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신축하 광고...유별난 대통령 지지열기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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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신축하 광고...유별난 대통령 지지열기의 위험성
    <칼럼>공공장소에 초상화 걸리는 나라는 전체주의 사회
    온 국민 환호 속에 열광적 지지 속에 독재의 싹은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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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1-15 05:22
    이진곤 언론인
    ▲ 11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 설치된 문재인 대통령 생일축하 광고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연합뉴스

    “저는 기자님들께서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좀 담담하게 생각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예민하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에게 준 조언(?)이다. 거의 도움이 안 됐을 것 같은 이 말에 기자들은 일제히 웃었다.

    “아, 그렇지! 대통령도 그렇게 많이 당했겠네. 그러니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서 무사(?)하길 바랄 수야 있겠어. 말하자면 동병상련인 셈이구먼.”

    당해 보지 않은 기자들에겐 그런 기분이 들었을 법하다. 그래서 유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온, 자발적(?) 웃음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러나 덩달아 웃은 사람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위트에 화답을 하는 게 도리라고 여겼을 법하다. 그러나 몇 안 되긴 했겠지만 겪어본 기자들에게는 의외의 답변이었을 수 있다.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문자에 너무 예민할 필요 없다”

    문 대통령은 그 말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아마 저보다 많은 악플, 문자를 통한 비난 등을 당한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저와 생각이 같든 다르든 상관없이 그냥 유권자인 국민들의 의사 표시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가장 많은 악플과 문자에 시달렸다면 그건 그만큼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치인이었다는 반증이다. 그랬던 문 대통령의 입장과 질문을 한 기자의 처지가 같을 수 없다. 권력과 권력자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비판이야말로 대통령이 앞장서서 보호해줘야 할 민주국민의 최대 최고의 권리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그것을 ‘각자가 져야 할 짐’으로 정리해 버렸다.

    자신이 겪어 봤으니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위로(慰勞)부터 해 주는 게 순서일 것이다.

    “제가 겪어보니까 정말 힘들 때가 있더군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와 정부를 지지하는 분들께도 표현을 좀 더 부드럽게 하고, 폭탄 투하와 같은 방식으로 문자를 보내는 일은 자제해 주십사고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이 정도로만 답변했더라도 회견장의 기자들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웃으면서, 큰 위안을 얻었을 터이다.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이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 일부의 문자폭탄이 만들어내는 것은 문 대통령의 이미지다. 표현이 거칠고 험악할수록 대통령의 상(像)은 일그러져 비치게 마련이다.

    중국의 전국4군자(戰國四君子), 즉 제나라의 맹상군, 조나라의 평원군, 위나라의 신릉군, 초나라의 춘신군은 각자 수천의 식객을 거느렸다고 전해진다. 인재가 많았던 만큼 정치를 해가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빈객의 더 큰 효용은 달리 있었을 것 같다. ‘선비를 중히 여기고 수많은 선비들을 품을 수 있는 군자’라는 이미지보다 더 나은 게 있었겠는가.

    우리 언어 왜 험악하게 만들까

    이런 얘기도 전해진다. 한고조 유방과 여태후 사이에서 태어난 효혜제(유영劉盈)는 어질었지만 연약했다. 고조는 그게 못마땅해서 척(戚)부인이 낳은 아들 여의를 대신 태자로 세우려 했다. 여태후가 장량(張良)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는 상산사호(商山四皓)를 태자 곁에 있게 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들 네 사람의 고명한 선비들은 진시황제 때 난리를 피해 상산에 숨어 살았다. 눈썹과 수염이 흰 노인들이어서 4호(四皓)로 불렸는데 고조가 선비를 업신여긴다 해서 불러도 응하지 않던 은자들이었다. 여태후가 이들을 모셔 와서 태자를 보필케 하자, 고조는 태자 교체를 포기했다.

    누가 그 사람과 뜻을 같이하는가, 누가 그의 주위에 있는가, 누가 그를 돕는가, 누가 그를 지지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이미지, 그 사람에 대한 세인(世人)의 평가와 신뢰도가 달라진다.

