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바다에서 비로소 뱉어낸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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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바다에서 비로소 뱉어낸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
    지난 3일부터 9월 14일까지 예테보리 해양박물관서 '물질'
    김형선 작가 사진과 고희영 감독 영화 '물숨' 한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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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3-10 05:00
    이석원 객원기자
    ▲ 지난 3일부터 '제주 해녀 문화전'이 열리고 있는 스웨덴 예테보리 해양박물관. (사진 = 고희영 감독 제공)

    “해녀들은 누구나 자신의 숨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래서 숨의 마지막에 이르기 전에 바다를 벗어나온다. 그런데 그 한계를 잊게 하고, 바다에 잡아두는 것이 욕심이다. 해녀들의 눈을 욕망에 멀게 하는 전복은 흡착력이 강해서 한 번에 떼고 나오기 어렵다. 두고 간 전복을 찾기 위해 서둘러 다시 잠수했지만 경력 70년의 베테랑 해녀도 그 자리를 다시 찾지 못한다. 마음이 급해질수록 숨은 더욱 가빠진다. 잘라내지 못한 욕망의 숨, 그것이 물숨이다.” - 다큐 영화 ‘물숨’ 중에서

    지난 2016년 11월의 마지막 날, 제주 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영화 ‘물숨’은 그보다 꼭 두 달 전인 9월 29일 개봉했다. 바다 속에 깊이 잠겨 있던 해녀들이 물 밖으로 나오면서 토해내는 숨소리인 숨비소리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 ‘물숨’이 지금 제주 우도에서 8200km 떨어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물 밖으로 뱉어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을 연출한 고희영 감독은 엔딩 크레딧에 “영화 ‘물숨’은 제주 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간절히 염원한다”고 말했다. 그 염원은 현실이 됐고, 그로부터 다시 1년 6개월 만에 지구 위 또 다른 바다에서 또 다른 만남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 3일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에 있는 해양 박물관Maritime Museum)에서 개막한 ‘제주 해녀 문화전(Haenyeo : Women of the sea)’은 고희영 감독의 영화 ‘물숨’과 김형선 사진작가의 해녀 사진, 그리고 예테보리에서 활동 중인 큐레이터 고민정 씨가 제주에서부터 공수해온 해녀 소품 전시로 스웨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전시회 개막식 날 예테보리를 찾은 이정규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는 축사를 통해 “‘제주 해녀 문화전’은 한국의 가장 독특한 문화유산 중 하나를 스웨덴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제주 해녀 문화를 전시 아이템으로 선정한 예테보리 해양박물관의 통찰력 있는 안목에 감탄하였다”고 해양박물관 측에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 고희영 감독(왼쪽)과 김형선 사진작가. 왼쪽은 영화 '물숨'의 포스터. (사진 = 김형선 작가 제공)

    ▲ 개막식에서 이정규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오른쪽)가 축사를 하고 있다. 이정규 대사 왼쪽은 예테보리 마리아 보이보노바 부시장. (사진 = 주스웨덴 대한민국대사관 제공)

    그러면서 이 대사는 “2016년 유네스코는 제주 해녀 문화를 세계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였으며 이를 통해 제주도의 독특한 성격, 제주 사람들의 기상, 공동체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 친환경적 지속가능성 등의 가치를 인정한 바 있다”고 강조하며 “이 전시회는 한국인과 스웨덴인 모두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전시라고 생각하며, 이 전시회가 한국과 한국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 대사와 함께 축사를 한 예테보리 부시장이면서 문화위원회 위원장인 마리아 보이보도바는 개막식 축사에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해녀’라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에테보리를 통해 스웨덴에 알리게 돼서 기쁘다”며 “이를 통해 스웨덴과 한국의 뜻 깊은 문화 교류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 해녀 사진 26점을 선보인 김형선 사진작가는 지난 6년 동안 제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해녀에 몰두했다. 물 속 해녀보다 물 밖 해녀에 관심을 가진 김 작가는 힘겹게 물질을 하고 나오는 해녀들을 다시 카메라 앞에 세워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외부 문화에 다소 폐쇄적일 수도 있는 해녀들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끊임없이 친분을 쌓고 신뢰를 주어 그 해녀들을 새하얀 천 앞에 세우고 해녀 본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김 작가는 “물속에서 물질하는 모습의 해녀를 담은 카메라는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물 밖의 해녀에게 더 관심이 갔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을까? 고된 물질 뒤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런 것들. 즉 행위가 아닌 주체로서 해녀 본인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2015년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첫 해녀 사진 전시를 한 김 작가는 큰 전환점을 만난다. 2016년 가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다큐 영화감독 고희영 씨와 스페인의 화가 에바 앨머슨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2017년 3월 영국 해양박물관에서 사진과 영화, 그리고 소품이 하나로 어우러진 ‘제주 해녀 문화전’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 예테보리 해양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김형선 작가의 해녀 사진들. 아래 사진 맨 왼쪽 해녀가 최연소 해녀인 채지애 해녀다. (사진 = 김형선 작가 제공)

