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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에겐 ‘가슴 벅찬 나날’이겠지만


입력 2018.03.12 05:44 수정 2018.03.12 11:56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해체+평화협정 체결

북 핵동결·사찰 수용…주한미군 철수 상황 없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 간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 간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통일 참모들에게는 ‘가슴 벅찬 나날’ 일 것 같다.

“문 대통령의 북미 중재 노력이 실패하면 다시 벼랑 끝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만약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험을 줄인다면 노벨 평화상을 탈 수도 있다.”

영국의 BBC가 현지시간으로 지난 9일 방송한 내용이라고 한다. 국내 언론들이 한국시간으로 그 다음날 부지런히 이를 옮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국민들의 기억은 여전히 강렬하다(대단히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신뢰가 크게 떨어지긴 했으나 그래도 이름만으로는 아주 매력적인,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상이다. 마음이 끌리지 않을 리가 없다.

노벨상 탈수도 있으리라는데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건 직접적인 목표가 될 수도 없다. 문 대통령 측이 기대를 부풀리는 것은 ‘민족사적 소명’을 이뤄 내거나, 적어도 그 결정적 계기와 단초를 마련할 기회를 확보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기회만 있으면 ‘촛불혁명’을 말한다. 자랑으로 들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국가적 변고를 초래한 것도 아닌데, 국민직선의, 그것도 투표자 과반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대통령을 임기 도중에 몰아낸 게 이른바 ‘촛불혁명’이다. 그 빈자리를 차지한 문 대통령 자신은 18대 대선 때 박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후보였다. 뭔가 개운하지 못한 기분이 늘 남아 있을 법하다. 그래서 유난히 집권의 배경을 치장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럴 경우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야 말로 빛나는 업적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거부감을 무릅쓰고 ‘한반도 운전자론’을 집요하게 강조해 왔을 것 같기도 하다. 마침내 그 기회가 왔다. 그들로서는 가슴이 쿵쾅거리고도 남을 대 사건 아니겠는가.
문 대통령, 그리고 그를 보필하거나 그에게 조언을 하고 있는 진보 혹은 좌파 이론가 및 운동가들로서는 ‘북한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승리’일 것이다. 무엇에 대해서? 말할 것도 없이 ‘대북 강경론’에 대해서!

남‧북정상회담, 미‧북정상회담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만 되면 자신들의 대북관(對北觀)이 옳았음을 만천하에 과시할 수 있게 된다. 더 바랄 게 없는 최상의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난 2002년 5월 28일,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는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 나머지는 대강해도 괜찮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 비전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남북문제만 잘 되면 박근혜 정부를 무리하게 붕괴시킨 것이나, 자신의 이념 성향에 대한 논란, 정치‧경제적 실책 시비 등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면 가슴 벅차할 이유로 충분하다 하겠다.

군사적 수단에 호소하지 않고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전 국민, 나아가 전 민족구성원의 간절한 소망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문 대통령에게 좋은 것이 그의 정적들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문 대통령이 희망에 넘쳐 있다.

공명(孔明)의 칠종칠금 흉내는 안 돼

문제는 BBC가 예상한 미래의 상황이 한 가지만이 아니라는 점이다(BBC의 기사라고 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정상회담 이후’를 그들이 먼저 그려 보였기 때문에 예로 인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남‧북 간 그리고 미‧북 간 정상회담을 통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김정은에게 시간만 벌어준 결과가 될 때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여당은 ‘벼랑’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포기시킬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이 아주 적극적으로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표명하고,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흔쾌히 응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사정은 예상 밖으로 복잡할 수가 있다.

문 대통령 ‘특사’라는 인사들의 김정은에 대한 과공(過恭)‧과찬(過讚), 문 대통령과 참모들의 넘치는 호의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국제사회와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문 대통령을 지렛대 삼아 트럼프를 움직이겠다는 계산뿐인 인상이다.

추측하자면 이렇다. 김정은이 다급한 상황에 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핵 및 미사일 개발과 실전배치를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에게 핵 포기는 사실상의 항복이다. 독재자가 적과 당당히 대치하고 있을 동안엔 부하들의 충성심‧복종심‧ 공포심이 대체로 유지된다. 그러나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의 위엄과 체통은 급속히 일그러진다.

