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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가상화폐 명암] "흙수저 마지막 탈출구라는데"…투자·투기 기로


입력 2018.01.21 06:00 수정 2018.01.22 09:18        박진여 기자

투자자 댓글로 본 실태…"인생역전 기회" 팍팍한 삶 반영

투자 성공담 미끼에 "도와주세요" 읍소…모방투자 위험도

정부 규제에 "청와대 가즈아" 청와대 국민청원 20만 훌쩍

"폐쇄보다 보완…규제보다 안전한 정책 제도화 정착 과제"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투자 성과에 대한 기대와 손해에 대한 절망 속 투자와 투기 사이의 기로에 놓여 있다.(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투자 성과에 대한 기대와 손해에 대한 절망 속 투자와 투기 사이의 기로에 놓여 있다.(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투자자 댓글로 본 실태…"인생역전 기회" 팍팍한 삶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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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보다 보완…규제보다 안전한 정책 제도화 정착 과제"


가상화폐가 사회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회식 자리나 각종 모임 장소에서는 물론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도 주요 화두로 오르내린다.

직장인을 중심으로 주부, 은퇴자, 학생들까지 너나없이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면서 하루에도 수만 건씩 거래가 이뤄지고 시세가 등락을 반복하며 들썩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상화폐 가격이 하루밤새 두 배 올랐다가 곧 반토막되는가 하면, 개인정보가 유출돼 실제 출금까지 이어지는 해킹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투자 성과에 대한 기대와 손해에 대한 절망 속 투자와 투기 사이의 기로에 놓여 있다.

가상화폐 '큰손' 떠오른 2030세대…"N포 세대 마지막 사다리"

국내 가상화폐 거래 이용자는 약 3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인터넷 거래에 익숙한 2030 청년세대가 전체 거래자의 60% 가량이다. 초기에는 관련 전문가나 투자자가 주류였던 시장에 요즘에는 직장인은 물론 쌈짓돈으로 '대박'을 꿈꾸는 2030 세대가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투자 성과에 대한 기대와 손해에 대한 절망 속 투자와 투기 사이의 기로에 놓여 있다.(자료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화면 캡처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투자 성과에 대한 기대와 손해에 대한 절망 속 투자와 투기 사이의 기로에 놓여 있다.(자료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는 대부분 청년들의 삶이 결핍돼 있음을 방증한다. 학자금 대출은 남아있지만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내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에는 부족한 현실 속 청년들에게 가상화폐는 현실탈출의 유일한 동아줄인 셈이다.

직장인 2년차 직장인 윤모(28) 씨는 지난 하반기 받은 성과급 700만원을 고스란히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매달 받는 월급으로는 평생 집 한 채 겨우 마련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상화폐 투자가 그나마 여유자금의 원천이 된다는 설명이다. 윤 씨는 "월급만으로 살기 힘든 사회에서 부동산은 쳐다도 못 보고, 1~2%대 예적금으로는 돈 모으는 것이 힘들다"며 "문제는 가상화폐가 아니라 월급만으로는 살기 힘든 우리 사회 구조"라고 지적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버티는 투자자도 속출한다. 대학생 손모(24) 씨는 다음 학기 등록금과 용돈을 위해 꼬박 모은 300만원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 시세 폭락으로 투자금을 거의 잃게 된 손 씨는 나머지 투자금을 확보하는 것보다 오히려 저점매수 타이밍을 노리거나 우회로 가상화폐에 계속 진입하는 방안을 궁리 중이다. 손 씨는 "지금 투자금을 빼면 다음 학기는 희망이 없다"며 "떨어진 가격이 다시 오를 때까지 버티다가 수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 성공담 미끼에 "도와주세요" 읍소…모방투자 위험도

이 바람을 타 신종 투기 수법도 기승을 부린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상화폐로 번 돈을 손실을 입은 사람들에게 도와주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가상화폐로 300억을 벌었으니 투자금을 잃은 사람 10명에게 1억원씩 보내 구제해주겠다"고 적었다. 여기에는 실시간으로 수십 수백개의 댓글이 쏟아졌다.

