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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감이 엿보이는 전투지향의 대한민국


입력 2018.01.15 05:40 수정 2018.01.15 05:54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360년 순환주기중 이제 조금은 쉬어갈 때

영화 ‘남한산성’스틸 컷.ⓒ싸이런픽쳐스 영화 ‘남한산성’스틸 컷.ⓒ싸이런픽쳐스

서울 송파구와 잠실 일대는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였다. 잠실은 그냥 평범한 모래섬이었다. 당시 한강은 잠실의 모래섬을 사이에 두고 양 갈래로 흐르고 있었다. 이에 잠실은 해마다 홍수로 인해 범람하던 드넓은 저습지였다.

어린 시절 선친을 따라 서울에 왔다가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잠실 모래섬에 가본 적이 있다. 툭 하면 홍수가 나서 사람 살 데가 못 된다는 얘기를 선친께서 해주셨다. (잠실만이 아니라 서초 강남 송파 일대가 서울로 편입된 것은 1960년대 말이었다. 한강치수공사를 통해 땅을 메운 뒤 택지로 공급했다.)

모래섬의 남쪽 끝, 그러니까 지금의 석촌 호수는 한강의 주된 물길이 흐르는 넓은 강변이었다. 강 건너편 동남쪽으론 멀리 산이 보였는데 산 위엔 큰 성 즉 남한산성이 있다는 선친의 말씀이셨다.

한강 건너편 남쪽에서 산에 이르는 무연한 공간, 지금의 가락동이나 문정동, 오금동, 거여동 일대는 그저 낮은 언덕들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에 논이나 밭, 그리고 농가들이 한산하게 자리를 하고 있었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던 중 인조가 지금 석촌호수가 된 한강을 건너와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장면에서 1960년대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기분이 묘했다. 영화는 1600년대의 사건과 공간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 공간은 다시 1960년대에 치수공사를 통해 완전히 모습이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50년이 흘러 지금의 서울 강남과 잠실 일대에는 무수한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세 개의 시공간, 1600년대 초반과 1960년대 중반, 그리고 2018년의 시공간이 영화를 보면서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내가 유령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긴 시공간을 눈으로 또 머릿속으로 스캔하고 있는 유령.

잠실은 옛날에 주로 뽕밭 즉 상전(桑田)이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빌딩과 사람의 바다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닌가.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해간다는 느낌. 감당해내기 정말 힘든 저 변화. 멀쩡한 사람을 유령처럼 느끼게 할 정도의 저 변화와 그 변화의 속도.

며칠 전 교보문고에서 책 구경을 하는데 우리나라 작가가 쓴 영국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흔히 영국은 보수적인 나라이고 뭐든 좀처럼 바꾸지 않는 나라란 인식이 강하다. 맞는 말이지만 액면 그대로 그런 것만은 또 아니다.

가령 영국의 런던은 1666년에 그러니까 350년 전에 대화재가 있은 이래 새롭게 만들어져왔고 지금도 만들어져가는 도시이다. 런던은 350년 동안 인구가 30만에서 지금의 천 만으로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러니 끊임없이 변화해가고 있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도시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건물이나 거리가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좀처럼 허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부단히 변화해가고 있지만 그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고 누적이다. 차곡차곡 역사를 쌓아가는 영국이고 런던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선 여간해서 남아나는 것이 없다.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보존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 또 땅값 상승으로 인해 30년만 되면 재개발 재건축으로 헐어버리고 새로 짓는 도시.

따라서 우리는 누적이나 연속이 없다. 비단 건물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럴 것이다. 건물은 우리 의식구조의 반영에 불과할 것이니 말이다.

그저 변화는 좋은 것이란 생각, 이에 변화중독증,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일종의 중증(重症)이란 생각도 들게 한다. 선거 때마다 들리는 말이라곤 제가 몽땅 바꾸어 놓겠다는 소리이고 삼성의 이건희 회장 또한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자는 말을 했었다.

맨날 그리고 허구한 날 우리가 듣는 소리라곤 그저 변화, 발전, 개혁, 혁신, 청산, 타파, 이런 말들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우파이든 좌파이든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바꾸고 또 바꾸고를 거듭하다보면 나중에 본래의 모습은 간 곳이 없어질 것이란 걱정도 생긴다. 성형수술 너무 해서 제 얼굴이 사라져버린 연예인처럼 말이다.

변화, 발전, 개혁, 혁신, 청산, 타파, 이런 것 등은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기존의 무엇을 대상으로 싸우고 투쟁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내 생각에 우리 사회는 ‘싸움 중독증’에 빠져있다는 생각도 든다. 테스토스테론, 남성 호르몬 과잉증후군 같은 거 말이다.

