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따라 입맛따라...헌법에 前文이 꼭 있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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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08월 17일 13:52:38
    정권따라 입맛따라...헌법에 前文이 꼭 있어야 하나
    <칼럼>9차례 헌법 바꾸면서 4차례나 전문 손질
    모든 걸 세세히 규정해 버리면 법률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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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2-05 05:33
    이진곤 언론인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기념하는 '촛불 승리 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①“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제헌헌법: 1948년 7월 12일 제정, 17일 시행)

    ②“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제5차 개정헌법: 1962년 12월 26일 개정, 1963년 12월 17일 시행)

    정권 변화 따라 표현 오락가락

    ③“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제7차 개정헌법: 1972년 12월 27일 개정‧시행)

    ④“유구한 민족사, 빛나는 문화, 그리고 평화애호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의 출발에 즈음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제8차 개정헌법: 1980년 10월 27일 개정‧시행)

    ⑤“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현행 제9차 개정헌법: 1987년 10월 29일 개정, 1988년 2월 25일 시행)

    헌법 전문 앞부분을 옮긴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제헌 이래 9차례 개정됐고 그 가운데 네차례는 전문(前文)에까지 손질이 가해졌다.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건국선언 및 강령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정권의 의도‧욕심이 끼어들면서 용어와 표현이 오락가락했다.

    제헌 당시는 해방과 국가건립의 환희와 흥분이 극도로 고조됐던 시점이었고, 독립국가로서의 자존을 내외에 과시할 필요가 있어서 헌법 제정을 이끈 사람들이 위 내용의 전문을 앞세우고자 했을 것이다. 이 전문의 말미엔 “단기 428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이라고 명기되었다(송우, 한국헌법개정사). 헌법 전문이자 이 의장의 이름으로 선언된 제헌선언문이었던 셈이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에도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건설했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을 법하다. 그 대한민국을 해방된 한반도에 ‘재건’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지는 문장의 표현이 명확하지 못해,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인지, 그 국가를 재건한다는 것인지 혼동을 초래한 점이 있지만 정치적 선언으로서는 의미가 컸다.

    5‧16 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개정된 헌법의 전문에서는 위의 표현들이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 계승’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 ‘새로운 민주공화국 건설’ 등으로 대체됐다. 5‧16의 정치적 법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을 개정한 것이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은 프랑스의 경우를 흉내 낸듯하나 경우가 같지 않다. 그 나라에서는 공화정과 제정이 여러 차례 교체된 정치사를 정리하기 위해 그런 식의 구분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단지 정변이나 개헌이 있었을 뿐 국체‧정체는 그대로였다. ‘제○공화국’이라는 식의 시대구분이 억지스럽다는 뜻이다.)

    이른바 ‘유신헌법’에서 다시 전문이 고쳐졌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이라든가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이라는 식의 췌사(贅辭)가 나열됐다. 유신의 명분을 강조해 보이고 유신정권의 이미지를 순화시키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었다고 하겠다.

    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헌법은 다시 대대적으로 개정됐고 전문 또한 크게 바뀌었다. ‘5공화국’을 치장하기 위한 미사여구가 넘쳐나는 문장이 되었다. ‘유구한 민족사, 빛나는 문화, 그리고 평화애호의 전통…’ 등 좋은 말을 다 골라서 늘어놓은 느낌을 줬다.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은 유지됐으나 ‘4‧19의거’와 ‘5‧16 혁명’은 삭제됐다.

