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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청년’, 그가 한국 군대를 선택했던 이유

  • [데일리안] 입력 2018.02.17 05:00
  • 수정 2018.04.06 08:38
  • 이석원 객원기자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22> ‘당찬청년’ 김명진 씨

한국의 청년 현실 보면 부모님의 이민 결정 감사해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IMG1>
한국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다. 지난 몇 년 동안 특히 ‘헬조선’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진 한국의 청년 사회는 참혹한 수준이다. 실제 상당히 많은 청년들은 한국의 현실에 대해 ‘나아지지 않는다’는 자포자기에 빠졌다. 3포 세대니 4포 세대니 하는 용어들은 결국 포기의 수를 헤아릴 수 없다며 아예 엔(N)포 세대‘로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엔포 세대’를 이야기하고, ‘헬조선’을 한탄하는 청년들이 모두 불성실했거나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일까? ‘불성실’은 주관적이면서 결과론적인 개념이고, ‘패배’ 또한 결과로만 규정되는 것이기에 현재 한국 사회에는 ‘불성실했던’ 청년들과 경쟁에서 ‘패배’한 청년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이 피라미드 구조라는 전제하에서 ‘성실하게 경쟁에서 성공한’ 청년들은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적은 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최근 한 대기업의 입사 시험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한 청년이 스웨덴의 한국인 입양인과 관련한 기사에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그들(한국인 입양아)이 가엾다고 생각하는 건 오래전 사고방식입니다. 한국이 그들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케케묵은 생각이죠. 그들은 행운아입니다. 스웨덴이라는 나라로 입양간 것은, 본인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땅에서 이렇게 힘겹게 살지는 않아도 되잖아요. 한국은 그들을 버렸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그들에게 천국행 티켓을 쥐어준 셈이니까요.”

1989년 생. 스웨덴 나이로 28살 김명진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따라 스웨덴에 왔다. 그러니 사실상 명진 씨의 의지가 작용했다고 할 수는 없다. 부모님의 이끄심이었고, 명진 씨는 수동적으로 함께 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스웨덴 이민을 결정한 부모님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다. 한국이 아닌 스웨덴의 청년의 입장에서.

명진 씨의 부친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칸디나비아어과 김상열 교수다. 김상열 교수는 스웨덴에서 유학했다. 그러니 부친 입장에서 스웨덴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명진 씨는 처음 스톡홀름의 한 국제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만해도 스웨덴어는 물론이거니와 영어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니 낯선 스웨덴의 외국인들만 득실대는 국제중학교에 보낸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그는 지금 이민을 결행한 부모님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IMG2>
“부모님이 스웨덴 이민을 결심하신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저도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청소년들은 물론 어린이들도 지나친 경쟁으로 너무 치열하게 산다고 생각하셨던 거죠. 그래서 제가 자라는데 있어서 교육환경이 더 나은 곳으로 이민을 결심하신 겁니다.”

명진 씨 부모님의 생각은 옳았다. 명진 씨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만 다녔지만, 스웨덴에서 보낸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한국에서의 초등학교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아이들 중심이었다.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쟁은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존재하는 것을 전제했다. 경쟁으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입거나 인성이 망가지는 일은 없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지 부모든 교사든 그 누구의 강요도 없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명진 씨는 우려했던 언어도 무난히 익혔고, 자연스럽게 스웨덴 청소년 사회에 편입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대중매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미디어라는 분야에 꽤나 흥미를 느꼈다. 대학의 길은 조금 달랐다. 그는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영어언어학과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까지 다중 전공을 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선택했고, 그래서 신나게 공부했다.

대학에 재학 중 그는 무척 중요한 결정을 한다. 한국의 군에 입대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부모님은 반대했다. 한국에서 살아갈 것도 아닌데 굳이 군대에 가야 할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당시에도 크고 작은 군대 내 가혹행위 등의 사고가 터져 군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진 씨는 부모님을 설득했다.

“나는 스웨덴에 살고 있지만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또 한국 사람으로서 군 생활을 경험하는 것은 내 인생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했고요. 좀 더 넓은 인생 경험을 하고 싶은 욕심에 결국 부모님을 설득했죠. 휴학하고 광주에 있는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 입대한 후 병장으로 만기 전역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웨덴 청년의 신분이었지만 한국 청년으로 살 수도 있었다. 그는 같은 시대를 고민하는 청년들과 전우로서 부대꼈고, 그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았다. 특히 전역을 앞두고 사회로 복귀하는 전우들이 신음하는 것도 알았다. 대학으로 돌아가든, 또는 곧바로 사회로 뛰어들든 제대를 앞둔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힘겨워 하는 지 똑똑히 보았다. 스웨덴에서만 살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것들이다.

명진 씨가 봤던 것은 극한 경쟁 속에 노출된 청춘이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개인의 삶과 꿈을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스웨덴 청년들과는 달랐다. 한국 청년들이 처한 경쟁 구조는 종종 자신의 꿈과 삶보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남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었다. 군 생활 중 ‘자신의 꿈과 삶’을 얘기하면 전우들은 “개인의 꿈과 삶 같은 소리하고 있네. 살아남아야지. 살아남아야 꿈도 있고 삶도 있지”하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었다.

어쩌면 이 때부터일 것이다. 명진 씨가 부모님의 이민 결정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

물론 명진 씨는 경쟁이라는 게 발전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경쟁을 강요함으로써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삶의 여유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정신의 문제, 예컨대 만성 스트레스나 분노조절 장애, 조현증 등으로 이어진다고 확신한다. 실제 한국의 자살률,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의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과 불특정 대상을 폭행하거나 살인하는 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청년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더군요. 경쟁에 치우친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면서 강한 편견을 갖고 행동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자유롭게 꿈을 가지고 행동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사회 구조는 청년들에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요. 그런 얘기를 하면, 그건 정말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한국의 청년들은 그것을 사치라고 생각하죠.”

<@IMG3>
물론 명진 씨는 한국의 청년들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그는 군 생활을 통해 바라본 한국의 청년들의 인내와 끈기를 높이 평가한다. 스웨덴 청년들에게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가 겪은 한국의 청년들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버텨낼 줄 알았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자신과 맞지 않다며 일찍 포기하는 스웨덴의 청년들과는 결이 다른 인생이었다.

또 한국 청년들의 ‘빨리빨리 마인드’도 나쁘게만 보이지 않았다. 너무 여유가 있어서 느리고 효율성 떨어지는 스웨덴 사회를 익히 겪어온 그였다. 그는 ‘빨리빨리’라는 정서는 조금의 치밀함만 더 가미된다면 사회를 선순환의 구조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청년들이 보다 효율성이 높은 일처리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군 생활은 명진 씨에게는 고귀한 경험이 된 것이다.

명진 씨는 스웨덴 한국에게 있어서 상당히 매력적인 사업 장소라고 추천한다. 북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의 국가이며 발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웨덴은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매력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결코 쉽지는 않지만 도전의 가치가 충분한 나라, 스웨덴의 풍족한 다양성과 복지를 누리고 살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변화시키고 재창조할 수 있는 괜찮은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한국의 청년으로 산다는 것은 안주하기 보다는 도전하고, 누리기 보다는 만들어낼 수 있는 역발상의 기회였으면 하는 바람을 ‘스웨덴 청년’ 김명진 씨는 강조한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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