아무튼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세상 모든 나라들 중에서 가장 전투지향적인 사회라는 것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처럼 전투적인가? 또 변화에 대해 왜 이처럼 목을 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법도 하다. 이에 이 의문에 대한 나 호호당의 생각을 이제 들려 드리고자 한다.

우리나라와 사회가 전체적으로 여전히 청년기에 있기 때문이란 것이 답변이다. 아직 피 끓는 청춘이란 얘기이다.

글을 통해 이 세상은 60년에 한 번 순환한다는 얘기를 드린다. 그런데 더 큰 순환의 주기도 있으니 그건 360년 순환이다.

우리나라의 360년 순환은 1904년에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도 물론 있었지만 말이다. 이는 2160년 순환 속에서 살필 문제이다.)

360년을 하나의 순환이라 하면 90년은 하나의 계절이 된다. 1904년부터 1994년까지가 국운의 봄이었고, 1994년부터 2084년까지가 국운의 여름, 다시 90년간의 가을과 이어 90년의 겨울이 올 것이다.

현재 2018년인데 이를 가령 80년 정도 사는 사람의 일생에 비유해본다면 우리나라는 25살 정도의 젊은 나라란 계산이 나온다. (계산근거는 다음과 같다. 1904년부터 2018년까지가 114년이고, 이를 전체 순환의 수 360으로 나누면 0.316이 나온다. 여기에 80을 곱해보면 25세 정도가 된다.)

25세 나이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그러니 청춘의 피가 여전히 끓고 있는 사회인 셈이다. 이에 모든 것이 모든 방면에서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대한민국 사회가 아닌가 한다.

엄청난 교육열, 물러섬이 없는 승부욕, 무지막지한 호승심, 정치 마당을 비롯하여 어디에서든 감지할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과 생존욕구, 먼저 차지하는 자가 임자라는 노골적인 욕망의 표출 등등이 그것이다.

해외를 다녀온 사람들이 곧 잘 하는 얘기가 그 나라 사람들은 참 여유를 가지고 살아요,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치열하고 또 치열해야만 할까요? 하는 질문도 자주 듣게 된다.

많은 이유를 찾아볼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답변은 우리 모두가 여전히 청춘의 피가 뜨거운 젊은이인 까닭이란 생각이다.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사회 모든 연령대 사람들이 동일하다. 대한민국에선 얘도 젊은이이고 젊은이들도 젊은이이며 중년은 물론이고 늙은 노인들도 젊은이인 까닭에 우리 전체가 전투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이런 점과 더불어 우리가 전투적인 것에는 또 한 가지의 큰 이유가 있으니 그건 우리 사회가 기존의 모든 전통과 사실상 단절하고 작별했기 때문이란 점이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더 이상 지켜야할 것이나 보존해야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일종의 거대한 문화개조 대혁명의 거센 물살에 뛰어들었다. 이로서 우리 대한민국은 거의 전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나라이자 사회인 까닭에 변화 지향적이고 전투 지향적인 체질로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스스로는 우리가 엄청나게 전투 지향의 사회란 사실을 미처 모르고 지내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어딜 가도 치열하고도 살벌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이건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 전체가 비록 피 끓는 젊은이라 할지라도 늘 전투 지향적이고 변화 지향적일 순 없는 법이다. 때론 더러 쉬어가기도 해야 할 것이니 말이다.

이에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두루 유심히 관찰하노라면 여기저기에서 피로감이 많이 느껴진다. 이제 다소간 쉬고 싶어 하는 눈치가 보인다는 얘기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렇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더 쉬고 싶은 모양이다.

일자리가 어렵고 워낙 이미 꽉 짜인 사회이다 보니 야망도 그리 대단하지가 않다. 최근 젊은이들은 월수 3백에 결혼하지 않고 지내면서 1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면 그것으로서 최고의 삶이 아니겠는가 하는 얘기들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 그 정도가 현실적으로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상태일 것이다.

현실 여건 상 그렇다고는 하겠지만 큰 눈에서 보면 이는 피로사회의 한 단면임이 분명하다. 받은 재산도 없는 마당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아보겠다고 둘이서 죽을 힘 쓰며 사는 것보다는 솔로로 살면서 작은 여유를 누리며 살겠다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삶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어가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인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오로지 전투 지향의 대한민국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이즈, 비 엠비셔스’ 하던 시절은 분명 지나간 것 같다.

360년 사이클에서 보면 젊디젊은 대한민국이지만 60년 순환에서 보면 많이 늙은 대한민국이다. 2024년이면 국운 제2기가 끝나고 제3기가 시작된다. 그러니 좀 쉬어가야 할 때도 된 것이다.

그간 무리가 많았으니 이젠 좀 쉬어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때가 된 것이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www.hohodang.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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