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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처음 살아보는 내 삶의 초보다


입력 2018.03.28 08:01 수정 2018.03.28 08:10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순탄한 삶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멀쩡한 젊은이가 길을 간다. 속으로 생각한다, 뭘 하는 젊은이일까? 하지만 그다지 궁금할 것도 없어, 인턴이겠지 뭐. 어깨를 본다, 약간 힘이 빠져있다, 인턴 두어 군데 전전하는 탓이겠지. 달리 이유가 있으랴.

몇 년 사이 우리사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 뭐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건 무례한 행동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한 젊은이는 스물에 하나는 될 까 싶다, 그저 정규직만 되어도 대성공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글로벌 전체에 견주어도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건만 왜 이렇게 살기 힘든 것이며 특히 젊은이들에겐 희망을 주지 못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을까 싶다. 왜 이리도 치열하게 견디고 버티고 또 악다구니를 부려야만 살 수 있는 것일까?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거친 환경 속에서 먹이를 찾아 고생하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를 이어가기 위해 애쓰는 동물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 모습 위에 고스란히 투영이 된다.

다 자란 젊은이는 독립해야 하는데 독립이란 것이 다름 아니라 혼자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른바 밥벌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기초적인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이에 관계없이 밥벌이를 하지 않는 사람을 두고 ‘학생’이라 규정짓는다. 그렇다면 전업주부는 어떻게 되는데? 하고 물을 것 같으면 당연히 학생이 아니라고 답하겠다. 그 역시 엄연히 일이기에 일종의 직업인 까닭이다.

살다보면 전혀 예기치 않은 수많은 문제점들과 조우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갖은 고생을 겪어야 하는데 그에 앞서 가장 기초가 되는 밥벌이조차 너무나도 힘들어진 오늘의 우리 사회이다.

먹고 사는 일을 떠나서 인생의 앞길에는 정말로 다양한 어려움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

상담을 해왔기에 찾아온 분들로부터 다양한 얘기를 듣게 된다. 그들의 고민과 걱정, 애환(哀歡)에 대한 얘기를 늘 들으며 지낸다.

그러다 보니 느끼고 알게 된 점이 한 가지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그 어떤 자도 삶에 있어선 ‘초보’라는 점이다. 20대의 젊은이는 20대 이후의 일을 알지 못한다. 그저 밥벌이만 해결하면 인생 큰 문제 없을 줄 안다. 30대 역시 30대 너머의 일에 대해 알지 못하고 40대 역시 그렇다.

약간 인생 연륜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50대 역시 실은 50대 이후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한다. 설령 나이가 70대라 해도 70대 이후의 삶과 그 삶 속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문제점에 대해 알지 못한다.

모든 살아있는 자는 살아온 나이까지에 대해서 알 뿐 그 이후의 삶과 문제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게는 되지만 정작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고선 실감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모든 이가 인생 초보이다.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사는 게 아니기에 모두가 삶에 대해선 초짜이고 초보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 호호당은 약간 다른 면이 있다. 다를 수 있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간의 많은 상담을 통해 사람들의 인생 얘기를 무수히 들어 왔다는 점이다. 사업이나 직업마다의 특성, 연령대에 따른 문제 등등 많은 얘기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듣게 되면서 넓히게 된 간접경험 때문이다.

또 하나는 운명의 순환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일들에 관한 것이다. 사람의 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60년에 걸친 순환인 바, 이 60년은 24개의 단계로 나눌 수 있고 그 단계마다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그간의 연구와 실제 상담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타고난 성향, 이를 命(명)이라 한다. 그리고 60년의 순환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화와 그 특성을 운(運)이라 한다. 여기에 그간의 상담을 통해 듣고 알게 된 직업의 특성 그리고 연령대마다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이젠 알고 있기에 나 호호당의 경우 약간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하지만 역시 한계는 있다. 나 호호당은 올해 64세이다. 따라서 64세 이후의 삶에 대해선 몸소 겪어보질 못했다. 따라서 상담 시 나보다 나이가 더 드신 분들이 찾아오면 얘기는 듣지만 충분히 실감이 가진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루어야 하는 많은 일 중에는 남에게 쉽사리 꺼내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성욕과 욕정의 문제, 명예욕 그리고 질투로 인한 문제 등을 포함하여 선뜻 꺼내기 힘든 사생활의 문제들이 있다.

남자의 성욕은 남성 호르몬으로 인해 급하고 공격적이다. 최근의 미투 운동 역시 그로 인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 정화(淨化) 움직임이라 하겠다.

나는 예컨대 40대 남자의 강렬한 욕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나이에 내가 느끼고 겪었던 문제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40대 남자가 찾아와서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생활의 문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많이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는 직업은 정신과 의사들이라 하겠다. 하지만 나 호호당의 경우 정신과 의사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삶의 측면을 알고 있으니 바로 운세 순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 사람의 멘탈 측면에서의 변화이다.

가령 기혼 남성이 바람을 핀다고 하면 사회적으론 일단 비난받을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이에 그 괴리는 너무나도 크다. 뿐만 아니라 최근엔 기혼 여성들도 외도를 하는 경우가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졌다. 시대의 변화라 하겠다.

그런데 왜 외도를 하고 바람을 피우고 불륜의 길을 가는 지에 대해선 그저 사람이 똑바르지 못해서 또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정도로 막연하게 여길 뿐이다.

이 점에 대해 나 호호당은 왜 그런 심리적 동기가 생겨나는 지에 대해 정신과 의사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측면을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때론 혼자서 알고 지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좀 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면 이로 인해 생겨나는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경감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도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점만 얘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가령 부부의 운세 순환 주기가 크게 차이가 나면 두 사람 사이에 정서적으로 공감대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60년의 순환 주기는 앞에서 얘기했듯이 그 안에 24개의 저마다 다른 단계가 있는데 그게 너무 차이가 나면 정서적 접점(接點)이 크게 줄어든다는 얘기이다.

남편은 운세 순환 상 한창 가을의 운세 흐름인데 아내는 이미 겨울의 운이라면 남편은 가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고 아내는 시들시들한 겨울의 정서를 나타낸다. 남편은 가을 단풍놀이 가는 심정인데 아내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면 남편은 친구들과 단풍놀이 가게 될 것이고 그러다가 도중에 단풍놀이 나온 또 다른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가 이른바 정분이 난다. 남편은 속으로 아내에게 당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겠지만 당장 자신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물론 기혼남이기에 아내 이외의 다른 여성과 사무적인 용건 외의 접촉은 피해야 할 게 아니냐고 주장하면 할 말은 없지만 현실에 있어 그렇게 야무지게 자신을 관리해가며 사는 사람이 실로 얼마나 되겠는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밥벌이 외에도 인생길은 도처에 지뢰밭이란 사실이다. 그러니 그런대로 무난하게 한 평생 살다가는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싶겠지만 실은 그게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순탄하게 한 평생 살다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고 설령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해도 정작 그 속을 들여다 볼 것 같으면 이런저런 고생한 스토리가 책으로 세 권은 된다 하겠다.

그간 상담해오면서 방금 얘기한 그와 같은 경우를 나 호호당은 정말이지 무수히 경험했기에 하는 얘기이다.

따라서 누구나 인생에 관한 한 초보이고 초짜라는 생각을 한다. 처음 살아보는 삶이고 두 번 살지 못하는 삶이기에 그렇다. 물론 나 호호당 역시도 그렇지만 상담 경험과 연구를 통해 깨우친 것이 있기에 보통의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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