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이 올림픽의 가치이고 목적인가?

실시간 뉴스
    최종편집시간 : 2018년 08월 17일 13:52:38
    ‘흥행’이 올림픽의 가치이고 목적인가?
    <칼럼>왜 북한이 무대 전면 등장해 지휘자 노릇하나
    왜 한국 정부 이를 거들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 보이나
    기사본문
    등록 : 2018-01-22 05:52
    이진곤 언론인
    ▲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예술단 공연을 위한 사전점검단이 21일 강원도 강릉아트센터를 둘러본 뒤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6년 반 전의 남아공 국제컨벤션센터. 자크 로게 당시 IOC위원장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으로 결정됐다고 발표한 순간 현장에서 끌어안고 환호하던 한국의 대표 인사들은 이제 대부분 이런저런 사유로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를 새로운 인물이 채우고 있다. 현송월이라는 북측 인사다. 느닷없이 이 사람의 사진과 기사가 국내 언론에 도배질됐다. 단 며칠만의 현상이고 시청자와 독자의 관심도가 반영된 기사배치라고 여겨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생뚱맞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불편해 하시니 질문 하지 마라

    그건 그렇다하고,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해 어떤 역할이나 노고를 보탠 인물이라는 것인가. 무슨 특별한 연고가 있어서 이 사람이 서울과 강릉을 휘저으며 이른바 ‘점검’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인지, 누가 좀 말해주시라.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내도 그는 미소만 띤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인터넷 신문들이 전했다. 경호하던 우리 국정원 관계자가 대변인 노릇을 했다고 한다.

    “(질문은) 협의된 바 없다.” “(현송월이) 불편해 하신다. 질문 자꾸 하지 말라.”

    세상에! 당사자측이 아니라 우리 국정원 관계자가 그렇게 기자를 막고 나섰다는 거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중국에서처럼 폭행은 당하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인가.

    ‘1·21사태’라고도 하고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하는, 북한 무장군인들의 청와대 습격 기도 사건이 발생한지 꼭 반세기가 되는 날이었다. 바로 그날 현 씨가 이끄는 북한 측의 점검단이, 청와대를 비롯한 전 정부적인 환영 무드 속에서 입경했다. 물론 그 위세의 배경에는 김정은이 있다. 그래서 다시 물어봐야 하겠다. 김정은은 또 누구인가. 집권 6년여 동안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광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리를 마음껏 협박했던 북한의 통치자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누가 정정해주시라. 이 사람이 평창올림픽 유치와 준비에 손톱만큼의 힘이라도 보탠바 있다면 그것도 자세히 일러 주시라.

    그가 지난 1월 1일 평창올림픽 참가 및 남북당국 간 회담 용의를 내비치자 한국 정부는 ‘전광석화’ 같이 카펫을 깔았다. 일방적 통고였지만 단 한마디 이의 제기나 질문이 있었던 것 같지가 않다. 이후 열린 접촉과 회담 광경도 다를 바 없었다. 삼지연관현악단 140명을 보내, 평창 현장에서가 아니라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그걸 위해 사전 점검단을 보낸다더니 갑자기 안 보낸다고 통고했다.

    이쯤 됐으면 정부가 먼저 북측에 알아볼 일이었다. 그게 순서일 텐데, 통일부 고위 당국자라는 인사는 “추측성 보도나 비판적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되레 언론 탓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북측은 다시 약속보다 하루 늦게 점검단이 갈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는 일정이 연기된 게 언론 탓이었는지,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지 해명할 만도 한데 입을 다물고 있다.

    현 씨 일행은 당당히 서울에 도착해 KTX를 이용, 강릉으로 가서 시설 점검이라는 것을 했다. 22일에는 다시 서울로 와서 역시 공연장과 시설 등을 둘러본 후 북으로 귀환하는 일정이다. 두 지역 시민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환영의 박수소리도 나왔던 모양이다.

    구원의 손길 보내줬다는 북한

    자칫 판이 깨질까봐 노심초사했을 청와대는 크게 안도한 듯 반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1일 브리핑에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평창 올림픽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흥행을 확신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결정되면서 우리는 적어도 올림픽 기간만큼은 평화롭게 행사를 치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러니까 북한이 세계인의 축전을 성공시킬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핵무력 완성’을 공언한 북한의 힘이라고 대신 말해 주려는 것이었을까?

    괜히 시비를 거는 게 아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 “정세 악화로 역대 최악의 인기 없는 경기 대회로 기록될 수 있는 이번 겨울철 올림픽 경기 대회에 우리가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고 있는 데 대해 (남조선 각계가)고마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 당국이 이처럼 배려심 깊은 줄을 왜 예전엔 미처 몰랐을까. 핵무기를 개발하느라, 미국의 압박을 받느라,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느라 고생 고생하면서도 우리 평창올림픽 걱정을 해줬다니!

