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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서 촛불 자랑 '중국 악몽' 연상시키기


입력 2017.12.18 05:51 수정 2017.12.18 11:21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안 주면 빼앗고 말 안 들으면 죽이는게 강자 윤리

허용된 안전 누릴 것이냐 저항하다 망할 것이냐 선택 강요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국빈만찬장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으로 부터 바둑판과 바둑알을 선물 받고 있다.ⓒ청와대 제공 = 연합뉴스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국빈만찬장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으로 부터 바둑판과 바둑알을 선물 받고 있다.ⓒ청와대 제공 = 연합뉴스

“중국은 제19차 당 대회에서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선언했습니다. 시진핑 주석께서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과 ‘중국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한국 정부도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국정기조로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베이징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의 한 부분이다. 연설은 중국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우월한 역사를 가졌는지, 한국과 중국이 오랜 세월 얼마나 깊은 우의와 은의, 그리고 인연으로 엮여져 있었는지를 강조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는 천애지기(天涯知己)라는 표현까지 역사 기록에서 찾아냈다. 조선말 실학자 홍대용이 중국학자들과 교류하며 그 같은 친교를 맺었다는 것이다. 그 천애지기가 지금은 수만으로 늘어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중국은 가혹한 대국이었을뿐

두소부지임촉주(杜少府之臨蜀州: 소부로 임명되어 촉주로 가는 두씨를 보내며)는 초당(初唐) 시인 왕발(王勃)의 5언율시다. 그 제3연과 제4연이 다음과 같다.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해내존지기 천애약비린) 無爲在岐路 兒女共沾巾(무위재기로 아녀공첨건)

“이 세상에 지기만 있다면야, 하늘 끝이라도 그 이웃인 것을. 지금 헤어지는 길에 있다고 하여 아녀자처럼 수건일랑 적시지 말자” (김달진 역해, 당시전집).

개인으로서는 그런 우정을 쌓을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정치인으로서의 한국인과 중국인이 ‘천애약비린’, 그러니까 서로 하늘 이쪽저쪽 끝에 떨어져 살아도 늘 곁에 있는 것처럼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정으로 맺어질 수 있을까?

외교사령(外交辭令)이라 해도 너무 과하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역사기록으로만 말하자면 중국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혹한 대국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 정부는 6·25전쟁 때 북한 편을 들어 30만 병력을 파병한 당시의 교전상대국이다. 1992년 한·중 수교 후 지금까지 호혜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기는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건 단지 경제부문에 한정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인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도 이루지 못했던 일을 문 대통령 자신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우의(友誼)를 통해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고 정말 믿는 것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3년 6월 27일부터 30일일까지 중국을 국빈방문했다. 시 주석은 첫날의 국빈만찬에 이어 이튿날 특별오찬까지 베풀며 극진히 대접했다. 두 정상이 이틀 동안 함께한 시간은 무려 7시간 반이었다. 시 주석은 댜오위타이(釣魚臺) 양원재에서 특별오찬을 가진 후 박 전 대통령에게 서예작품을 선물했다. 당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5언절구 ‘관작루에 올라(登觀雀樓)’였다.

白日依山盡(백일의산진) 黃河入海流(황하입해유) 欲窮千裏目(욕궁천리목) 更上臺層樓(경상대청루)

“해는 서산에 가리어 사라지고 황하는 바다에 들어가 흐른다. 천리 밖을 모두 다 보기 위하여 한층 누각을 다시 오른다”(위의 책).

당당하지 못하면 노예가 된다

한중 양국의 관계가 먼 미래까지 발전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 선물에 담았을 것이다. 그 후로도 박 전 대통령과 시 주석의 관계는 특별하다고 할 만큼 돈독했다. 그런데 그 우의가 사드 배치 한 가지 문제만으로 깨뜨려지고 말았다.

문 대통령은 국빈으로 갔지만 그에 걸맞은 대접은 받지 못했다. 시 주석과는 정상회담과 국빈만찬에서만 만났을 뿐이다. 리커창 국무총리는 베이징에 있으면서도 우리 측의 오찬 제의를 거부했다. 문 대통령은 3박 4일의 방중 기간에 단지 두 차례만이 중국 측 인사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청와대 측은 문 대통령의 서민식당 식사 등 모든 일정이 면밀히 계획된 것이었다고 하는 모양이지만 한심한 견강부회다. 서민문화 탐방에라도 나섰다는 것인가. 아니면 소풍가는 기분이었다는 것인가?

