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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끝내 굶주린 에리직톤의 저주를 받나


입력 2018.02.11 11:59 수정 2018.02.11 16:46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적폐청산, 성난 국민들로 하여금 끝없는 허기를

'무역제재'와 '안보'에서 한국패싱은 신이 내린 저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직톤. 사진 출처
 www.harvardartmuseums.org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직톤. 사진 출처 www.harvardartmuseums.org

그리스 신화 중 가장 비참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주저없이 ‘에리직톤(Erisichton)’이라고 말한다. 에리직톤은 신으로부터 ‘허기(虛飢. 굶주림)의 저주’를 받아 결국 스스로의 몸을 먹어치우고 최후를 맞는 인간이다.

먼저 에리직톤의 아버지 트리오파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는 형제 테나게스를 시기하여 살해한 후 고향을 떠났다. 성경의 카인을 떠오르게 하는 캐릭터다. 그는 다른 나라에 가서 적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주고 왕이 되었다. 왕이 된 트리오파스는 대지(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의 신전을 허물고 자신의 궁전을 지으려 했다. 그의 불경에 분노한 백성에게 쫒겨난 그는 다른 지역에 가서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웠다. 하지만, 데미테르가 보낸 뱀에 물려 앓다가 결국 죽었다.

데미테르의 아들 에리직톤도 매우 오만하고 불경스러운 인물이다. 데메테르의 신성한 정원에는 숲의 요정들이 둘러싸며 놀던 큰 나무가 있었다. 에리직톤은 요정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 나무를 도끼로 쓰러뜨렸다. 분노한 데메테르는 그에게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내렸다. 허기에 시달리던 데메테르는 가산을 탕진하고 딸 메스트라까지 팔아 허기를 달랬다.

팔려간 딸은 그녀를 겁탈한 포세이돈에게 구해줄 것을 소원했다. 포세이돈은 그녀에게 변신의 능력을 주었다. 자유자재로 둔갑하여 팔려간 곳에서 탈출한 딸을 에리직톤은 다시 팔아 음식을 구하곤 했다. 에리직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음식을 먹어치웠지만 배고픔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의 끝없는 배고픔은 자신의 몸을 모두 뜯어먹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비극은 ‘3대에 걸친 저주’다. (고대) 드라마의 전형이다. 개인은 없고 비극만 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운명적이고 치명적이다. 우리나라의 처지에 대입하자면, 에리직톤의 아버지 트리오파스는 문재인 정부가 계승한다는 전임 진보정권이다. 뱀은 신의 사주를 받거나 신에 거역하기 위해 인간을 괴롭힌다. 뱀에 물려 죽었다는 트리오파스는 신에 대항한 벌을 받은 것이다.

그 저주는 아들에게도 이어진다. 신과의 악연은 그에게 또 다시 신을 거역하도록 했고 신은 다시 아들을 저주했다. 그 저주는 다시 3대째 딸의 인생도 망쳐 놨다. 에리직톤의 저주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고, 국민들은 딸 메스트라의 신세다. 끊임없이 도와주지만 결국 아버지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끝없는 혼동이다. 아니 ‘저주의 시작’ 같다. ‘적폐청산’구호는 성난 국민들을 계속 굶주리게 한다. 극성 지지층뿐 아니라, 법을 수호할 검찰과 균형을 잡아야 할 언론도 앞장서 뒤지고 파헤친다. 실체가 나올 때까지 파헤치고, 실체가 안 나오면 증언과 정황으로 짜 맞춘다. 처음에는 통제가 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면 탄력을 받은 관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정권도 끌려갈 수 밖에 없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과 같다.

