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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확정' 홍준표 대표에게 드리는 고언


입력 2017.12.22 14:45 수정 2017.12.22 15:25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열매 취하려말고 밀알 돼 보수재건에 매진

보수 무너지고 망하지 않은 나라 없다는 역사 교훈

'성완종리스트' 사건 관련 대법원 판결 결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사진은 홍준표 '홍산타와 함께하는 희망나눔' ⓒ데일리안DB '성완종리스트' 사건 관련 대법원 판결 결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사진은 홍준표 '홍산타와 함께하는 희망나눔' ⓒ데일리안DB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로 확정되었다.

이로써 홍 대표는 '법적으로' 지난 2년여간 자신을 옥죄어 왔던 ‘성완종 리스트’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도' 박 전 대통령 출당, 바른정당 복당, 김성태 원내대표 당선, 당협위원장 정비로 이어졌던 ‘친홍’ 체제 구축의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홍 대표에게 축하의 덕담을 건넬 여유가 없다. 안밖으로 '국가'와 '당'의 상황이 너무나 위중하기 때문이다.

상대 진영에 의한 '궤멸'이 아니라 스스로 '자멸'해 버린 보수의 재건을 위해 오히려 다음의 몇가지 고언을 드리고 싶다.

첫째, 처절한 '자기반성'이다.

'天下興亡(천하흥망) 匹夫有責(필부유책)'

"천하의 흥망은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라는 이 말은 고염무가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건립을 목도하면서 ‘일지록(日知錄)'에 남긴 말이다.

결국 지금 보수의 붕괴는 필자를 포함한 모든 보수층의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개 필부의 잘못과 지도자의 잘못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정통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였을뿐 아니라 지금도 당을 이끌고 있는 홍 대표의 책임은 일개 필부의 책임과는 다르다.

홍 대표는 이제 더이상 박 전 대통령이든, 친박 의원이든 그 누구도 탓해선 안 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한다.

우리 역사상 유례없는 보수의 대붕괴는 오로지 '내 탓'이라는 처절한 자기반성 위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의 '잘못'과 '책임'을 자인할 때, 비로소 '변화'와 '혁신'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內視反聽(내시반청)'

홍 대표는 남을 꾸짖기 전에 먼저 자기자신부터 겸허히 돌아봐야 한다.

'櫛風沐雨(즐풍목우)'

그 위에서 비로소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비에 몸을 씻는다’는 절체절명의 각오로 등 돌린 민심을 돌이키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처절한 자기 반성 없는 모든 변화와 개혁의 외침은 국민뿐만 아니라 당원들의 가슴에도 결코 깊은 울림을 줄 수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함을 홍 대표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둘째,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과감한 혁신이다.

'보수(保守)'와 '혁신(革新)',

보수의 사전적 풀이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이고,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다. 한마디로 전자는 지키려 하는 것이고, 후자는 바꾸려 하는 것이다.

그럼 과연 '보수혁신'은 어불성설인가? 둘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얼음과 숯같은 빙탄지간(氷炭之間)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보수는 언제나 혁신의 '대상'만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동서와 고금의 역사를 보면 언제나 변화와 개혁을 주도한 것은 '보수'였다.

"역사적인 성공의 절반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고, 역사속 실패의 절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되었다."

아놀드 토인비의 경구다.

결국 모든 변화와 혁신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다.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만으로는 결국 실패의 쓴 잔을 마실 수밖에 없다. 자신이 '잘났다'고 자신하고 바뀔 생각을 못하면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홍 대표는 모든 변화와 혁신은 자기부터, 기본적인 것부터, 절실한 것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깨닫고 이의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변화와 혁신만이 보수 재건의 관건임을 깨닫고 모든 것을 던져야 한다.

'작여삭골(作如削骨)',

'뼈를 깎는 고통'이란 뜻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신념의 필자는 실제 뼈를 깎는 고통을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주위에 성형상 뼈를 깎은 후배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 고통을 알고 있다.

