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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업체가 화장품 개발까지 해야 하는 사연


입력 2018.03.20 06:00 수정 2018.03.20 07:59        최승근 기자

증류주 등 신제품 개발했지만 음식점 유통 어려워

산업 보호를 위해 마련된 제도가 발목 잡는 규제로…“시대 흐름 맞춰 개정돼야”

일본 대형마트 주류코너에 우리나라 소주와 막걸리가 진열돼 있다.ⓒ데일리안 일본 대형마트 주류코너에 우리나라 소주와 막걸리가 진열돼 있다.ⓒ데일리안

국순당은 오는 29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규 사업 목적에 ‘화장품 제조와 판매’를 추가한다. 막걸리 시장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자 화장품 영역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국순당의 신사업 진출 계획이 알려지면서 주류업체가 화장품 개발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다.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 뷰티 제품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 같은 시류에 편승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말한다. 발효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국순당이 이를 활용해 화장품 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막걸리 업체가 화장품으로 사업다각화에 나설 수 밖에 없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것이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11년 6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국내 막걸리 시장은 지난해 2000억원 밑으로 시장이 급감했다.

막걸리에 항암 물질이 들어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2010년대 초반 한 때 유행을 탔지만 수입맥주 등 다른 주류에 밀려 매년 소비량이 줄면서 막걸리 업체들도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 수출 물량도 큰 폭으로 줄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수출액은 1286만8000달러로, 역대 최고치였던 2011년 5273만5000달러 대비 75.6%나 급감했다.

반면 수입맥주와 고급 증류주 시장은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이에 막걸리 업체들도 증류주 등 신제품을 출시하며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현행 주세법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신제품을 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소주나 맥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나 시설이 열악한 탁‧약주 시장 보호를 위해 주류판매 면허를 분리해서 관리하고 있다.

주세법 시행령 9조 주류판매업의 면허 부분을 보면 탁주나 약주, 전통주는 특정주류도매업 면허를 가진 사업자가 유통할 수 있다. 소주, 맥주 등 대부분의 주류를 취급할 수 있는 종합주류도매업 면허 사업자에 비해 창고 면적 등 자격 요건이 덜 한 편이다.

종합주류도매업 사업자의 경우 소비량이 많은 소주나 맥주를 주로 취급하다 보니 소비량이 적은 탁‧약주의 유통을 보장하기 위해 면허를 구분해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탁‧약주 시장 보호를 위해 마련된 이 제도가 현재는 막걸리 업체들의 사업다각화를 막는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보호 장치가 역으로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수년간 지속된 막걸리 시장 정체로 증류주 등 신제품을 개발해 신 시장 개척을 모색하고 있지만 유통 규제에 막혀 음식점 등 공급이 어려운 이유다.

기존 막걸리를 유통했던 특정주류도매 사업자의 경우 탁주나 약주, 전통주 외에 증류주 등은 취급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때문에 종합주류도매 사업자가 취급해야 하는데 이들은 소주, 맥주 등 대량생산이 필요한 주류를 주로 취급해 결국엔 유통 시장에서 막걸리는 소외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형마트나 편의점, 슈퍼마켓의 경우에는 중간에 대규모 물량을 취급하는 벤더가 있어 유통이 가능하지만, 소비량이 많은 음식점 등에서는 이들 신제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층에게 인기가 좋은 바나나맛 막걸리, 복숭아맛 막걸리 등도 비슷한 이유로 음식점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인공향이 가미된 이들 제품의 경우 주세법 분류 상 기타주류로 구분이 돼 역시 종합주류도매 사업자만 유통이 가능하다.

막걸리 업계 관계자는 “젊은 층을 겨냥해 내놓은 신제품의 경우 출시 초기 입소문이 나면서 음식점 등에서 요청이 많았지만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열기가 금세 꺼졌다”며 “막걸리 업체가 생산한 제품의 경우 기존 유통업체가 취급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 허용 등 정부가 전통주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전통주의 기준이 지역 농업법인이나 무형문화재가 생산한 제품으로 한정돼 이 역시 막걸리 업체들은 적용이 되지 않는다. 사각지대에 몰려 있는 막걸리 업체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승근 기자 (csk34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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