우리 취재기자들이 중국 측 경호원들의 집단 폭행으로 중상을 입은 것도 홀대의 한 양상이다. 당사자들이나 중국정부 측은 사과조차 않고 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기는 태도 또한 중국인의 이웃 국가들에 대한 기본 인식이라는 점을 유념할 일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형성되고 굳어진 인식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시 주석은 지난 10월의 제19차 당 대회와 1중전회를 통해 권력을 확고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당의 헌법인 당장에 올린 데다 후계자를 지정하는 전통도 무너뜨림으로써 1인지배체제의 기반을 강화했다는 분석 기사들이 이어졌었다. ‘시 황제’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였다.

중국 권력의 내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인근 국가들에 대한 중국 리더들의 의식과 의도는 짐작이 가능하다. 이들에게 굽히고 들기로 하면 한이 없다. 힘이 있는 측은 약자에 대해, 시키는 대로 하면서 허용된 안전을 누릴 것이냐 저항하다 망할 것이냐를 묻는다.

1942년 2월 싱가포르를 지키던 영국군의 아서 퍼시벌 중장은 일본의 야마시타 도모유키 대장으로부터 항복 압박을 받았다. 야마시타가 퍼시벌을 다그쳤다. “예스카 노카?” 영국군은 항복하고 말았다. 그게 강국의 태도다.

훗날에 시황제가 된 진왕 정(政)이 안릉군에게 다른 곳의 땅 사방 500리와 안릉의 땅 사방 50리를 맞바꾸자고 했다. 안릉군이 당저(唐且)를 사신으로 보내 이를 거절했다. 아무리 달래도 듣지 않자 진왕은 크게 노했다.

“천자의 분노를 모르는가?” 당저가 모른다고 하자 진왕은 일갈했다. “천자의 분노는 사자백만(死者百萬) 유혈천리(流血千里)야!”

이런 게 강자의 윤리다. 안 주면 빼앗고 말 안 들으면 죽이는 것이다.

당저가 되물었다. “대왕께서는 선비의 분노를 모르십니까?” 그는 선비 세 사람의 고사를 이야기 한 다음 “지금 한 사람이 더 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선비의 분노는 다섯 걸음 안에서 왕을 찌르고 자기도 죽는 것입니다” (전국책).

한미동맹 파기를 각오하는가

이게 약자가 사는 법이다. 당당하지 못하면 최선이라 해도 노예 신세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확고하게 견지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포함한 모든 문제는 대화·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문 대통령이 시 주석과 합의한 4대원칙이다.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은 없다. 다만 미국의 발목을 잡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 군사적 옵션은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대북 압박수단이다. 그걸 용납 못하겠다고 한중 양국이 합의했다. 미국이 이를 거부할 경우 우리는 한미동맹을 파기할 것인가.

군사적 옵션을 미국이 포기한다고 치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미·북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거쳐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우리는 중국의 보호아래 영구평화를 누리게 될까? 이 꿈 같은, 그렇지만 백일몽 같은 희망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이 중국의 주문을 그대로 수용해서 4대원칙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홀대를 못 면한 까닭은 또 뭘까?

이번 중국 방문에서는 말을 아낀 것 같지만 그간에 문 대통령과 정권의 핵심인사들은 너무 자주 ‘촛불혁명’을 강조해 왔다. 기실 문 대통령이 베이징 대학교 연설에서 한 말, 즉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국정기조로 선언했다”는 표현도 은연중에 ‘촛불혁명’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 1당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 중국의 지배자들에게 가장 큰 악몽은 1989년의 6·4천안문 사건이다. 수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날 10만 명에 가까운 인민해방군과 전차·장갑차를 동원해 시위대에 사격을 가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채 민주화운동은 50여일 만에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그것으로 중국 정권의 고민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재연될 개연성은 여전히 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중국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결코 용인할 수가 없는 절대적 금기사항이다. 그런데 한국의 문 대통령과 그 정부는 유엔총회 연설을 비롯, 기회 있을 때마다 국제사회에서 ‘촛불혁명’을 전파하기에 열심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경우는 지난 3일 중국 공산당과 세계 정당 간 고위급 대화에 참석해서 기조연설을 통해 “대한민국 시민들은 전 세계가 깜짝 놀란 ‘촛불혁명’으로 민의에 어긋난 길을 걸었던 정권을 탄핵했고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고 역설했다. 일당 독재를 하고 있는 중국의 공산당 주최 행사에서 ‘국민의 저항’을 자랑한 것이다.

앞으로도 촛불혁명을 내세우는 한 중국 정부의 우리 정부에 대한 경계심은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에 가서 그런 말을 않겠다 한다고 양해될 일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좀 더 만만해지면 아마 국제무대에서의 발언에 대해서도 제약을 가하려 할 것이다.

문 대통령과 정부, 과연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이제부터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줘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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