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 고혜란은 팔자가 드센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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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11월 22일 00:12:12
    미스티, 고혜란은 팔자가 드센 여자다?
    <하재근의 닭치고tv>막판의 허무한 반전 일하는 여성에 대한 조롱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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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3-26 06:05
    하재근 문화평론가
    ▲ JTBC 금토 드라마 '미스티' 동영상 화면 캡처.

    ‘미스티'는 과거 이영애가 나왔던 CF '산소 같은 여자’ 시리즈의 2018년 유부녀 버전 같은 느낌이었다. ‘산소 같은 여자’는 이영애가 각각의 전문직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장면들을 나열해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영애가 활약하는 모습이 사회적 충격이었다. 여성의 사회활동을 가로막는 현실에 답답함과 무기력감을 느끼던 여성들이 열광했다. 이영애가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로 떠오르며 ‘산소 같은 여자’ 시리즈는 가장 성공적인 CF 반열에 올랐다.

    ‘미스티’도 ‘산소 같은 여자’처럼 기자이자 앵커인 고혜란의 멋지고 치열한 사회활동 모습을 나열했다. 방송국에선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프로정신으로 보도국 회의를 주도한다. 여자라서 봐주거나 홍일점으로서의 희소성 때문에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당당한 능력으로 그녀는 최고의 기자가 됐다. 고참 남자 기자들도 고혜란 앞에선 주눅이 든다. 열패감에 빠진 그들은 그저 지질한 고혜란 뒷담화로 속을 달랠 뿐이다. 질책하는 국장 앞에서도 고혜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당당히 자기주장을 펼친다.

    드라마 초반에 악착같이 성공하려는 고혜란의 출세의지가 나왔다면 중반엔 정의구현을 위한 고혜란의 기자정신이 펼쳐졌다. 언론을 쥐락펴락하며 철옹성을 쌓아왔던 정치권력자, 대기업, 대형 로펌 커넥션을 한 방에 무너뜨린다. 그야말로 최고의 커리어 우먼을 형상화한 것이다.

    프로그램은 고혜란이 마치 커리어 우먼 패션쇼라도 하듯 의상을 떨쳐입고 ‘워킹’하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며 그녀를 이상화했다. 고혜란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울면서 호소하지 않았다. 오직 논리와 실력으로 맞섰다. 고위직 여성들이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종종 눈물을 보여 빈축을 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멋진 여성, 당당한 여성, 열정적인 여성, 정의로운 여성, 최고의 커리어 우먼으로 제시된 것이다.

    거기에 여성 시청자들이 반응했다. 고혜란에 공감하고 그녀를 통해 대리만족을 찾은 것이다. ‘미스티’는 여성들이 고혜란에게 더욱 깊게 공감하도록 설정들을 배치했다. “선배들은 뉴스나인 앵커 맡고 보통 1년 차에 국장 달았어요. 전 지금 7년 차예요. 여전히 직급은 부장이에요. 왜? 여자니까.” 여성들이 절감하는 유리천장을 고혜란이 말하게 함으로서 고혜란을 사회활동하는 여성의 대표로 만들고 여성 시청자들이 고혜란과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한 것이다. 이밖에도 일하는 여성이라서 겪는 고충들을 고혜란을 통해 표현했다.

    그렇게 고혜란을 일하는 여성의 대표로 만들고, 여성 시청자들의 이상적인 롤모델처럼 표현해놓고 프로그램은 막판에 뒤통수를 쳤다. ‘미스티’는 울고 있는 고혜란의 얼굴에 ‘그래서 행복하니?’라는 대사가 깔리면서 끝났다. 고혜란이 지금까지 악착같이 쌓아올린 것이 모두 허사가 됐다. ‘멋진 여성, 당당한 여성, 열정적인 여성, 정의로운 여성, 최고의 커리어 우먼’ 모두 쓸 데 없는 일이었다.

    결국 앞만 보고 질주하는 고혜란 곁에서 남자 세 명이 죽거나 인생을 망친 이야기가 됐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의 또 다른 버전 같은 느낌이다. ‘여자가 나대면 주변 사람들이 망한다?’ 산소 같은 여자는 알고 보니 희대의 민폐녀였다. 프로그램 속에서 사람들은 잘 나가는 고혜란을 질투하며 ‘여자가 저 정도 자리에 올라가려면 좀 독하겠어?’라고 뒷담화를 했다. 프로그램은 그런 뒷담화 논리를 확대해 드라마로 만든 듯한 구도가 됐다. 고혜란이 독하게 살아가니 인생에 굴곡이 생기고 본인과 주위 사람들 모두가 불행해졌다.

    물론 성공을 향해 질주하다가 문득 허무해진다는 설정이나,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해 공허감에 빠진다는 설정을 극화할 순 있다. 문제는 ‘미스티’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혜란의 여성성을 강조하며 여성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데 있다. 여주인공을 일하는 여성의 대표처럼 만들어놨기 때문에, 막판의 허무한 반전이 마치 일하는 여성에 대한 조롱, 야유처럼 돼버렸다. 여성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여자가 사회활동에 열정을 다해봐야 돌아오는 건 파국과 불행이다. 잘 나가는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 이런 식의 결말이 돼버렸다. ’미스티‘와 고혜란을 응원했던 시청자들이 허탈해진 이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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