수술 이후에도 마취가 풀리면 그 고통이 정말 엄청나다고 한다. 이처럼 처절한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사랑하는 '님'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간절한 염원 때문이 아닌가?

정치인에게 사랑하는 '님'이란 누군가? 당연히 '국민'이 아닌가? 쌍꺼풀 수술하는 정도의 고통으로는 결코 '님'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체내에 과도하게 축적된 지방을 제거하는 수술의 고통만으로도 결코 '님'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오로지 뼈를 깎는 고통만이 조금이나마 '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홍 대표는 철저히 붕괴된 보수의 재건을 위해 '작여삭골(作如削骨)'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혁신이 보수화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국민속으로 담대히 들어가야 한다.

홍 대표가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뼈를 깍는 고통으로 변혁에 앞장설 때 비로소 보수 재건의 희망은 싹트기 시작할 것이다.

셋째, 대안(代案) 있는 반대다.

북핵과 관련한 한미동맹의 균열과 코리아 패싱, 무리한 탈원전 정책, 최저임금 등 복지 포퓰리즘, 전교조에 의한 좌파 평등교육, 민주노총 등 강성 기득권 노조 등등...

포퓰리즘과 아마추어리즘, 오만과 독선의 문재인 정권은 '5년 단임'임에도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선무당 사람잡듯 마음대로 주무르며 대못을 박고 있다.

정권의 충견인 일부 정치검찰을 앞세워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내로남불'식 편파적인 정치보복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이와 같은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투쟁만으론 부족하다. 철저히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의한 대안 제시로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 경쟁이 필요하다.

"惟命不于常(유명불우상), 道善則得之(도선즉득지), 不善則失之(불선즉실지)''

'대학(大學)'에 나오는 명구다.

천심인 민심, 즉 ''천명(天命)은 항상 일정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도(正道)에 따라 선한 정치를 펼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폐족(廢族)'을 자처했던 '친노(親盧)'가 화려하게 부활했듯이, 보수도 언젠가 다시 한번 '주체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다.

결국 누가 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국민만 바라보고 나아가느냐'에 따라 민심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

홍 대표는 강력한 대여투쟁과 더불어 '더 나은' 대안의 제시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특정 계급이나 정파에 편향된 문재인 정권에 맞서 '하나된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미래보다는 과거로, 국민대통합보다는 정치보복으로, 화해와 치유보다는 분열과 상처로 끊임없이 역주행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의 항로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동서와 고금을 불문하고 '보수가 무너지고도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것은 역사의 거울이 보여주는 교훈이다.

哀民生之多艱(애민생지다난)
백성들 삶에 고초가 많음을 애달파하라

雖九死其猶未悔(수구사기유미회)
비록 아홉 번 죽어도 후회하지 마라

천고에 빛나는 낭만주의의 걸작인 굴원의 '이소(離騷)'의 명구처럼, 홍 대표는 국민들 삶에 고초가 많음을 진심으로 애달파해야 한다. 그래야만 붕괴된 보수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재건될 수 있다.

'天下利興(천하이흥), 天下害除(천하해제)', "천하에 이로움은 북돋고, 천하에 해로움은 없애는 것이 정치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하나인 '묵자(墨子)'의 경구다.

"정치적으로 행복을 약속하지 마라. 정치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은 불행을 제거하는 것이다. 추상적 선(善)의 실현을 위해 힘쓰지 말고 구체적 악(惡)의 제거를 위해 힘써라."

정치의 본질에 대해 '칼 포퍼'가 갈파한 명언이다.

홍 대표는 천하에 이로움은 북돋고, 천하에 해로움은 없애는 '생활정치'에 올인해야 한다. 홍 대표는 추상적 선(善)의 실현보다 구체적 악(惡)을 제거하는 '민생정치'에 올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떠나버린 국민의 민심이 다시 한번 '보수의 깃발' 아래 뭉칠 수 있다. 홍 대표가 보수 재건의 '한알의 밀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글/서정욱 변호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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