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편견 없이 내 노래만 할 수 있으니 행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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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11월 15일 15:48:22
    "'여성' 편견 없이 내 노래만 할 수 있으니 행복하죠"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24> 스웨덴의 한국 가수 제야
    한국에서는 왜 굳이 '여성' 싱어 송 라이터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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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3-17 05:00
    이석원 객원기자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가수 제야. (사진 = 제야 제공)

    다른 유럽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스웨덴에도 어김없이 K-pop의 열풍이 대단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한국말을 알아듣고 말을 거는 스웨덴 소녀 소년들이 있다. 영락없이 K-pop 팬들이다. 스톡홀름 중심 대형 공원인 쿵스트레드고덴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코리안 컬처 페스티벌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 K-pop을 배우는 부스다.

    스톡홀름 시내 한 고등학교의 한국어 수업은 수강 인원이 차고 넘친다. 독일어나 프랑스어, 또는 러시아어는 물론 중국어나 일본어를 수강하는 학생보다 훨씬 많다. 심지어 채 수강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청강이나 도강도 이뤄진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이유는 단 하나, K-pop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한국의 케이블 TV 올리브와 tvN에서 방영 중인 ‘서울 메이트’에도 K-pop과 K 드라마에 흠뻑 빠진 스웨덴 세 자매가 등장한다. ‘카라’ 출신 구하라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아만다, 마틸다, 모아 세 자매는 열성적인 K-pop 마니아들이다. 그런데 스웨덴 안에서 또 다른 아만다, 마틸다, 모아 같은 자매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스웨덴에서 K-pop은 미국이나 영국의 팝 음악 못지않은 인기는 분명하다.

    그런데 스웨덴 청소년은 물론 대학생까지도 매료시키는 K-pop은 99% 이상 아이돌 음악에 치중한다. 방탄소년단(BTS)를 선두로 스웨덴 젊은이들에게 K-pop이란 거의 예외 없이 아이돌들의 음악이다. 물론 K-pop으로 시작했지만, 보다 진중하고 수준이 높은 한국 음악으로 관심을 넓히는 경우도 많다. K-pop으로 시작해 K 드라마를 거쳐 한국 영화까지, 더 나아가서는 판소리 등 진짜 한국의 전통 문화까지 관심을 확장시키는 경우도 있다. 흔치는 않지만.

    그런데 여기에 더 흔치 않은 것도 있다. K-pop에 열광하고 있는 스웨덴에서 아예 가수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의 싱어 송 라이터가 있다. 제야(Zeya)가 그 주인공이다.

    제야는 10대이던 2009년 키텐스 라이(Kitten's lie)라는 록 그룹으로 데뷔한, 금년 10년 차 가수다. 2011년에는 국내에서는 흔치않은 어쿠스틱 여성 듀오 비온디의 멤버로 활동했다. 송새벽과 이시영이 주연한 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OST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3년 솔로 싱글 앨범 ‘별이 지다’를 발매하면서 제야(Zeya)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는 ‘여성 싱어 송 라이터’였다.

    ▲ 지난 2014년 스톡홀름 감라스탄을 구경하던 제야는 스웨덴 청년들이 길에서 버스킹을 하는 것을 보고는 근처에서 8만원짜리 기타를 급하게 사서 함께 버스킹을 했다. 물론 제야는 아이패드에 "저에게는 돈을 주지 마세요"라고 스웨덴어로 쓴 채. (사진 = 제야 제공)

    “수십 번 오디션을 보면서 싱어 송 라이터라고 하니까 굳이 ‘여성 싱어 송 라이터’라는 틀을 씌우더라고요. 그러면서 록발라드를 부르면 ‘왜 그런 노래를 만들고 부르냐’고 묻는 거예요. 좀 더 나긋나긋하고 예쁜 노래가 ‘여성 싱어 송 라이터’에게는 더 어울린다는 거죠. 전 그냥 싱어 송 라이터지 ‘여성 싱어 송 라이터’로 제한되고 싶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것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했고, 그래서 작곡 능력도 갖췄다. 노래에 대한 열정도 작지 않았고, 노래 부르는 일이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제야가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디션을 보러 가면 ‘이는 교정 안할 거냐?’거나 ‘성형 수술을 어디를 하고 싶냐?’는 따위의 얘기가 넘쳐났다. ‘가수를 하기에는 살이 쪘다’는 말에는 아연실색했다. 살이 쪄서 노래 부르는 게 버거운 것도 아니고, 걸그룹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싱어 송 라이터인 자신에게 얼굴 얘기며 몸매 얘기만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던 것이 “아델(Adele. 영국의 팝가수)이라면 한국에서 어떻게 가수를 할 수 있을까?”였다.

    “저는 그저 노래가 하고 싶었던 건데,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싸워야 했어요. ‘왜 여자가 가수를 하려고 하느냐?’에서부터 ‘여자가 가수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일상화된 편견과 말이죠. 한국에서 가수를 한다는 것이 끊임없는 편견과의 싸움이라면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럼 가수를 하지 않거나, 한국이 아니거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리고 스웨덴에 오기로 한 겁니다.”

