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2년후인 2020년 북한 김정은에 닥칠 큰 변화는...


입력 2018.02.07 09:41 수정 2018.02.07 10:58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북-미 치킨게임 볼모가 된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이란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예술단 본진이 7일 강원 동해시 묵호항에 만경봉 92호에서 내려 버스로 걸어가고 있다.ⓒ연합뉴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예술단 본진이 7일 강원 동해시 묵호항에 만경봉 92호에서 내려 버스로 걸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우리와 중국은 1992년 8월 정식으로 국교(國交)를 텄다. 1991년 소련 붕괴로 인한 충격, 이에 중국까지 등을 돌렸으니 더 이상 기댈 데가 없다고 판단한 김일성은 심한 배신감 속에서 핵 개발을 지시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즉각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 포착되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이에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했고 이로써 북핵 문제가 본격화되었다. 이어 1994년에는 남북 회담 과정에서 이른바 ‘서울 불바다’ 주장이 터져 나왔고, 이에 전 국민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야말로 북한의 ‘초강경 블러핑’이 완벽하게 먹혀든 셈이었다.

이에 미국은 북한을 겁박해보았다. 원산 인근에 항공모함 전단을 보내어 으름장을 놓았다. 소위 ‘영변 폭격설’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장군멍군 즉 ‘카운터 블러핑’이었을 뿐, 우리 정부나 미국 역시 정작 그럴 마음은 전혀 없었다.

북한은 이에 시간을 벌기 위해 줄곧 거짓말과 강경한 협박, 때로는 평화공세로 대응하면서 줄기차게 핵 개발을 진척시켰다. 핵 무장만이 북한을 지킬 수 있는 논리적 귀결이었기 때문이다. 1994년부터 북한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가며 핵개발을 본격화했다.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 정책으로 북한을 안심시키면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자 했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우리가 북한에게 성의를 보이면 결국 같은 민족이기에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고집불통의 북한을 아예 무시하고 지원을 끊었다. 힘들면 북한이 먼저 손을 들고 나서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투표를 통해 정권이 정해지는 체제가 아니었기에 끔쩍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오바마는 도무지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북한에게 질린 나머지 대단히 그럴싸한 명칭, 즉 ‘전략적 인내’로 대응했다. 풀이하면 ‘내버려둬라’였다.

북한이 본격 핵개발을 시작한 1994년으로부터 12년이 흘러 2006년 드디어 김정일은 핵 실험을 단행했고 이로서 핵을 보유했음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 이후 북한은 핵의 고도화, 즉 경량화와 위력 증대는 물론이고 운반수단인 로켓의 개발에 집중해왔다. 작년 5월 북한은 마침내 중장거리 로켓의 실험 발사에 성공했고, 미국의 괌 기지를 포위 사격할 수 있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미국까지 북한 핵미사일의 타격권에 들어서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 이제 북핵 문제는 남북한 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미국 자체의 문제가 되었다. 미국이 급기야 북핵 문제와 공포의 당사국이 된 것이다. 위기 수준이 또 다시 한 계단 상승한 것이다.

그러자 성질이 잔뜩 난 미국의 트럼프는 작년 8월 상당히 위력적인 블러핑 즉 ‘화염과 분노’를 언급했다. 약간의 진정성도 깃든 엄포였다.

그리고 드디어 올 해가 시작되었다. 2018년이.

올 해 2018년은 북핵 문제에 있어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라 보기에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핵개발에 본격 착수한 것이 1994년이었고 12년 지나 최초의 핵실험, 그리고 다시 12년이 흐른 시점이 올 해이기 때문이다. 24년의 기간은 결론이 나오는 시간의 간격인 까닭이다.

그리고 자연순환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 김일성이가 이거 안 되겠네 싶어 핵 개발에 대한 구상을 시작한 시점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시점이었을 것으로 나 호호당은 추정한다.

올 해는 1994년 핵 개발 시작으로부터 24년이 경과한 해이자 1988년 핵 구상으로부터 30년이 되는 해이기에 결정적인 분수령의 해가 될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서 올 해로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완성될 것이란 생각이다.

미국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 재진입 기술이 아직까진 확보되지 않았을 것이란 다소 희망적인 추측을 하고 있지만 그거야 모르는 일이다. 정보 분야란 원래 불확실성을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올해로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완성이 될 것이고, 금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나름 북한판 최종 버전의 발사 테스트가 있을 공산이 크다고 본다.

이미 핵과 운반수단을 가진 북한을 상대로 미국은 비핵화 즉 핵을 제거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핵 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함과 동시에 경제 제재와 봉쇄를 풀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제 전부가 아니면 무(無), 즉 All or Nothing 게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에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타격, 최근 유행하는 말로 거하게 코피(Blood nose) 한 방을 터뜨려주겠다는 옵션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보도에 의하면 주한 미 대사로 내정되었던 빅터 차 교수가 이에 반발했다가 낙마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의중이 강경론으로 기울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금년 가을이면 우리는 그야말로 ‘진실의 순간’ 앞에 마주서게 될 수도 있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우리 대한민국 자체가 미국과 북한의 치킨 게임에 있어 ‘일종의 볼모’가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 역시 어느 선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얘기이다.

현재 정부는 이번 평창 올림픽을 현재의 딜레마를 타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 아래 정말이지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북한의 현승월이 정말이지 ‘개건방’을 떨며 다녀가도 못 본 척 꾹 참고 인내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계가 있다. 우리 정부로선 현 시점에서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란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국정의 최종 책임을 맡은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정말이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 번 얘기해보자. 그건 곰더러 웅담을 제 손으로 꺼내 놓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고, 보따리를 통째로 내놓으시오 하는 주문과 같다.

북한 체제의 안전을 담보하는 절대 버팀목이 바로 핵과 미사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 아무리 잘 해 줄 터이니 고려해보라고 해도 북한으로선 응할 까닭이 없다. 그렇기에 외교적 노력은 현 시점에서 일정한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이제 남은 일은 미국이 계속 으름장만 놓을 것인가 아니면 진짜 행동에 나설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북한이 먼저 미국 본토를 겨냥해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일은 확률이 지극히 낮은 일이기에 그렇다.

미국으로선 이제 시간을 벌 것인가 아니면 해결할 것인가의 선택이 있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은 임기가 4년이란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이제 트럼프의 임기는 3년 남았지만 사실상 올 해가 지나가면 레임덕이 발생하면서 그런 큰 결정을 하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친 필사적인 노력, 즉 핵 미사일 개발은 일단 성공했다. 1988년 무진년부터 구상되기 시작한 핵 미사일 구상은 30년이 흘러 2018 무술년으로서 실체가 되어 우리에게 악몸(惡夢)이 되었다.

나 호호당으로선 이제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는 생각, 현 시점에선 일종의 희망적인 관측에 기댈 수밖에 없다.

김정은에게 별안간 일이 생기면서 북한 내부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는 일이 그것이다. 1948년 남과 북이 분리 독립되었으니 그로부터 72년, 즉 60년 더하기 12년이면 으레 큰 변화가 생기는 법인데 그렇다면 그 변화는 2020년에 발생한다는 얘기가 된다.

부디 2020년에 생겨날 변화가 남북한 민족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