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제헌안 같은 개헌안 밀어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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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대통령의 제헌안 같은 개헌안 밀어붙이기
    <칼럼>대통령 소신·국정철학 반영…민정수석 발표?
    장황한 전문 세세한 조문…창의적운용 가로막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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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3-26 05:32
    이진곤 언론인
    ▲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오른쪽)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선거제도 개혁, 정부 형태, 사법제도, 헌법재판제도 등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설명한 뒤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과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개헌안을 공식 발의한다. 해외순방중이어서 전자결재를 할 것이라고 한다. 오전에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개헌안을 의결하고, 이를 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재가하면 국회로 보내진다. 6‧13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당초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렇다 해도 억지스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간 국무위원들이 개헌 숙제를 받아 이를 풀려고 고심한다는 뉴스는 들리지 않았다. 기자들이 놓쳐서 그랬을까? 대다수 국민들은 국무회의가 아니라 국민개헌특위라는 데에서 개헌안을 성안한 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발표했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실세(實勢)비서더러 십상시라더니

    왜 국무총리나 법무장관이 아니고 조 수석이 발표했느냐는 지적이 나오자 그는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의 개헌안이다. 대통령의 소신과 의지 국정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좌관이나 비서관들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발표하는 것은 권리 이전에 의무이자 책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서 “정무수석실과 민정수석실이 (개헌안을) 논의해왔고, 조문안 작업을 법무비서관이 해왔던 바, 정식 발의를 하기 전에 (민정수석이)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당연히 합헌”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소신과 의지, 국정철학에 따라 개헌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개헌을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헌법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인가? 정말 법학자인 조 수석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인가? 필부들이 알기로는 대통령이 헌법정신을 현실의 국정운영 과정에 구현하는 책무를 진다. 그게 입헌정치의 의의이고 원리원칙이다. 아닌가?

    ‘대통령 개헌안’이니 국무총리나 법무장관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듯한 조 수석의 주장 혹은 해명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럴 것이라면 개헌 발의를 국무회의 심의사항으로 규정한 의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대통령 비서관이 대단한 지위인 듯이 여기는 것으로 들려서 말인데, 언제부터 비서가 대외 공식 업무에도 직접 나서게 되었는가(지난 정부 때 비서들이 권력자연 한다고 해서 당시 야당과 진보진영이 얼마나 심하게 공격했었던 지 제발 잊지 않았어야 할 텐데).

    이번에 조 수석 등이 국민 앞에 나서서 발표한 개헌안이, 하다못해 정부 및 여당 차원의 논의만이라도 진지하게 거쳐 마련된 것 같지가 않다. 대통령이 청와대 핵심 측근들, 자신이 잘 아는 전문가들과 함께 개헌의 철학‧이념‧방향 등 얼개를 만들고 이를 국민개헌특위에 보내 조문화 작업을 거쳤을 것이다. 국무총리 법무장관 법제처장 등은 의논대상조차 되지 못했던듯하고.

    게다가 논의자들과 국민개헌특위 상위 멤버들은 ‘개헌’이 아닌 ‘제헌’으로 인식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현행 헌법 전체 조문 모두를 대상으로 거의 전면적 손질을 가하고자 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국민들은 부정부패가 없고, 권력이 남‧오용되지 않고, 국민이 함께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나라를 약속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나라의 틀 자체를 바꾸겠다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당초에는 ‘자유’라는 표현까지 없앨 기세이더니 그건 남겨두되 개별 조문에 대폭 좌클릭 된 내용을 담았다. 헌법 개정을 넘어 재구성까지도 대통령의 개헌 발의권에 포함되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긴 2공화국 헌법이나 유신헌법의 경우도 제헌에 버금갈 정도의 손질이 가해졌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의 바탕은 그대로였다. 이번 개헌안은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를 강화‧진전시키는 쪽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제한하는 쪽으로 이념적 궤도가 바뀌었다. 이 점에서 ‘문재인 개헌안’은 ‘진보정치세력의 제헌안’이라고 하겠다.

    도읍을 옮기고 헌법을 바꾸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1월 29일 “역사책‧소설책을 보면 수도 이전은 그 사회 지배권력의 향배에 관한 문제였다.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 천도가 필요했다”라고 말했었다. 기어이 신행정수도 건설을 밀어붙였지만 헌재의 ‘관습헌법’론에 걸려 좌절당했다. 그렇지만 ‘행정중심복합도시’는 건설됐고, 이번 개헌안대로라면 ‘천도’의 요건은 크게 완화된다.

