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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무게에 짓눌린 대학


입력 2018.03.15 10:29 수정 2018.03.15 10:32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정책, 학부모들에게 난타...절차적 정당성 결여 탓

재정 취약한 대학들...정부 재정 지원 사업 따기 위해 사활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데일리안 DB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데일리안 DB
예전에 그랬든, 현재 진행형이든, 교육 문제만큼 국민의 관심사를 한 몸에 받았거나 받고 있는 영역은 드물 것이다.

정책 방안을 발표한지 며칠 되지도 않아 정부가 백기를 든 사례를 꼽자면 교육부가 단연 최고 위치에 있을 것이다. 웬만한 전문가들 못지않은 탄탄한 지식에다 자녀를 기르면서 터득한 실전 경험으로 중무장한 학부모들의 예리한 공격에 교육부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사회적 합의 불충분을 이유로 1년 유예를 결정한 2021년 수능 개편안이 그랬고, 올 들어선 유치원· 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 수업금지’ 정책이 학부모들에게 난타를 당해 사실상 좌초했다. 모두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탓이다.

사전 소통 부족이 화근이었다. 공급자 입장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했으나, 수위를 한참 넘어서자 정부의 행보를 잔뜩 주목하던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정부의 조기 투항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를 일이다.

대입시를 포함한 초중고교 정책은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겐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것은 교육의 힘, 그것도 학부모들의 남다른 교육열이 일조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대학은 어떤가. 고등교육 정책에 대해 대학생 학부모들이 찬성이든, 반대이든, 이런 저런 의견을 내는 광경을 보기란 참으로 어렵다.

사실 요즘처럼 대학이 무기력하게 비쳐지고 있는 적도 드물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거쳐 21세기를 맞이할 때까지 대학은 우리 사회와 호흡하면서 고등교육기관 역할에 충실했다. 굳이 영화 ‘1987’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이만큼 민주화해 선진국 도약의 틀이 마련된 것은 지성인들의 공간인 대학의 힘이 컸다고 본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지금, 대학은 좌표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양질의 수업과 학생들에 대한 교수의 헌신, 다양한 현장 체험 등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대학의 가치를 구현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급격한 학생 수 감소로 생존을 걱정하면서 구조조정의 칼날 위에 설 수 밖에 없는 대학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학생 모집엔 ‘무풍지대’로 뒷짐을 지고 있던 서울 소재 대학들도 긴장하면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일단은 살고 봐야 한다”는 식의 인식이 대학 사회를 휘감고 있는 것은 개운치 않다. 급변하는 사회에 대비하는 차원의 대학의 역할, 대학의 미래에 대한 고민 같은 핵심 가치에 대한 논의가 아쉽다.

‘자본’에서 자유로운 대학들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곳간이 부실한 대다수 사립대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지원하는 국공립대도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려 있다.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나 능력주의 사회 등을 의미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라는 단어를 학교 홍보 등에 수시로 사용하면서 우수 학생 지원을 자극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대학들 조차 기금 모금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은 자본의 무게가 대학을 짓누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학이라고 자본에서 자유로워야 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자본에 지나치게 종속돼 본연의 역할이 희석되어 가는 것은 대학의 학문적 가치 구현을 부끄럽게 만든다.

재정이 취약한 우리나라 대학들은 정부 재정 지원 사업을 따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각종 규제로 예산을 마련할 방법이 없는 대학으로선 다른 선택이 없지만, 이는 역으로 대학의 운명을 정부가 쥐고 있는 듯 한 아이러니를 도출한다.

대학의 미래가 정부 손에 달려 있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정부의 임무는 대학이 건학이념에 충실하면서 미래를 설계하고 사회와 조화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원하는 것에 그치는 게 옳다.

교육부는 올해 업무보고 자료에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대학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고스란히 투영된 대목이다. 대학의 주인은 따로 있는데 정부가 왜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하나. 정부는 이랬어야 했다. “대학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정부는 서포터스 역할을 하겠습니다.”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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