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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가족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 '육아휴직'

  • [데일리안] 입력 2018.02.03 05:00
  • 수정 2018.04.06 08:38
  • 이석원 객원기자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20>당찬 스웨덴 워킹맘 정근애 씨

“한국도 스웨덴식 육아 복지 적극 도입해야 육아 고통 탈출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IMG1>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이와 엄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그건 아빠 자신을 위한 것이죠. 아빠가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아빠 자신이 아이에게 평생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돼요. 내놓고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내 아이의 초기 육아 단계에서 스스로가 배제됐다는 마음은 ‘사랑’이 가려진 채 ‘의무’만이 강조된 부양이 될 수 있죠. 아빠의 육아휴직 사용은 ‘진실한 가족’이 되는 방법이죠.”

한국 사회에서 육아휴직은 어떤 상황에 와 있을까? 매년 지속적인 증가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한 마디로 ‘형편무인지경’이다. 통계청의 지난 해 12월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0세~5세까지 자녀를 둔 여성 직장인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42.9%다. 아직도 절반에 한참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들의 육아휴직의 끝은 더 참혹하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니 이미 내 자리는 남아있지 않았다’는 말은 그저 자조 섞인 넋두리가 아니다. 지난 해 말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육아휴직 사용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의 육아휴직 후 복직률이 81%에 그치고 있다. 5명 중 1명은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유가 더 슬프다. ‘근로 조건상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68.4%,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회사의 부당한 처사’가 18.4%. 한 마디로 ‘아기 낳은 죄인’이 돼서 무참하게 밀려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회사의 부당한 처사’ 보다 ‘병행이 어려워서’라는 자발적 이유가 압도적인 듯 하지만, 결국 회사든 국가든 시스템을 만들어주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난 해 3월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 중 40%는 복직 후 1년 안에 그 직장을 떠난다는 것이다. 어렵게 복직해서 자리를 지켰지만, 회사 내 분위기나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사회적 여건 때문에 결국 어렵게 되찾은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의 육아를 하는 여성 직장인들의 현실이다.

스웨덴 생활 14년 차인 정근애(36) 씨는 현재 둘째 아이를 낳고, 두 번째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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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인 아이섹(AIESEC)에 가입한 정근애 씨는 대학 졸업 후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2년 간 근무했다. 그러다가 아이섹을 통해 스웨덴에 오게 됐다. 2004년의 일이다. 당초 계획은 9개월의 계약을 끝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채용이 되면서 스웨덴에 정착하게 되었다.

정근애 씨는 첫 회사에서 6년을 근무했다. 그리고 같은 회사 동료이던 이탈리아 토스카나 출신의 남편 다비데 마네스키(Davide Maneschi) 씨를 만나 결혼했다. 회사를 삼성전자 스웨덴 법인으로 옮긴 후 정근애 씨는 첫째 아들 룩하(Luca. 이탈리아 이름 루카를 한국 느낌으로 변형한 것)에 이어 얼마 전 둘째 딸 윤하(Yunha. 윤하는 완전히 한국식 이름)를 낳았다.

“룩하 때 제가 11개월, 남편이 4개월의 육아휴직을 사용했어요. 그 중 1개월은 남편과 제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사용했죠. 남편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 많은 경험과 공부를 했어요. 그건 아이에 대한 남편의 자신감으로 발전했고요. 결국 육아휴직을 통해 남편은 아이와 아주 가까워질 수 있었고, 아이와 저 뿐 아니라 남편 스스로가 ‘아빠’라는 자존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죠.”

정근애 씨가 강조하는 스웨덴 육아휴직의 가장 큰 장점은 기간의 명확한 보장과 육아휴직 후 복직의 확실성이다. 거기다 한 가지 더한다면 아빠의 육아휴직이다.