    나라를 얻거나 세우는 일은 마상(馬上)에서 하지만 통치는 정전의 용상에 앉아서 한다. 이제 전사들의 역할은 끝났다. 지금은 민심을 잘 다독이며 정책 수립과 추진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정치‧행정의 전문가들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국민에게 위압감을 주는 정치는 하지하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지자들의 험악한 표현방식은 그대로 대통령의 이미지로 형성된다. 이 세상에서 우리말 우리글을 쓰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이보다 더 소중한 민족의 자산도 달리 없다. 언어는 의사를 표시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사람됨 그 자체의 표현이다. 자신의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언어 속에 겨레의 역사가 있고 겨레의 정신이 있고 겨레 그 자체가 있다. 그 보물을 왜 애써 더럽히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적극적인 지지의사 표시가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될 것은 정한 이치다. 그러나 지나치면 오히려 족쇄가 된다. 문자폭탄을 동원한 철통방어가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의 자기성찰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 지나친 찬사도 마찬가지다. 물론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다. 그렇지만 감성과의 싸움에선 승률이 대단히 낮다. 대개는 감정에 굴복하게 된다. 그게 인간의 민낯이다.

    아직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지하철 5, 7, 8호선 10개 역에 문재인 대통령 생일을 축하하는 동영상 및 대형사진 광고가 게시돼 있는 모양이다. 언론들이 잘 전해 줘서 집에서도 똑똑히 볼 수가 있다. 광고주는 ‘익명의 평범한 여성들’이라고 한다. 대단한 일이다.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는 한국 현대정치사의 대 사건이라 할만도 하다.

    문 대통령을 좋아해서 그런다는 데야 어쩌겠는가. 그런데 하필이면 축하를 왜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을 했을까? 외국 영화에서 보면 거리나 공공장소에 통치자의 거대한 초상화‧사진이 내걸렸거나, 그가 연설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중계되면 그 순간 전체주의 사회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게 그런 사회의 필수적인 무대장치다. 절대적인 권위, 절대적인 권력의 표상으로서 그것은 국민의 정신을 지배한다.

    ‘자발적’이어서 더 걱정스럽다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고 해서 해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발적인 찬사와 지지’로 시작되지 않은 독재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에 떠받들려서 최고위직에 오르고, 그것에 취해 능력을 한껏 과시한다. 온 국민의 환호가 계속되면 그는 영웅이 되고자 하고, 그걸 위해 권력을 강화하고 임기를 연장해 간다.

    미국의 대통령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국민들의 남다른 민주의식 덕분이었지만 역대 대통령들의 책임감‧준법성‧도덕성‧자제력도 큰 몫을 했다고 본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대통령제의 전통과 달리 네 번이나 대통령직에 올랐다. 다행히 이를 답습하겠다고 시도한 후임자는 없었다. 그렇지만 전통만을 믿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미국인들은 깨달았다. 그래서 이전까지 관례로 이어졌던 4년 중임제를 아예 헌법에 못 박기로 했을 것이다. 미 의회는 1947년 3월 24일 1회 중임만 허용하는 개헌을 제안했고, 51년 2월 27일 수정헌법 22조가 발효됐다.

    그렇지만 많은 다른 나라의 경우, 대통령의 임기와 권한은 집권자 및 그 세력에 의해 연장‧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4선이다. 그는 경제적 하층민의 열렬한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고, 한 번의 제헌과 한 번의 개헌을 통해 임기 제한 없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무리한 주요산업 국유화 및 분배위주 정책으로 전 국민적 빈곤화를 초래한 때문에 대중적 인기가 추락했고, 오래 앓던 암을 이겨내지 못한 채 사망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자문위원회가 연 초에 내놓은 개헌안 가운데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제’가 포함되었다고 해서 하는 말이지만, 대개 이렇게 시작되어 임기가 늘어나는 코스를 따른다. 국민의 열광적인 찬양 속에 3선이 허용되고 무제한 재임이 가능케 되는 것이다.

    국민들은 열렬한 박수와 찬사로 권력자를 만들어 놓고는 그 권력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것이 인류사회의 뼈저린 경험이다. 그리고 대중 스스로 이런 성향을 완벽히 극복해낼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고 할 것이다. 장기집권이나 독재는 어림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중에 의한 독재정권의 출현은 결코 드물지 않았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정치에 대해 ‘중우정치’ ‘폭민정치’에로의 타락을 우려했던 까닭도 다르지 않다.

    지금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반대 또는 비판의 목소리를 ‘문자폭탄’으로 잠재운다. 그리고 일찍이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집권자의 생일축하 광고를 시민의 통행이 특히 많은 장소들에 내걸고 있다.

    “자발적이다!”

    그렇다, 자발적이다. 그런데 그 자발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누가 알겠는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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