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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소통’인가 ‘쇼통’인가


입력 2018.01.13 08:31 수정 2018.01.13 16:00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소통기회 줬는데도 기자들 역량 부족했다고?

'눈 맞추기' 경쟁이 불편한 질문 못하게 하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 앞서 새해 국정운영 구상이 담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 앞서 새해 국정운영 구상이 담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이 몇일째 화제다. ‘소통’을 강조하는 문재인대통령이 취임 8개월 만에 치른 ‘두 번째’ 기자회견이다.

처음 시도되는 파격적인 형식은 요즘 유행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보는 듯 했다. 잘 짜여 있었고, 활기찼다. 시작 전과 끝날 때 들려온 감미로운 가요도 화제가 되었다. 현 정부의 장기인 감성접근을 잘 반영한 멋진 연출이었다.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기자회견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탁현민 행정관 연출설이 나왔다. 분위기의 일관성을 보면 충분히 그럴 법한 일이었다. 과대포장이 아니라면 정말 능력이 뛰어나거나, 대통령의 신임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러나 긴장을 줄이기 위한 분위기 조성은 산만하다 할 정도로 회견장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형식적인 면에서 ‘사전각본이 없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분들도 많았다. 질문을 한 기자들의 인터뷰도 화제였다. 어떤 기자는 인터뷰에서 ‘큰 기대를 안했는데’, 대통령의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 질문의 기회를 잡았다면 감격해 했다. ‘큰 기대를 안했다’는 말은 과거 기자회견에서 별 활약을 못했고, 기존 기자단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기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기자가 낙점을 받아 질문을 하게 됐으니 얼마나 감사했겠는가? 기자회견에 참석한 워싱턴포스트의 도쿄 지국장 애나 파이필드(Anna Fifield)는 트위터로 “모두에게 열린 기자회견이었다는 점 또한 환영할만한 발전”이라며 “지난 정권(또는 백악관)과 달리 사전 선별 없이 기자단에게 질문을 받았다”고 놀라움을 표했다. 미국언론은 언론과 껄끄러운 트럼프대통령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와 반대되는 스타일의 한국 대통령에게 우호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손을 올리고 인형까지 흔들어 질문권을 받은 20명도 안되는 기자들을 제외하고, 기타 등등 기자들은 소득없이 들러리만 서다 돌아가야 했다.

형식 파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은 ‘내용부실’을 청와대 출입기자들 자질부족 문제로 돌린다. 형식은 좋았는데, 기자들이 그 형식에 부응할 능력이 없었다는 얘기다. 기자들이 자질이 부족해 문 대통령의 식견과 비전, 국정철학과 진심을 제대로 전달치 못했다는 것이다. 기자들을 ‘기레기’라 폄훼하고, 중국에서 폭행당한 기자들에 야유를 보냈던 분위기의 연장선상이다.

그러나 청와대 출입기자는 각 언론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최고의 엘리트 기자들이다. 그들이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주간, 발행인이 된다. 그들은 많은 수가 정치인이 될 것이고, 기업에서 주요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이들이 능력이 부족하다면, 우리 언론과 대한민국의 미래는 정말 암울하다. 노무현 전대통령 때 시도됐다가 실패한 청와대 기자실 폐쇄를 다시 검토해 봐야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입법, 행정, 사법에 이어 제4부라 불리는 언론에 조종을 울리는 것이다.

애나 파이필드 지국장이 지적했듯이, 그렇게 파격으로 운영되는 기자회견은 없거나 매우 드물다. 우리나라 역대정부에서 뿐 아니라 백악관에서도 생소한 형식이다. 왜 그럴까? 그게 언론의 본질과 거리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민주주의 시스템이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이 선이라면 언론은 필요가 없다. 국민과 정권이 직접 소통하면 된다. 그런데, 국민은 모든 사안에 관심을 둘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누군가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고, 자료를 찾고, 축적하고, 분석하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 그게 언론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대표 공론장을 의회와 언론이라 하는 것이다. 모두 생업에 바쁜 국민을 대신하고 대의하는 기구들이다.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것은 그런 대의기구를 무력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권리 구현을 방해한다. 국민을 직접 상대하며 중우정치로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시켜 독재를 벌이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나치 등 극우정당정치가 그랬고, 소련, 중공, 북한 등 공산주의국가가 그랬다.

문재인 정부는 ‘소통정부’다. 전정권 소통부재의 반사이익으로 등극한 정부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소통을 강화하는 방법은 국민들에게 멋지게 보이는 퍼포먼스를 기획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국민과 ‘쌍방향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언론을 매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소통을 강조하는 정부는 언론이 소통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와 형식을 제공해야 한다.

기자회견 전에 기자단과 소통하고 질문을 조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번 질문기회를 잡았다고 환호하는 언론을 국민은 바라지 않는다. 언론이 서로 팀플레이를 해 국민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심층적이고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는 질문자와 질문순서를 정해 놓는 것도 좋다.

물론 그 과정은 철저히 기자단이 주도해야 한다. 가능하면 전체 출입기자들이 질문을 내서 그것들을 기반으로 질문지를 만들 수 있으면 좋다. 기본질문에 각 기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가미해 뾰족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팀플레이가 강한 청와대에 맞서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려는 데는 개인능력도 중요하지만, 맞설 수 있는 팀플레이도 필수다.

우리와 달리 미국기자들은 오랫동안 한곳을 출입한다. 백악관도 마찬가지다. 출입기자들은 서로 경쟁하지만 협력도 한다. 출입하는 세월이 자연스럽게 팀워크를 만든다. 그 팀워크로 언론은 백악관에 맞서 밀리지 않고 심층취재를 하고, 언론자유를 수호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언론과 경쟁하고 때로는 언론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론위에 군립하고 휘두르지 않는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있을 세 번째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긴밀히 조율한 결과이길 바란다. 조율과정 자체가 ‘소통’이다. 현장의 낙점경쟁은 국민의 알권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장에서도 그렇지만, 대통령과 ‘눈 맞추기 경쟁’으로 평소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언론은 취재과정에서 원만한 관계를 우선시 하게 될 것이다. 이는 취재원과 기자간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방해한다. 자칫 과도한 취재로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면 낙점기회를 날리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제 ‘쇼통’인지 ‘소통’인지 선택해야 한다. 쇼통을 일방향이고, 소통은 쌍방향이다. 담화 뿐 아니라 쇼통 기자회견도 충분히 일방향이 될 수 있고, 결국 진정한 소통을 방해한다.

글/김우석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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