    그 후계정권을 이끌고 있는 문 대통령은 단지 천도뿐만 아니라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까지도 새 지배세력의 사상‧이념적 지향에 맞추겠다고 한다. 여기에 잘 조직되고 훈련된 민중의 힘이 보태지면 아마도 명실상부한 좌경국가가 성립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촛불혁명으로 성립된 정부’임을 강조해왔다. 민중과 자신의 일체성과 일체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민중의 편은 민중뿐이라는 것을!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는 국민에 대한 예의가 결여돼 있다는 사실도 지적될 필요가 있다. 국민은 앞으로 국회 심의 60일에, 국민투표 공고기간 18일(국민투표법 개정이 이뤄진다는 것을 전제로)을 합친 78일 동안 개정안을 숙지하고 제대로 이해한 후 찬반 의견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으로서 그게 가능할까?

    개정하고자 하는 모든 조항에 일관된 원리와 원칙이 적용됐는지, 정부의 선전과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사용된 용어의 의미가 명확한 것인지, 거기에 함정은 없는지, 이런 점을 국민이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면 이는 개헌 발의권자의 횡포일 수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개정할 조항이 많다는 것은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개별 투표권자들 대부분의 경우 찬성하는 조항, 반대하는 조항이 뒤섞여 있게 마련이다. 끼워 팔기, 섞어 팔기, 묶어 팔기 식의 개헌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헌법이 법률사항까지 수렴케 하면 법치는 경직되고 만다. 헌법은 국가 구성과 운영의 대강(大綱)이다. 세세한 사항을 담을 그릇은 따로 있다. 그게 법률이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헌법이 법률사항까지 모두 규정한다면 국회가 할 일은 거의 없어지고 만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 기업인 등은 갑각류의 껍질 같은 헌법에 갇혀 살아야 하게 되는 것이다. ‘문재인 개헌안’은 장황한 전문, 세세한 조문들로 제도의 창의적 운용을 가로막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개헌을 서두르는 까닭은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라는데 대선후보나 국회가 그런 약속을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노태우 재임기에 이미 개헌론이 나왔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포인트 개헌’을 아주 적극적으로 밀어붙였었다. 그 때 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그 일에 적극 나섰다. 그 후 개헌론은 역대 대선 공약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그리고 늘 미뤄져 왔다.

    사람의 문제는 사람이 풀어야

    지배세력의 교체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사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쫓기고 있는 걸까? “수도와 제도와 지배세력을 일치시켜 노무현 시대부터 가졌던 우리의 꿈을 이루자!” 그런 마음의 소리, 혹은 측근들의 합창을 듣고 있을 수도 있다. “보수세력의 터전에서 보수의 법전에 의거해 정치를 하는 것은 우리의 이념적 지향에 반하는 것이다!” 이런 부채의식도 가졌을 법하다. 개종(종교)보다는 전향(이념)이 더 어렵다던데 그런 것일까?

    그런데 문 대통령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하든 현실적으로는 국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은 121석에 불과하다. 개헌안 가결 정족수는 재적의원 3분의 2다. 현 재적의원은 293명. 그렇다면 98명 이상 반대하면 ‘문재인 개헌안’은 부결된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만도 116명이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표결참여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강행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이렇다.

    ①대의명분을 내세워 야당을 설득 혹은 압박하면 의외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울러 적폐청산 작업이 야당 의원들을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 ②야당들의 반대로 개헌이 좌절되더라도 명분론으로 야당을 몰아붙이면 6‧13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전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③발의 강행은 야당에 대한 아주 효과적인 압박수단이 된다. 야당들도 개헌을 회피할 수만은 없을 것인 만큼 오는 6월엔 안 되더라도 20대 국회 임기 중 개헌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번 개헌안을 다 반영시킬 수는 없겠지만 타협과정에서 절반만 건진다고 해도 진보좌파 정치세력의 집권기반과 정권 재창출 여건은 크게 강화된다.

    이런 따위의 계산일까? 아니면 또 다른 노림수가 있을까?

    무슨 구상을 하든, 어떤 계산을 하든 개헌을 이처럼 억지스럽게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또 아무리 헌법상의 권한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만들어 국회에 내미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정도가 아니다. 개헌은 입법부인 국회의 소관으로 맡겨야 옳다.

    <췌언> 우리는 사람의 문제를 제도의 탓으로 돌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특히 1987년 개헌 이후 지금까지 노정된 정치의 문제는 주로 사람에 의해 초래됐다. 기억되기로는 그렇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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