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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만, 노예가 되지 않는 스웨덴 학교의 경쟁


입력 2018.01.06 05:00 수정 2018.04.06 08:39        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16> 스웨덴의 모자 안진경-장수한

‘학교’가 행복한 아들과 그 ‘아들’이 행복한 엄마의 케미톡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스웨덴 8학년인 장수한 군과 그 어머니 안진경 씨. 스웨덴 교육에 안착한 모자다. (사진 = 안진경 제공) 스웨덴 8학년인 장수한 군과 그 어머니 안진경 씨. 스웨덴 교육에 안착한 모자다. (사진 = 안진경 제공)
“수한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럼 월반도 가능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선생님은 잠깐 고민을 하더니 ‘당연히 월반도 가능하죠. 하지만 그게 수한이에게 행복한 일일까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순간 무언가 묵직한 것에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수한이가 스웨덴에서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는 것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아이들과 지낼 수 있어서였는데......” (안진경)

열네 살의 장수한. 8학년.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2학년이다. 한국에서는 절대 약도 없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무서운 병이라는 ‘중2병’을 앓을 나이. 하지만 스웨덴의 8학년 장수한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수한이가 스웨덴에 온 것은 2008년, 5살 때다. 수한이 어머니 안진경 씨(42)는 스웨덴 행에 대해 ‘마치 숙명처럼’이라고 표현한다. ‘스웨덴이 복지 천국이어서?’, ‘스웨덴에서는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너무 좋아서?’ 스웨덴 이민을 선택하는 흔한 이유들이 있지만 안진경 씨는 ‘그냥 한 5년만 살아보자’는 것 외에 뚜렷한 게 없었다. 즉 수한이가 스웨덴 이민 결정의 ‘이유’가 아니었다.

5년의 시간이 흘렀다.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때 부부의 눈에 수한이가 걸렸다. 이미 4학년이 된 수한이는 학교를 즐거워했다. 아이들과 뛰어노는 것에 행복해 했다. 공부도 잘했다. 그런 수한이를 본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짐을 다시 풀었다. 스웨덴 정착을 결정했을 때는 수한이가 분명한 ‘이유’였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뛰어놀 때 수한이 모습은 천사였죠.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수한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저렇게 밝고 행복한 모습을 계속 지닐 수 있을까? 그때도 수한이가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스웨덴에 올 때는 그 어디에도 수한이가 없었지만, 스웨덴에 남기로 했을 때는 수한이의 깊고 행복한 웃음이 있었죠.” (안진경)

안진경 씨가 처음 스웨덴에 왔을 때, 가장 큰 걱정은 ‘차별’이었다. 이웃들은 어떨까? 수한이를 데리고 밖에 안심하고 다닐 수 있을까? 수한이는 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지 않을까?

스웨덴 유치원에 다닐 때 친구들과 유치원 부근 공원에서 놀고 있는 장수한 군.(사진 맨 오른쪽) 동양 아이에 대한 차별같은 것은 느껴본 적이 없다. (사진 = 안진경 제공) 스웨덴 유치원에 다닐 때 친구들과 유치원 부근 공원에서 놀고 있는 장수한 군.(사진 맨 오른쪽) 동양 아이에 대한 차별같은 것은 느껴본 적이 없다. (사진 = 안진경 제공)

집 근처 놀이터에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아빠들은 자기 아이들 뿐 아니라 수한이도 데리고 놀아주었다. 수한이는 동네 아저씨들과 그렇게 금방 친해졌고, 또 그 아이들과도 쉽게 친구가 됐다. 경계심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안진경 씨 혼자만의 것이었다.

처음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나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걱정이 컸다. 혹시 스웨덴 아이들이 낯선 동양 아이를 따돌리지는 않을까? 선생님들이 소홀하게 대하지 않을까? 그러나 수한이는 유치원이나 학교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서라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과 함께 마음까지 건강하게 자랐다.

수한이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스웨덴의 유치원과 학교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을 규제하는 법을 가르쳤다. 공부든 경쟁이든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없었다. 서로가 경쟁을 하더라도 그것조차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자신의 선택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경쟁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하기 위해 존재하는 놀이처럼 여겨졌다.