    ‘물숨’의 고희영 감독은 제주 출신이다. 그는 완벽한 제주도 말을 구사한다. 어린 시절 그녀가 본 해녀는 하나도 특별할 게 없는 존재였다. 그냥 동네 아주머니였고, 할머니였고, 그리고 그의 어머니였다.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며 그냥 일상처럼 잊고 지냈던 해녀였는데, 그가 마흔 살의 나이에 고향 바다에서 ‘특별한’ 일상으로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는 9년 동안 해녀에 집착했다.

    처음 2년 간 그는 해녀 할머니들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했다. 그저 물에서 나오는 해녀들의 태왁(잠수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을 뜨게 하는 뒤웅박)과 망사리(해녀가 채취한 해물 따위를 담아 두는 그물망)를 끌어주고, 빵을 사와 종일 굶고 물질을 한 해녀들의 속을 채워주는 허드렛일만 했다. 고향 말로 대화를 하지만 ‘뭍사람’ 취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 감독은 “해녀들은 상당히 배타적이다. 그들을 찍으려면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철저한 조직 사회인 그 분들이 만장일치로 촬영을 허락하지 않으면 단 한 컷의 촬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2년을 고스란히 그 분들과 마음을 섞었고, 그리고 해녀들의 숨비소리(깊이 숨을 참았던 해녀들이 수면 밖으로 나와 몰아 내쉬는 숨소리)를 담을 수 있었다”고 제작 당시를 회상한다.

    김 작가와 고 감독의 콜라보레이션 전시는 영국 런던과 중국 베이징을 거쳐 스웨덴 예테보리의 뭍에 올랐다. 에테보리 개막식에 앞서 지난 1일 김형선 사진작가와 고희영 영화감독, 그리고 이번 문화전을 기획한 고민정 큐레이터는 주스웨덴 대한민국대사관의 초청으로 스톡홀름 대학교와 영화관 필름휘셋(Filmhuset)에서 ‘물숨’의 특별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대부분이 스웨덴 청년들인 스톡홀름대 한국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물숨’ 상영에서 많은 학생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스웨덴에서는 그래도 한국 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들이지만, 대부분 해녀가 생소했다. 해녀에 대해 조금 알고 있던 학생들도 영화 속에서 목격한 해녀들의 삶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영화와 이야기를 통해 유네스코가 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해녀를 등재시켰는지 실감했다.

    ▲ 전시장 한쪽에 제주 해녀 공동체의 상징인 '불턱'(사진 오른쪽 공간)을 스웨덴식으로 재구성한 것이 있다. (사진 = 김형선 작가 제공)

    에테보리 해양 박물관은 개막식 이후 연일 ‘해녀’를 체험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개막식 날 1000여명이 관람한 것을 시작으로 매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찾아온다. 스웨덴 뿐 아니라 멀지 않은 덴마크에서부터 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어린이 단체 관람객들은 더욱 신기해한다.

    전시관 입구에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어른의 키 높이에 맞춘 물안경 3개는 가장 뜨거운 관심사다. 그것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제주 바다가 넘실거린다. 김형선 작가의 사진과 함께 전시된 제주 해녀들의 물질 장비들도 관심 폭발이다. 태왁이며 망사리를 신기해하는 사람들의 눈길이 깊다.

    특히 최연소 해녀로 인기를 독차지한 채지애 해녀가 직접 만든 꽃태왁을 비롯해 빗창 호미, 뇌선(해녀 진통제), 해녀들이 영등신과 용왕할망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 해녀공동체 문화의 상징인 불턱(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작업하다가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우던 공간)을 스웨덴식으로 표현하고, 소라껍질로 스피커를 만들어 귀에 대면 파도소리 숨비소리가 들리게 한 장치 등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예테보리 해양박물관의 ‘해녀 문화전’은 오는 9월 14일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김형선 작가와 고희영 감독은 내년 한-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에서 제주 해녀 문화전이 열리는 것을 희망했다. 개막식을 함께 한 이정규 대사도 긍정적이다. 운(?)이 좋다면 스웨덴 시민들은 내년에는 스톡홀름에서 제주의 해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데일리안 = 스웨덴 예테보리 이석원 객원기자][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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