다.

    장막 젖히고 얼굴 내민 김정은

    더 극적인 장면이 이어졌다. 김정은은 조부(祖父) 및 부(父)의 예와는 달리 부인을 대동하고 중국 통치자 부부를 만났다. 3대째의 수령과 막 종신집권의 면허를 받아낸 시황제의 만남이었다. 언제 갈등이 있었느냐는 듯이 그들은 동맹의 우의를 과시했다. 그는 시 주석과의 회담을 통해 비로소 속내를 드러냈다.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통한 비핵화 문제 해결’을 주장한 것이다. 살라미를 썰어 한 조각씩 내밀듯하면서, 그때마다 대가를 요구하려는 심산이겠다.

    6자회담 때와 달라진 게 없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CVID)’를 조건으로 제시해 왔었다. 김정은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니, 아주 없다. 트럼프가 양보할 것 같지도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지낭(智囊)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정인 특보도 “남북 정상회담은 성공하겠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변수가 너무 많아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31일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열린 ‘한반도 핵 위기-대화에 의한 해결은 가능한가’ 주제의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라고 언론들이 전했다.

    북한의 핵폐기는 남북정상회담이 아니라 미북정상회담에서 결론을 낼 수 있는 과제다. 미국과 북한의 조건이 다르면 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만다. 중국이 미국과 같은 입장에서 핵폐기 압력을 가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랬다면 김정은이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들고 나왔을 리가 없다. 중국이 핵폐기를 조언했다더라도 그 방법론에서는 확실하고 확고하게 북한의 뒷배를 봐주겠다고 약속했을 개연성이 커 보인다.

    만약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수준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못 미쳐 있음을 미국에 확인시킬 수 있다면 시간을 벌게 될 것이다. 트럼프에게는 국내 정치적 다양한 변수들이 행동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정은이 확실한 명분으로 트럼프를 설득할 경우 트럼프는 ‘유예기간 있는 CVID’ 정도에서 정치적 실리를 챙기려 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미북회담은 결렬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다시 커튼 뒤로 사라지고 중국이 후견자로 나서서 미국 주도의 군사적 행동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과 함께 경제제재의 완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굳힐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아주 난처한 시나리오다.

    북핵 대응 독자노선 택하는가

    북한과 중국의 이 같은 재결속이 미국으로서는 큰 부담이지만 한국 정부의 어정쩡한 입장 또한 트럼프의 선택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쌍방의 양보, 그 중에서도 미국의 양보를 더 희망하는 빛을 숨기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한국의 동의 없는 전쟁은 용인할 수 없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우리 해법이 미국과는 다를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문 특보는 미북회담의 성공‧실패와는 상관없이 남북회담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학자로서의 견해일 뿐이라고 하겠지만 그의 말이 곧 문 정부의 정책임은 거듭 확인된 바 있다.

    “남북 회담을 잘 준비하되, 그 과정에서 북한을 그대로 보고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북한을 정상국가로 유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문 특보는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1월 이래 북한을 정상국가로 대접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북한을 실제 정상국가로 행동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상국가로? 핵문제가 풀린다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이비 신정체제를 고집하는 한 정상국가화는 불가능하다. 우선 이 전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반대하더라도 남북한만 뜻을 모으면 이 난국을 돌파해낼 뿐 아니라 남북화해와 공동발전의 계기도 마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산이다. 이 나라는 5170여만 명의 대가족이 함께 사는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둥지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안보를 두고 모험을 하거나 도박을 하는 등의 무모함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겨우 커튼 밖으로 얼굴을 내민 김정은을 다시 숨게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북한체제란 잘못다루면 큰 화근이 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사실도 늘 명념해야 한다. 밖에 나와서 멋대로 설치게 하면 북한 주민들에 대한 폭정과 핵무장을 공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변화의 의지가 안 보일 때는 미국의 ‘최대 압박’에 동참하는 게 옳다.

    행여 중국을 두고 북한과 총애경쟁을 벌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까운 대국은 언제나 주인행세를 한다. 미국의 후견이 없었다면 우리의 오늘이 어떠했을 것인지는 상상하기 어렵잖다. 먼 곳에, 2백 수십 년의 자유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초강대국을 후견국으로 둘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행운이 또 있겠는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같이 뛰어들어 서로 엉기면 함께 죽고 만다. 북한을 지배하는 김정은 집단이 아니라 그곳의 2500여만 명 주민이 우리의 동포다. 혹시라도 독재집단의 편을 들었다가 훗날 핍박을 벗어난 그들로부터 “그 때 당신들은 누굴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책임추궁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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