스웨덴의 육아휴직은 총 480일이다. 이것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480일의 육아휴직은 원칙적으로 아내와 남편이 나누어 쓸 수 있는 것인데, 절대 한 사람이 다 사용할 수 없다. 한 사람이 최대 사용할 수 있는 한도는 390일이다. 즉 아내든 남편이든 한 사람은 390일까지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고, 나머지 한 사람이 반드시 90일의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은 한 아이에 대해 총 12개월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육아휴직의 거의 전부를 아내가 사용한다. 앞서 통계청의 지난 해 12월 자료에 따르면, 여성 직장인 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람이 42.9%라고 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남성 직장인은 단 1%만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IMG3>
결국 육아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여성에게 치중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업 주부가 아닌 ‘워킹맘’의 경우라도 육아는 여성의 몫인 셈이다. 결국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육아에 대한 사고방식은 단지 의식의 문제가 아닌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라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근애 씨가 유독 아빠의 육아휴직을 강조하는 것은, 역할 분담의 의미보다 가족의 단절 또는 해체를 막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아빠들은 참 열심히 일하죠. 육아휴직이니 하는 것들은 모르고, 아이가 태어나면 오히려 더 많은 야근과 특근, 그리고 근무에서 연장된 회식 등에 시달리면서 그야말로 죽어라 일하죠. 그러다가 40대에 이르렀을 때 극도의 상실감에 빠진다고 해요. 요즘 한국 가정에는 아빠의 존재감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아이들도 아빠를 존중하지 않고. ‘고개 숙인 남자’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한 때 유행하기도 했고요. 자녀가 아기일 때 아빠의 육아휴직을 통한 적극적인 육아는 아빠의 존재감 상실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해요. 스웨덴의 거의 모든 가정이 그렇듯이.”

정근애 씨는 둘째 윤하 때는 18개월의 육아휴직을 쓰기로 했다. 아빠 다비데 씨도 6개월을 쓸 생각이다. 현재 5개월 째 사용 중인 정근애 씨의 육아휴직은 사실 윤하의 몫이 아니다. 룩하 때 남은 육아휴직을 소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둘째의 경우에는 더 여유가 있는 셈이다. 다비데 씨도 그래서 윤하에게는 룩하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근애 씨가 이렇게 마음 놓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건 육아휴직 기간에 안정적인 급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개인에 따라 다소 복잡한 계산이 있기는 하지만, 통상 육아휴직 기간에 급여의 80%를 계속 지급받을 수 있다. 그 정도의 수입이면 휴직 상태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다. 한국이 법적으로 육아휴직 최초 3개월간은 통상임금의 80%를 지급하지만, 이후 9개월간은 통상임금의 40%만을 지급하는 것과 비교하면 안정적인 수입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IMG4>
하지만 안정적인 급여 보장이 전부는 아니다. 육아휴직을 마친 후 돌아갈 회사가 있다는 것이 육아휴직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로 더 크다.

“육아휴직 후 복직에 대한 의심은 0%도 하지 않아요. 그런 것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스웨덴에서는 현실적이지 않죠.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돌아가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어요. 회사가 됐든 정부가 됐든 그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하지 못하면서 저출산을 걱정한다는 것은, 저출산의 책임은 순전히 개인들에게 지우는 것이니까요. 육아휴직 후 복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인 거죠.”

여성의 육아휴직 사용 42.9%. 육아휴직 후 미복직 19%. 복직 후 1년 안에 퇴직 40%. 정근애 씨의 이야기 속에서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의 치료법이 보인다. 아빠의 육아휴직이다.

남성의 경우 앞선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조사에서 육아휴직 후 복직률이 92.5%다. 또 복직한 경우 육아 때문에 1년 안에 퇴직하는 비율은 0%에 가깝다. 지난 해 통계청 자료에서 남성 직장인의 육아휴직 사용이 1%라고 하니 앞으로 남성들의 육아휴직이 육아는 물론 아기가 태어난 가정의 실질적인 갈등 해소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근애 씨는 남편 다비데 씨가 룩하, 윤하와 어울려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장 행복하다. 요즘같이 날씨가 쌀쌀하고 궂은 날이면 솔직히 남편 때문에 편하다는 생각도 한다. 게다가 자신의 육아휴직이 끝난 후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회사에 출근하면 활력이 더 생긴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육아휴직은 자신에게도 활성비타민제같은 역할을 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시스템과 사고방식은 저와 잘 맞아요. 특히 육아에 있어서는 더 그렇죠. 한국에서 육아의 현실에 대한 뉴스 등을 접하면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식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보다 스웨덴이나 북유럽식의 사민주의적 사고방식을 좀 더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건 이념의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결국 가족의 행복과 그것을 기초로 하는 그 사회 전체의 행복의 문제가 될테니까요.”

스웨덴 생활 14년 차인 정근애 씨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스웨덴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근애 씨가 스웨덴의 육아휴직을 얘기하면서 한국의 육아 복지를 걱정한다면, 그건 한국인으로서의 타당한 걱정인 것이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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