댓글에는 계좌번호를 적어 돈을 보내달라는 사람, 믿고 투자할테니 비법을 전수해달라는 글이 난무한다. 자신을 '취업준비생'이라고 소개한 A 씨는 댓글에서 "오랜 취업준비로 모은 돈을 거의 다 쓰고, 취직을 한다고 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에 남은 돈을 비트코인에 투자했는데 모두 잃었다"며 "한 번만 도와주시면 착실하게 마음잡고 다시 정진하겠다. 힘을 달라"며 본인의 계좌번호를 함께 적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투자 성과에 대한 기대와 손해에 대한 절망 속 투자와 투기 사이의 기로에 놓여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투자 성과에 대한 기대와 손해에 대한 절망 속 투자와 투기 사이의 기로에 놓여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문제는 투자 성공담이 또 다른 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 가상화폐 열풍이 인 것도 가상화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주변의 성공담을 듣고 투자에 뛰어든 영향이 크다. 실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군대 가기 전 사둔 비트코인이 전역 후 20배가 불어났다", "퇴직금 2000만원을 넣어 1억을 만들었다", "비트코인으로 수백억을 번 사람 중 한명으로, 100억 200억씩 이익을 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다들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고 있어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성공담을 소개하며 비법을 알려준다는 글도 곳곳 눈에 띈다. 여기에는 "비법을 전수해 주시면 형님으로 모시겠다", "너무 부럽다. 강의를 들을 수는 없나", "투자해보고 싶다", "카카오톡 아이디 좀 알려주시라"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이는 모방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직장인 박모(27) 씨는 "시세는 떨어지는데 곧 다시 오를 거라는 지인의 말에 덜컥 월급을 투자했는데 지금은 일이 손에 안 들어온다"며 "저번 달 일한 게 다 날아갈 수 있겠다 싶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규제 반대' 청와대 국민청원 20만명 돌파…뿔난 투자자들

이처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거래 위험성이 커지면서 정부는 거래소 폐지 등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하면서 그 화살은 다시 정부로 돌아갔다. 정부는 '거래소 폐쇄' 방침에 수많은 이용자가 거세게 반발하자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며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의 말 한 마디에 가상화폐 시세는 요동쳤다.

정부가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며, 거래소 폐쇄까지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가상화폐 시세는 전날 대비 10% 안팍으로 대폭 폭락했다. 그러나 이후 청와대가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서자 가상화폐 시세가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이에 투자자들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혼란만 가중된다며 정부를 상대로 규제 반대 운동에 나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미 지난해 12월 28일 가상통화 규제 반대 청원이 올라왔다. '정부는 국민에게 단 한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 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21일 오전 기준 22만여 명이 넘게 참여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핵심 지지층인 2030 세대가 가상화폐 이용자의 60%에 이르며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해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모든 일에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이번 건 과했다", "대선 때 1번을 찍었던 내 손이 원망스럽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투자 성과에 대한 기대와 손해에 대한 절망 속 투자와 투기 사이의 기로에 놓여 있다.(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투자 성과에 대한 기대와 손해에 대한 절망 속 투자와 투기 사이의 기로에 놓여 있다.(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일부 투자자 사이에서는 항의집회가 예고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한민국이 공산국가냐. 아마추어 정권의 불법적인 암호화폐 규제, 결사 반대한다. 가즈아! 청와대로! 가즈아! 광화문으로!" 라고 적힌 포스터가 등장했다. 해당 포스터와 게시물 등에는 청와대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를 상대로 항의 집회를 열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폐쇄보다 보완…규제보다 안전한 정책 제도화 정착 과제"

이처럼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이 유독 가상화폐 시장이 투기판으로 전락한 배경에는 정부의 한발 늦은 대응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상화폐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시기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응하며 화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투기판으로 전락한 가상화폐 시장이 분명 어느정도의 관리와 규제가 필요한데도 적절한 관리시기를 놓쳐 뒤늦게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며 강한 저항만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가상화폐를 활용하는 정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상화폐의 활용성이 앞으로 더욱 높아지는 가운데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짜는 것이 급선무"라며 "가상화폐를 거래할때 가격변동성이나 손실위험을 인지시키고 불법거래를 방지하는 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IT 업계에서도 정부의 블록체인시장 정책을 짚어 가상화폐 거래의 제도화를 주문하고 있다. 가상화폐가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 파생된 만큼 폐지보다 제도화를 위해 지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용자들도 규제보다 제도화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자 김모(34) 씨는 "(정부 조치가)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건지, 투자를 하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월급으로만 살 수 없는 사회에서 다양한 투자 시도를 하는 건데, 정부는 이조차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건 (가상화폐) 제재가 아니라 제도화"라고 강조했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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