    고칠수록 오염도 높아지는데

    87년 ‘6‧29선언’으로 우리 현대정치사는 또 한 차례 역사의 큰 굽이를 돌았다. 처음으로 여야가 대등한 입장에서 합의를 통해 이룬 개헌이었다. 당연히 ‘제5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은 배제됐다. 대신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 등의 표현이 더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이 헌법 전문에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촛불 혁명’을 명시하기로 했다 해서 되돌아본 ‘헌법 전문 개정 약사(略史)’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권세력의 정치적‧역사적‧법적 정통성과 정당성을 헌법, 특히 전문에 써 넣고자 하는 바람에 개헌의 요구가 끊일 날이 없다. 개헌이 거듭될수록 헌법 전문의 오염도가 심해지는 까닭을 달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민주당은 집권당이 되자 문재인 정부와 자신들의 영광을 헌법에 아로새기고 싶어진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얼마나 오래 그 문장과 표현이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여전히 역사적 평가의 와중에 있는 사건, 상반되는 논리와 주장이 있는 사건, 정치적 입장에 따라 판단이 상반되는 사건은 피하는 게 옳다. 지금의 집권세력은 헌법의 주인이 아니라 (말하자면) 그 종이다. 헌법 가지고 장난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선이라고 여기는 것, 내가 정의라고 주장하는 바가 ‘진리’라는 착각은 대단히 위험하다. 자꾸 우기고, 법에 명문화하고, 교과서에 써넣고, 교단에서 주장하고 한다고 ‘진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제헌 때는 그럴 만했다고 해도 개정할 때마다 전문을 새로 써야 할 까닭은 없다. 수려한 문장, 넘치는 상상력, 화사한 꿈으로 헌법 전문이 채워져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들 연합주(州)의 인민은 더욱 완벽한 연방을 형성하고, 정의를 확립하고, 국내의 안녕을 보장하고, 공동의 방위를 도모하고,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고,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이 자유의 축복을 확보하게 할 목적으로 미국을 위하여 이 헌법을 제정한다.”

    미국 헌법 전문이다. 부족한 게 있어 보이진 않는다.

    헌법에도 대못 박겠다는 기세

    “독일 국민은 신과 인간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합일된 유럽의 동등한 권리를 갖는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을 다짐하며 헌법제정권력에 의해서 이 기본법을 제정하였다(이에 덧붙여 구동독의 주들이 자율적 결정으로 연방에 편입됐음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헌법의 전문은 좀 긴 편인데 거기엔 연합군최고사령부 주도의 개헌이었다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프랑스 헌법은 우리와 비슷한 형식의 전문을 갖고 있지만 우리보다는 간명하고 구체적이다. 어쨌든 헌법이 국가의 기본법인데 그 위에 다시 준거틀로서의 전문을 둬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전문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 연말엔가 연 초엔가 보도된 바 있지만)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개헌안이라는 것을 거의 그대로 수용해서 당의 안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문뿐아니라 본문 조항도 130개 가운데 90여개를 고치려 한다고 보도됐다.

    예컨대 행정수도에 대한 조항을 신설하고 경제민주화 및 토지공개념을 강화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하기로 했다. 또 기본권 강화를 위해 생명권 명시, 직접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법률안 국민 발안권 신설, 직접 민주주의 강화와 관련한 국회의원 국민 소환권 도입을 규정할 것이라고 한다. 전문과 본문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겠다는 말은 ‘잘못 발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지만 이 밖에도 민주당이 고치거나 신설하고 싶어 하는 조항은 ‘차고 넘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모든 것을 헌법에 세세히 규정해 버리면 법률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일 수 있을까. 혹 헌법에 대못을 박아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현 정권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손상시키지 못하게 하겠다는 욕심인가. 헌법은 말 그대로 국가의 ‘기본법’이다. 거기에 모든 가치와 규범을 다 담겠다고 하는 것은,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연주하는 것(膠柱鼓瑟)이나 다를 바 없다. 부디 고민 또 고민할 일이다.

    아울러 개헌을 통해 국체와 정체를 바꾸고 말겠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믿지만 앞으로도 그런 유혹은 과감히 떨쳐버리기를 바란다. 혁명을 아주 좋아 하는 분들인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혁명은 하나의 얼굴을 하고 한 길만을 지향하는 게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한다고 했던 ‘프랑스 혁명’의 과정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17년의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전말도 참고할 만 할 것 같다. 권력을 가진 분들, 바쁠수록 돌아가고, 급할수록 차분해 지시기를!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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