미국의 요구에 대한 굴복이 바로 자신의 몰락과 체제의 붕괴에 이어질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을 김정은이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는 구걸성(求乞性) 언급을 할 까닭이 있겠는가. 체제의 불안은 외부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부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내부의 적을 미국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따라서 ‘체제 안전의 보장’이란 조건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평화협정 체결을 가리키는 게 분명하다. 미국이 들어줄 수 없는 조건으로 흥정을 하거나 핵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 운운하는 배경도 다르지 않다. 김정일도 했던 말이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고 있는 핵우산을 완전히 걷어내라, 그런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의미 이상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정부,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 조건들에 근접한 답을 내놓으려 머리를 쓰겠지만 미국의 결심이 있어야 유효해질 일이다.

다른 의도를 가졌을 수도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12일 군수공업대회 ‘결론 연설’에서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게 허풍이라고 하더라도 ‘완성’에 거의 근접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북한으로서는 지금이야말로 핵동결을 미끼로 대어를 낚을 적기(適期)라고 하겠다. 미사일 사정거리 제한 등으로 미국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미국 지원 하에 보통국가로 간다는 ‘꿈도 야무진’ 구상이다. 문재인 정부야 굳이 요청하지 않더라도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게 틀림없고….

트럼프까지 속이려고 하다간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회담에 적극성을 보이는 까닭은 ▲상황의 주도권을 한국정부에 완전히 맡겨버릴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 같다. 김정은이 약한 소리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트럼프 자신의 전략적 성과이지 지속적으로 딴죽을 거는 문 대통령의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한‧미양국과 북한에 확인시키고 싶다는 의도가 읽힌다.

또 ▲문 대통령이 끈질기게 한반도 운전자석 양보를 요구하니까, 문 대통령이 결정권을 갖고 상대해야 할 김정은이 어떤 인간형인지, 북한이 어떤 체제인지를 트럼프 자신이 직접 나서서 확인시켜 보이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는 ‘북한의 핵폐기’라는 대화의 조건을 고수하고 있다. 이걸 전제로 하지 않는 대화는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대화를 하는 중에도 ‘최대의 압박’은 계속하겠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김정은이 정말 죽을 지경에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조건을 수용할 법하지 않다. 따라서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화가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이견이 노출되고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한국만이 나서서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할 경우 북한 정권의 교활함에 한국 정부가 속아서 미국과 국제사회에 북한의 의도를 잘못 전달할 수 있다. 그 위험성을 차단하고, 자신이 나서서 직접 북측의 속내를 확인하겠다는 의도로 읽히기도 한다. 직접 만나서 들어봐야 ‘최종적 결정’이 한결 쉬워지고 명분도 더 축적될 것이라고 여김직 하다.

그런데 만약 트럼프와 만나서 북한이 교활하게 속임수를 쓴다면 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악화되게 마련이다. 트럼프와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린 대가까지 계산서에 추가된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가 더 급박해 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미국이 대화와 협상에 나서는 동안에는, 군사적 압박수위가 아무래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정부의 끈질긴 요구로) 연합훈련은 계속 미뤄질 듯하다. 그건 북한에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 기간 동안 핵개발을 완료하고 어느 날 이를 확인시키는 핵실험 및 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할 지도 모른다. 지난 10일 CNN 인터넷판의 헤드라인이 “Walking into a trap?(함정에 빠지나?)”이었다. 트럼프와 미국 정부가 그렇게 어리석거나 무모할 리가 있겠는가.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너무 계산이 빨라서 월남에서의 해결 방식을 만지작거리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민족 자주적 해결’을 주장해 온 데 대해 “그렇게 해 보시든가”라며 북한의 핵개발 동결 및 사찰 수용을 조건으로 미국이 한반도에서 발을 빼는 상황은 없어야 하겠다. 물론 그렇게는 되지 않으리라고 믿지만 세상사를 누가 확신하고 장담할 수 있으랴.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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