2015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한 체스 대회에 참가한 장수한 군.(사진 = 안진경 제공) 2015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한 체스 대회에 참가한 장수한 군.(사진 = 안진경 제공)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닐 때도 시간표라는 게 있었어요. 짜여진 대로 생활했죠. 하지만 스웨덴의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는 짜여진 것들이 거의 없어요. 또 ‘안된다’고 말하는 선생님이 없어요. 최소한의 돌봄으로 아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줬죠. 언뜻 어수선해 보이고 정신없는 것 같아도 그 속에서 아이들은 나름의 질서를 스스로 만들었고,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하면 안되는 지 스스로의 규칙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장수한)

“유치원에서 1년에 한두 번 재롱잔치 같은 것을 하거나, 루시아 데이 합창을 하죠. 그런데 거기에는 ‘빛나는 결과를 위한 과정의 고통’ 같은 것은 없어요. 아이들은 편하게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연습에 참여해요. 아마 한국 같으면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때려치워’라고 할 만큼 ‘엉망’인데도 선생님과 부모님은 그것을 보고 기뻐하죠. 아이들도 그 속에서 행복해 해요. 완벽하게 잘 해서 자랑스러운 게 아니고, 연습하는 과정을 즐기는 거예요. 수한이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자유로운 판단력을 배워나갔죠.” (안진경)

스웨덴 학교에서도 수한이는 객관적으로 뛰어난 아이다. 학교 성적을 공개하지 않지만, 수한이가 최상위 그룹에 속해 있는 것은 친구들도 다 안다. 또 회초리로 손가락과 등을 맞아가며 연습하지 않지만 수한이의 피아노 실력도 제법이다. 스스로 발견한 재능인 체스는 국제 대회에 나갈 정도의 실력이다. 이 모든 것에 부모님의 강요는 없었다. 부모님은 권유할 수는 있었지만 결정은 수한이 스스로 한 것들이다.

최근 스웨덴에 이주한 한국의 학부모 사이에서 스웨덴의 학업성취도가 너무 낮은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스웨덴 내부에서도 그런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OECD의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스웨덴은 OECD 회원국 중 중위권도 유지하지 못한다. 한국은 3년마다 이뤄지는 이 조사에서 거의 모든 분야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장수한 군은 지난 2016년 10월 스웨덴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 미사에서 복사가 됐다. 미사를 마친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장수한 군을 격려했다. (사진 = 안진경 제공)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장수한 군은 지난 2016년 10월 스웨덴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 미사에서 복사가 됐다. 미사를 마친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장수한 군을 격려했다. (사진 = 안진경 제공)

이런 데이터들은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스웨덴에 온 일부 부모들을 불안하게 한다. 너무 공부를 안 시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실제 스웨덴 내에서도 교육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옆 나라 핀란드의 PISA와 비교해도 스웨덴은 걱정할 만한 수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스웨덴 교육계에서는 학업성취도가 낮아지고 있는 이유를 경쟁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1992년 스웨덴의 교육 정책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스웨덴의 학교들은 이전보다 경쟁 구도를 강화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면서 학생들 간의 경쟁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핀란드의 교육전문가인 파시 살베리 교수는 “평등을 강조하던 스웨덴 교육이 평등을 포기하고 학생 개인의 성과를 강조한 후 오히려 이전보다 학생 개인의 성과가 후퇴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진경 씨는 수한이를 교육하면서 느낀 스웨덴의 경쟁에 대해 “존재하지만, 아이들 스스로가 노예처럼 속박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웨덴의 학교에도 경쟁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잘 하는 것을 격려하되 잘 못하는 것을 질책하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아이들끼리 비교하지 않아요. 잘 하는 아이에게 더 잘 해야 한다는 말로 경쟁을 부추기는 일은 절대 없어요. 결국 경쟁은 있지만 물처럼 자연스럽고, 아이들은 그 자연스러운 경쟁을 살아가는 지혜 속에서 스스로 제어하죠. 수한이는 그런 스웨덴의 기본적인 교육 환경을 잘 받아들인 것 같아요.” (안진경)

스웨덴의 학교는 방학을 할 때도 특별한 행사를 한다. 장수한 군은 지난 12월 방학식 밴드부 연주 때 피아노를 쳤다. (사진 = 안진경 제공) 스웨덴의 학교는 방학을 할 때도 특별한 행사를 한다. 장수한 군은 지난 12월 방학식 밴드부 연주 때 피아노를 쳤다. (사진 = 안진경 제공)

수한이는 나중에 대학에 진학해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순수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다. 안진경 씨는 수한이가 IT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지만 그건 부모의 바람일 뿐 수한이 생각과 같지는 않다. 물론 안진경 씨는 자신의 바람을 수한이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수한이는 주체적으로 자기 길을 선택할 것이다.

“부모님이 제게 바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부모님의 바람대로 제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죠. 그러나 제 선택은 부모님이 보시기에도 멋질 거예요. 부모님을 실망시킬 자신은 없지만 함께 행복할 자신은 있어요.” (장수한)

“스웨덴으로의 선택은 잘한 일이예요. 그건 수한이에게도, 우리 가족 모두에게도. 수한이가 학교생활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접은 것도 마찬가지고요. 자기 스스로의 완성을 위한 자기와의 경쟁,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고 챙기는 마음과 함께 수한이가 스웨덴에서 배우는 가장 큰 공부네요.”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유럽 여생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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