    (노동신문의 이 논평 기사 제목은 ‘역사의 오물통에 처넣어야 할 쓰레기 언론’이었다. “북남 사이에 대화의 문이 열리고 관계개선의 분위기가 마련되고 있는 지금 남조선에서 우리에 대한 보수언론들의 악선전이 도수를 넘어서고 있다”고 준엄하게 나무랐다. 언론이 보도를 잘못하면 점검단 파견을 늦췄던 것처럼 대회 참가도 재고할 수 있다는 뜻일까?)

    북한이 대화와 관계개선에 그토록 열정을 가진 줄을 정말이지 우리(최소한 나)는 몰랐다. 혹 정부 관계자들은 알았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묻고자 한다. 언제부터 북한이 그처럼 좋은 마음만 가지고 우리를 도우려 했는지, 아는 바 있으면 누구든지 좀 말씀해 주시라. 내친 김에 묻겠는데, 올림픽의 최고 가치와 목적은 ‘흥행’인가?

    하긴 흥행만으로 그러는 게 아니리라고 짐작할 수는 있다. 윤 수석이 내다본 것처럼 적어도 그들의 참가기간 동안에는 무력도발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KAL858기’의 비극이 다시는 없으리라는 게 보장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한 시름 놓게 될 일 아니겠는가. 그 점을 감안해서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라면, 이해할 여지가 없지도 않다.

    그런데 이를 계기로 남북당국 간 회담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사로잡히지나 않았을지 걱정이다. 북한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꿈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이라면 ‘회담성사’의 바늘구멍만한 가능성에도 마음 들뜨게 마련이다.

    “남북대화만 잘 된다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남북만으로 결판을 지을 일은 아니지만 미국과 북한 사이에 대화의 다리를 놓아줄 수는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설마 그런 황당한 계산을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찝찝한 느낌을 털어내기 어렵다.

    참가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

    한국 정부의 거중조정이 없어서 미국이 북한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과 북한 간 핵협상의 기본전제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포기’이다. 북한이 이런 조건을 수용할 리 없고, 미국이 그런 북한과 협상을 하려 할 까닭이 없다. 그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 또한 제로다. 유감스럽지만 이게 진실이다.

    북한은 다시 기회를 잡았다. 남한 정부의 뒷덜미를 잡고 국제사회를 향해 웃는 표정을 강요하면서 미국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때까지 버틸 개연성이 높다. 중국과 러시아의 추임새를 받아가면서. 북한 김정은 집단은 21세기의 기형적 왕조체제이자 사이비 신정체제다. 핵을 포기한다든가, 인민의 자유를 증진시킨다든가 하는 식의 퇴로는 아예 없다. 선택지는 앞으로 계속 가든가 전복되든가 뿐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저들이 핵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북한이 보는 우리사회는 아마 과거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대중조작이 쉬워진 사회, 진보좌파적 경향이 농후해진 사회, 연방제 통일을 두 손 들어 환영할 사회, 보수 세력이 추방된 사회라고 우리를 보게 되었을 듯하다. 갑작스런 태도변화로 미루어 보자면 그렇다.

    “이 절호의 기회를 왜 놓치랴. 오히려 남북 회담을 주도하면서 평화공세로 나서면 남한 사회를 분열시키키고 한미관계에 틈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데….”

    혹시라도 그런 망상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다.

    흥행은 된다고 치자. 그런 다음엔 어쩔 것인가.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 북한이 아니다. 쉬운 일을 시킬 리가 없다. 어려워 못 들어주겠다면, 그것을 핑계로 온갖 위협 악담을 퍼부으며 한반도 문제의 책임을 우리 쪽으로 넘기려 하기 십상이다. 만약 어렵더라도 우리가 들어줘야 한다고 정부가 결심하면? 미국과의 사이에 갈등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 때엔 ‘우리민족끼리’ ‘사람중심’의 공통가치로 한편이 되어 ‘미제국주의’라는 세력에 대항할 것인가. (참, 세상이라는 게 원래 사람중심의 구조가 아니던가?)

    3수까지 해가며 얻어낸 동계올림픽 개최권이 북한의 ‘평화 굿판’을 위한 멍석 깔아주기가 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뒤늦게 왜 북한이 무대의 전면에 등장해 대회 지휘자 노릇을 하려는지, 왜 한국 정부가 이를 거들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을 보이는지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더 의아하고 궁금하다. 한국 정부에 있어서 평창동계올림픽의 의미는 무엇인지, 북한이 왜 이제 와서 평창올림픽을 돕느니 어쩌느니 하게 됐는지, 어떤 연유로 북한이 통고하면 우리정부는 그걸 지시로 인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게 됐는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 (주)데일리안 - 무단전재, 변형, 무단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