    제야에게는 한국에서 만난 스웨덴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서 야트막하게 들은 바로도 스웨덴은 당시 그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완벽한 남녀평등의 나라, 여성에 대한 그 어떤 편견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다. 그래서 제야는 2014년 겨울 스웨덴의 깊은 겨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도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 ‘노래를 하고 싶다’ 뿐이었다.

    처음 1, 2년 동안 쉽지는 않았다. 처음 도착한 겨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노래만을 만들었다. 처음 스웨덴에 오고 1년 동안 만든 곡이 무려 100곡에 이른다. 노래를 만들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했다. 음악과의 대화를 그처럼 진지하고 심오하게 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음악이 그의 질문에 답을 하는 듯했다.

    ▲ 제야가 2016년 스웨덴에서 발매한 미니 앨범 ‘Happy for you’의 표지. (사진 = 제야 제공)

    그렇게 얻어진 스스로의 답은 제야가 모든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음악을 하려던 초심을 유지시켜줬다. 스스로를 돌아보니 다른 것들은 다 사라지고 음악만 있었다.

    그리고 K-pop에 관심이 많던 스웨덴의 젊은이들이 제야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그게 어디였는지는 큰 의미가 없었다. 자그마한 공연장이기도 했고, 시끌벅적한 라이브 카페일 때도 있었다. 때로는 스톡홀름의 구시가 감라스탄의 골목 한 모퉁이이기도 했고, 거리의 벤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곳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그 자리에는 단지 제야와 제야의 음악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꽤 유의미한 활동들이 이어졌다. 2015년 11월에는 주스웨덴 대한민국대사관의 요청으로 스톡홀름에서 K-pop이나 한국 영화, 한국 음식에 관심 있는 스웨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대중음악 프리젠테이션을 열기도 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찬 눈망울을 한 몸에 받았다.

    게다가 스웨덴의 대중음악 시스템은 그가 스웨덴에 온 이유 그 자체였다. 스웨덴이 세계에서 미국 영국과 함께 최대 음원 산업 국가인 이유가 있었다. 음악 그 자체를 존중하는 시스템 때문이었다.

    “프로듀서의 ‘갑질’이 없었어요. 스스로 프로듀싱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좋은 프로듀서는 음악에 대한 욕심만을 냈죠. 살을 빼라느니, 성형 수술을 해야 한다느니, 남자 친구를 만나지 말라느니 하는 간섭은 전혀 없어요. 모든 게 아티스트 중심으로 돌아갔어요. 그러니 자기 음악의 소중한 가치가 저절로 강조되는 그런 분위기였죠.”

    2016년 마침내 제야의 첫 스웨덴 앨범이 발매됐다. 제야는 스웨덴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Spotify)를 통해 미니 앨범 ‘Happy for you’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타이틀곡인 ‘Happy for you’를 비롯해 ‘날 보내줘’, ‘Breath’, ‘No way’ 등 모두 4곡이 실렸는데, 모두 다 한국어 자작곡이다. 이 곡들은 애플 뮤직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 가수 제야는 '여성'이라는 특별한 편견의 틀을 씌우지 않는 스웨덴에서의 음악 활동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사진 = 제야 제공)

    한국에 돌아가 가수 활동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지에 대해서는 “지금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사실 얼마 전 한국에서 활동 제안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요즘 자기들에게는 제야 스타일의 뮤지션이 필요하다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찌 안그럴까? 아직 20대의 피 뜨거운 한국 젊은이인데. 그런데, 적어도 제야에게 한국은 아직 전혀 바뀌지 않은 세상이었다.

    “제작자 분의 첫 질문이 ‘사진을 보니까 전보다 살이 찐 것 같더라’, ‘스웨덴에서 남자 친구는 생겼냐?’더라고요. 전 ‘최근에 만든 곡은 어떤 거냐?’는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제안은 고맙지만 저는 아직 스웨덴에서 좀 더 할 겁니다’하고 정중히 거절했죠. 계속 이렇다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스웨덴에서 직장 생활도 병행하던 제야는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음악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올해 조금 늦은 가을에 새 앨범을 내기 위해서다. 곡 작업은 다 마무리된 상황. 이번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녹음한다. 제야가 가장 좋아하는 록 어쿠스틱 장르로 꾸며질 예정이다. 그래서 요즘 벌써부터 제야는 눈에 띠게 분주하다.

    “아이돌이 누리는 그런 열광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여성에 대한 편견 없이, 여성 싱어 송 라이터가 다이어트나 하고, 성형 수술이나 하고, 치아 교정이나 해야 하는 일상 속의 부조리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내가 만든 노래만 할 수 있으면 그게 나에게는 가장 기쁜 성공이에요. 그리고 어려운 것도 많지만, 지금 현재 저는 그렇게 노래하고 있어요. 스웨덴의 한국 가수로.”

    제야는 자신의 인스타그램(@singerzeya)을 통해 공연과 새 앨범의 소식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제야가 세상과 대화하는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스웨덴에 있든, 한국에 있든 행복한 제야를 만날 수 있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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