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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만 바꾸고 법률에 위임한 ‘대통령 개헌안’...국민적 합의 의문


입력 2018.03.22 02:00 수정 2018.03.22 06:09        이슬기 기자

지방분권 학계·여론 이견 분분, 靑 원칙 강조

위헌 토지공개념 기본권 상충…불확실하고 모호

지방분권 학계·여론 이견 분분, 靑 원칙 강조
위헌 토지공개념 기본권 상충…불확실하고 모호


조국 민정수석(가운데)이 21일 대통령 개헌안 중 지방분권 및 총강·경제 관련 요지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가운데)이 21일 대통령 개헌안 중 지방분권 및 총강·경제 관련 요지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청와대가 21일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 중 지방분권 및 국민경제 분야의 요지를 공개했다. 대한민국 헌법의 최대 상징성을 지닌 ‘헌법 제1조’가 개정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지방분권’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날 발표된 개정안에 따라, 헌법 총강 제1조에는 기존의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에 더해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라는 3항이 추가됐다.

또 지방정부의 입법권 보장 범위를 넓히기 위해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명시한 현행 헌법을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례로 제정할 수 있게 변경했다.

재정권도 대폭 강화했다. 지방정부가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자치세의 종목과 세율, 징수 방법 등에 관한 조례를 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지방정부 및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 여론이 높은 상태에서, 충분한 국민적 합의 없이 입법권과 재정권을 확대하는 데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청와대는 반대 여론을 인정하면서도, 각종 여론조사를 근거로 ‘지방분권 강화’라는 원칙에 국민의 지지가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지방정부에 부여하는 권한의 구체적인 범위에 대해선 일반 국민은 물론 자문특위에서도 이견이 많기 때문에 ‘법률로 정하도록 위임하겠다’고만 밝혔다.

국회 본회의 모습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회 본회의 모습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충분한 합의 없이 입법권 재정권 확대

학계에선 지방분권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상당히 불충분하고, 지역균형발전·지방분권의 개념적 차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우리 국민도 큰 찬반 없이 합의가 이뤄진 시대정신이지만, ‘지방분권’에 대해선 국민들은 물론 학계에서도 이견이 큰 사안”이라며 “상징적인 헌법 제1조에 넣을 만큼 지방분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나 합의가 이뤄져있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치권에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의 개념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역균형발전은 수도권 등 특정 지역에 경제와 삶의 터전이 집중되지 않는 것인 반면, 현재 논의된 지방분권은 지방정부에 입법과 행정권을 부여하는 의미다. 즉 입법·사법·행정이라는 3권 분립의 개념에선 궁극적으로는 사법권까지 연결될 소지가 크고, 결국 ‘연방제’와 맞닿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지방정부의 조례가 대통령령이나 국회가 제정한 법과 배치될 경우, 혼란이 가중될 소지가 크다. 대통령 개헌안에 따르면, 국무회의 수준의 권한을 위임한 국가자치분권회의를 신설해 지방자치와 관련된 법률안에 대해 국회의장이 지방정부에 그 법률안을 통보하면 지방정부가 ‘의결’할 수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국가자치분권회의는 ‘제2의 국무회의’로서 권한을 부여한다”며 “‘의결권’은 심의만 하는 게 아니라 결정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말했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학회 회장은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지역감정이 여전히 심각하고 지역 이기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지방분권을 하기에는 시기적·상황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대한민국이라는 특정 국가 헌법의 주체는 ‘사람’이 아닌 ‘국민’이라면서, 대통령 개헌안 중 기본권 조항에 ‘국민’을 ‘사람’으로 변경한 것 역시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개헌안 요지를 발표하는 조국 민정수석 ⓒ청와대 대통령 개헌안 요지를 발표하는 조국 민정수석 ⓒ청와대

기본권 상충 토지공개념…靑 “규범조화적 해석으로 가능”

‘토지공개념’ 역시 기본권 상충이라는 문제에 부딪친다. 평등권과 자유권의 우위 여부, 국가권력의 시장 개입 여부 등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이에 대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헌법 제119조 1항과 2항에서 각각 ‘시장의 자유’와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 뒤 “헌법상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며 “‘규범조화적’으로 해석될 것이라 본다. 기존 판례나 입법 등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답했다.

조 수석이 제시한 ‘규범조화적 해석’은 헌법의 어느 한 조문을 우선시하지 않고 그 관계를 상호 조화롭게 해석한다는 의미다. 반면 이처럼 불확실하고 모호한 개념으로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반론도 공존한다.

김 교수는 “국민의 재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할 때에는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한 원칙에서 시행해야 한다”며 “‘필요한 경우’ 또는 ‘특별한 제한’ 등의 표현 자체가 너무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데, 이런 개념으로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 부분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회장 역시 “‘토지공개념’이란 것 자체가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매우 크다”며 “토지를 소유 여부에 따라 평등성을 강조해야 하는데, 표현 자체가 모호하다. 불확실한 개념으로 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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