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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개정 합의]미국 자동차 신시장 공략 옵션 사라져


입력 2018.03.27 06:00 수정 2018.03.27 06:22        박영국 기자

수익성 높은 미국 픽업트럭 시장 진출기회 사실상 '무산'

철강 관세면제 효과도 대형 철강사에 한정

현대·기아차 해외 수출 차량들이 경기도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현대자동차그룹 현대·기아차 해외 수출 차량들이 경기도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현대자동차그룹

수익성 높은 미국 픽업트럭 시장 진출기회 사실상 '무산'
철강 관세면제 효과도 대형 철강사에 한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결과가 26일 공개되면서 이슈의 중심에 섰던 자동차와 철강업계에서는 “최악은 면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는 이번 개정협상 결과를 ▲협상 범위 최소화 ▲철강 관세 국가면제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 관련 요구사항 관철 ▲농축산물 시장 추가개방, 미국산 자동차부품 의무사용 등 우리측 핵심 민감분야 방어 등의 측면에서 성공적인 협상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협상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자동차와 철강업계는 이같은 평가에 100% 동의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선 자동차 업계는 정부가 철강 관세폭탄을 막기 위해 자동차 분야를 양보했다는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일단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산 화물자동차의 관세 철폐 시점을 2041년으로 20년 늦춘 것은 사실상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픽업트럭 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국내에서는 픽업트럭 수요가 많지 않지만 DIY(가구 등을 직접 제작하는 방식) 문화가 보편적인 미국에서는 픽업트럭이 상당히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고배기량의 대형 차량이 주를 이루는 만큼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 수익성도 높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미국 현지 업체들이 재기할 수 있었던 것도 저유가에 따른 픽업트럭 판매 확대로 수익성이 개선된 데 힘입은 바 크다.

국내 업체들은 아직 미국 시장에서 픽업트럭을 판매하지 않고 있지만 쌍용자동차는 G4렉스턴을 보유하고 있고, 현대자동차도 픽업트럭 콘셉트카 ‘싼타크루즈’를 개발하는 등 픽업트럭 시장 진출을 위한 시장 검토작업을 진행해 왔다.

미국이 픽업트럭 관세를 철폐해 한국산 픽업트럭을 미국 시장에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내놓을 길이 열린다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게는 상당히 큰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됐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협상으로 픽업트럭의 ‘한국생산 미국판매’ 방식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가뜩이나 내연기관의 전기·수소차 대체 등 시장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화물차 관세 철폐가 이뤄지는 2041년이면 픽업트럭이 존재할지 여부도 알 수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픽업트럭은 현재 한국산이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차종이 아니니 현재로서는 (개정 합의에 따른) 큰 영향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들의 신시장 공략 옵션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한국 안전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 쿼터를 두 배로 확대한 것도 국내 자동차 업계에 악재다.

한미 양국은 이번 협상에서 그동안 미국 안전기준을 준수한 미국산 차량에 대해 한국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제조사별로 연간 2만5000대까지 수입을 허용해 왔으나 이를 5만대로 늘리기로 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미국 자동차 브랜드 자체는 크게 위협이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브랜드가 그동안 안전규제 때문에 국내에서 판매가 저조했던 게 아니다”면서 “기존 쿼터조차 채우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독일과 일본 브랜드 자동차들도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면 이 규정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BMW, 벤츠, 토요타 등이 국내 안전기준에 맞추기 위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을 무관세로 들여온다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동차 분야를 양보하면서 얻어낸 철강 관세 면제 협상도 국내 업계의 우려를 완전히 씻어낼 정도의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은 아니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25%의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물량은 2015~2017년 평균 수출량인 383만t의 70%인 268만t에 한정된다.

특히 품목별 무관세 수출 물량에 차이가 있어 기업별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주력 수출품목 중 하나인 판재류의 경우 지난해보다 오히려 많은 물량(2017년 대비 111%)를 확보했으나 유정용 강관은 지난해(203만t)의 절반 수준인 104만t 수준만 무관세로 수출 가능하다.

판재류는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대형 철강업체들이 주로 수출하는 제품이고, 유정용 강관은 세아제강, 휴스틸, 넥스틸 등이 주력인 제품이다.

대형 철강업체들은 애초에 미국시장 매출 비중이 3~4%에 불과해 미국 수출길이 막혀도 큰 타격이 없는 반면, 강관 전문 업체인 휴스틸과 넥스틸은 매출의 60~80%를 대미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관세폭탄으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대형 철강업체의 주력 품목은 지켜내고 관세 철폐여부에 기업의 생존 여부가 달린 중소 철강사들의 주력 품목은 지켜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측 협상단이 큰 시장을 배경으로 강한 협상력을 가진 미국 협상단에 맞서 선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협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피해를 보게 된 업종이나 개별 업체에게는 반대급부가 될 만한 제도적 보완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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