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약점 노린 GM, 눈 뜨고 당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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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10월 16일 23:07:18
    [기자의 눈]약점 노린 GM, 눈 뜨고 당한 정부
    군산공장 폐쇄 '예고편', 한국철수 '본편' 내세워 정부 지원 압박
    GM 요구 수용시 특혜논란 우려…외국계 완성차 업체에 선례 남길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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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2-14 06:00
    박영국 기자(24pyk@dailian.co.kr)
    ▲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이 2017년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군산공장 폐쇄 '예고편', 한국철수 '본편' 내세워 정부 지원 압박
    GM 요구 수용시 특혜논란 우려…외국계 완성차 업체에 선례 남길수도


    타이밍이 절묘했다. GM은 한국 정부의 형편과 정치권의 상황을 제대로 노렸고, 정부는 설마설마 하다가 눈 뜨고 당했다. 13일 발표된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얘기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이 한국 철수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던 이유가 이제서야 밝혀졌다. '한국 철수설'은 바로 이 타이밍에 써먹을 결정적인 한 수였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공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국 GM 본사 입장에서 한국지엠은 풀기 힘든 숙제였다. 한때는 글로벌 소형차 생산기지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한국에서의 판매실적도 쏠쏠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인건비가 오르면서 소형차를 만들어 팔아가지고는 돈을 남기기 힘들어졌다. 한국 시장에서의 판매실적도 하향곡선을 그렸다.

    급기야 한국지엠의 내수판매 실적은 한 수 아래로 보던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와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고, 어느덧 적자는 쌓여 2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한국지엠의 경영을 정상화하려면 새로운 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이 시점에서 GM은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을 이끌어내고 나아가 한국 정부의 인센티브 지원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묘수를 찾았다. 바로 한국 정부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마침 한국의 대내외적 상황이 GM 입장에서 절묘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정부는 아직까지 일자리 개수로 국민들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대규모 사업장의 움직임에 벌벌 떨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와는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 시장이 한국 시장보다 월등히 큰 데다 북핵 문제로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할 필요까지 있는 상황이라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대하는 데 있어 조심성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오는 6월에는 지방선거까지 예정돼 있다. 평소에도 민감한 ‘지역논리’가 유난히 극심해지는 시점이다. 아이템만 좋으면 정치권을 정부 압박의 도구로 활용하기에 더없이 유리한 때다.

    GM이 던진 승부수는 군산공장 폐쇄였다. 이를 통해 GM은 여러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선 인력 구조조정이다. 한번 고용한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없는 한국 제도 하에서 전 직원의 12% 이상인 2000명을 희망퇴직(사실상의 강제퇴직)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됐다. 군산공장의 가동률은 지난 3년간 20%에 불과했으니 폐쇄에 따른 부작용도 크지 않다.

    둘째는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에 인센티브 제공과 자금 지원을 압박하는 것이다. 이미 GM 본사 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한국시장 완전 철수 가능성을 언급한 상황에서 우선 군산공장 폐쇄는 일종의 ‘예고편’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원에 동의하지 않으면 ‘본편’에 들어가겠다는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GM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에 앞서 정부와 산업은행, 노조에 경영 정상화 계획을 밝혔다. 여기에는 ‘신규 글로벌 제품(신차) 확보’를 위해 28억달러(약 3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며, 그러려면 주주들이 지분률에 비례해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도 전달했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지엠 지분율(17.02%)대로라면 신규차종 확보를 위해 산업은행이 지분율에 비례해 제공해야 할 자금은 5000억원이다.

    더 나아가 우리 정부에 GM이 생산기지를 보유한 다른 나라에 비해 좋은 조건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까지 요구했다.

    더구나 GM은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와 관련해 정부와 전혀 논의도 없다가 폐쇄 발표 바로 전날에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전화로 통보했다. 이때까지 군산공장 폐쇄를 예상하지 못했던 정부는 13일 한국지엠의 발표가 있은 뒤에야 부랴부랴 대책회의를 열고 ‘일방적인 발표’에 유감을 표했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대량해고 사태를 피해야 하고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압박도 고려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GM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미국과의 관계도 신경 써야 하는지라 국내 기업들에게 하듯이 뒤통수를 친 것에 대한 ‘괘씸죄’를 적용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무조건 GM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 시장에서 엄연히 5개 완성차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지엠에게만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르노삼성과 쌍용차도 한국지엠과 마찬가지로 외국 기업을 대주주로 두고 있다. 특히 르노삼성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산하 전세계 여러 공장들과 경쟁한다는 점에서 한국지엠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정부가 ‘철수’ 협박에 못 이겨 특혜를 준다면 다른 기업들에게 안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라는 강수를 준비한 GM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약점을 노출한 것은 분명 정부의 실수다. 하지만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허둥지둥해서는 안 된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후일 더 큰 재앙이 될 불씨를 남겨놓는 꼴이 될 수 있다. GM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되 더 이상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꼴을 보여서는 안된다.[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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