‘언론의 자유’와 ‘사법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내세웠던 정권은 통제할 방법도 없다. 유일한 무기였던 국민지지도는 그들을 거침없이 내모는데 소진해 버렸다. 결국 지지도는 떨어질 것이고 막을 힘도 없어질 것이다. 그 질주는 멈추지 않고, 결국 그나마 성한 권력의 내부로 달려들 것이다. 화마가 땔감을 찾는데 차별이 없듯이 말이다. 그 전조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서지현 검사가 시작한 ‘미투(Me Too)운동’이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가장 강고했던 ‘남자의 조직’인 군대와 검찰조직도 예외일 수 없었다. 검찰에서 시작된 ‘미투’가 사회각계로 뻗어나갔다. ‘탈권위’의 욕구가 극단적으로 분출된 것이다. 조직사회뿐 아니다. 문화계에도 ‘문화혁명’같이 번져갔다. 절대권력으로 인정되던 ‘존경받던’ 원로시인에 대한 비난까지 나왔다.

대부분 과거의 사례들이지만 현재진행형인 경우도 있다. 암묵적으로 덮어놨던 것들이 들춰지면서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형국이다. 고백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어도, 모른 척했던 사람은 공범일 뿐이다. ‘모두가 알던 일 아니냐, 왜 이제 알았다는 듯 호들갑이냐’며 문화계 전체를 비겁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사람도 등장했다. 자기는 깨끗하다며 자기가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고 손을 씻는 것은 혼란기에 항상 나오는 행태다.

그런 흐름이 권력의 핵심으로 다가가고 있다. 전 정권의 윤창중 대변인의 사고가 생각나는 일이 이번 정권 초에 다시 일어났다. 대통령 방미 중 현지 고용된 인턴사원에게 청와대 직원이 ‘성희롱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를 청와대가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돌았다. 청와대 구성원의 일부만 알았고, 해당 공무원을 파견한 부처의 장관도 몰랐단다. 대통령의 핵심측근이 과거에 한 성적일탈발언은 집권 초라 유야무야 넘어갔었다. 이번에는 행위자가 약한 고리였던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지지도가 높고 야당이 약해 그런대로 넘길 수 있었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큰 행사(올림픽)가 우리나라에서 열려 대부분의 이슈를 빨아들였다.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운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다. 결국 올림픽은 끝날 것이고 지지도도 언젠가는 떨어질 것이다. 그 이후에는 팍팍한 현실에 맞닥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때 야당은 과거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언론과 사정기관도 청와대 눈치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은 ‘성역’을 허용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정권은 끊임없는 굴주림으로 결국 스스로를 뜯어 먹고 최후를 맞는 에리직톤의 처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야말로 비극이다.

그럼, 현 정권의 잘못은 무엇이기에 이리도 끔찍한 저주를 자초한단 말인가? 에리직톤과 그 아버지는 ‘대지(곡물)의 여신’에 대항했다. 배은망덕이고 자살행위다. 대지의 여신에 대한 저항은 인간에게 베풀어진 음식을 저주한 것이다. 이는 결국 끊임없는 허기로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저주를 불렀다.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주도하는 UN체제라는 대지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나라다. 미국이 주도하는 UN은 한국에겐 대지의 여신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신전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궁전을 짓는 불경을 벌이고 있다. 도끼(북핵)로 신과 인간의 연결고리인 나무(한미동맹과 국제공조)를 베려고도 한다. 북핵은 우리를 물리적으로 위협하기도 하지만, 곡식을 제공하는 대지를 훼손한다. 고마움을 모르는 인간에게 신은 저주를 내려 응징한다.

‘무역제재’와 ‘안보에서 한국패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결국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 딸은 끊임없이 변신하고 탈출하여 아버지의 식량을 대지만, 결국 아버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피폐해졌다. 국민은 세금과 여론지지로 현정부의 실정을 메우고 있지만, 결국 위험을 막을 수 없다. 정권은 지나갈 것이고 국민은 피해를 감당할 뿐이다.

외부 위험이 강해져도 내부가 탄탄하면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야말로 ‘외우내환’을 자초하고 있다. ‘적폐청산’의 회오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무의 내부를 갉아 먹고 있다. 안이 빈 나무는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바람이 심해지면 힘없이 넘어진다.

에리직톤은 신을 모독해 자신을 훼손하는 벌을 받았다. 우리는 대지를 모독하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을 훼손한다. 신이 벌을 내릴 필요도 없다. 에리직톤의 저주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저주를 자초할지 다시 번영의 궤도로 복귀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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