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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표, 서울 송파구(을)에 출마하라


입력 2017.12.15 13:00 수정 2017.12.15 10:40        황태순=정치평론가

<칼럼>내년 재·보궐선거 ‘미니 총선’ 될 수도

"자기희생이 있어야 감동을 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5일 국민의당 최명길 의원(서울 송파구을)이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송파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내년 6월 13일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다. 현재까지 내년 보궐선거가 확정된 지역은 두 곳이다. 송파구(을)과 함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국회의원을 지냈던 서울 노원구(병)이 그곳이다.

내년 재·보궐선거 ‘미니 총선’ 될 수도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르는 내년 지방선거는 경우에 따라서는 주(主)선거인 지방선거보다 객(客)선거인 재·보궐선거가 더 큰 정치적 함의를 띠는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을 보일 수 있다. 현재 확정된 곳은 두 곳에 불과하지만 1·2심에서 국회의원직 상실형을 받고 대법원의 최종판결만을 기다리는 곳이 네 곳이다.

게다가 내년 지방선거 때 광역단체장에 나서겠다고 칼을 가는 중진 국회의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서울은 물론이고 경기를 비롯해 곳곳에 전운이 감돈다. 내년 6월 재·보궐선거는 여차하면 흔히 언론에서 표현하는 식으로 그야말로 ‘미니 총선’이 될 수 있다. 이는 뒤집어 이야기하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결코 놓칠 수 없는 거대한 시장이 열린다는 뜻이다.

홍 대표의 대구 정착은 설득력 없어

지난달 30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대구를 찾았다. 홍 대표는 이날 대구에서 열린 한 지역 언론사 주최 특강에서 연말 조직개편 때 현재 공석인 달서구(병)이나 북구(을)중 한 곳의 당협위원장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그 이유를 두 가지 들었다. 첫째는 모든 친구들이 대구에 있어 마지막(정치인생)을 대구에서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보수의 아성인 대구·경북을 수성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어째 와 닿지가 않는다. 홍 대표가 초·중·고를 대구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유학 와서 고려대학교를 나오고 사법고시 붙어 검사생활 11년 하는 동안 대구·경북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구(갑)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4선을 모두 서울에서 했다. 2012년 경남지사에 당선된 후 쭉 5년 동안 경남에 머물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보수당 특유의 웰빙 체질 깨야

내년 지방선거는 대구·경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홍 대표는 제1야당의 대표로서 전국을 바라봐야 한다. 더군다나 현 문재인 정부는 내년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권력까지 석권한 다음 그를 바탕으로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회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이후 2022년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여 장기 집권하겠다는 그랜드플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당 계열은 세 가지 큰 약점이 있다. 첫째가 기회주의다. 두 번째는 보신주의다. 세 번째는 항상 타이밍을 놓친다. 한 마디로 ‘웰빙 체질’이다. 그러니 감동을 주지 못한다. 감동을 주지 못하니 여차하면 외면당하기 일쑤다. 이런 본질적 약점들은 세월이 좋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을 맞으면 여지없이 허약한 체질이 드러나곤 한다.

정치도 거칠게 표현하면 장사다. 꿈과 희망을 파는 장사다. 소비자인 유권자들은 물건을 고르면서 신중하게 생각한다. 꿈과 희망을 파는 장사꾼의 진정성을 본다. 그 물건을 만드는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를 본다. 자기 챙길 것 다 챙기고 내놓은 물건인지, 아니면 모든 것 다 바쳐 만든 물건인지를 본다. 또 소비자가 꼭 필요로 할 때 물건을 내놓아야 팔린다.

자기희생이 있어야 감동을 준다

물론 보수당 계열도 감동을 준 적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6·29 민주화선언’이다. 또 2004년 박근혜 대표의 ‘천막당사’도 보수층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2005년 한 겨울에 53일 간의 장외투쟁으로 노무현 정부의 ‘사학법 개정’을 원천무효 시켰다. 그 힘으로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 2007년 정권을 탈환했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85년 2월 12일 1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 당시 김영삼이나 김대중은 모두 정치규제를 받고 있었다. 자신들이 나갈 수 없는 선거였지만 그들은 도박을 한다. 신민당을 급조한다. 그리고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최고 실세 이종찬 의원이 있는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중구에 70세의 노(老)정객, 그것도 충북 청주에서만 4선을 한 이민우 총재를 전략공천 한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관제(官制)야당이라는 민한당을 꺾고 신생 신민당이 제1야당이 됐다.

1994년 8월2일 대구 수성구(갑) 보궐선거가 있었다. 박철언 의원이 김영삼 정권에 의해 구속되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자 박 의원 측에서는 부인인 현경자씨를 내세웠다. 서슬이 시퍼런 김영삼 정권 아래에서 그것도 보수적인 대구에서 여성이 구속된 남편 대신 나온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대박을 냈다. 여당 후보를 더블스코어도 넘는 차이로 꺾었다. 대구·경북의 정치적 주도권을 박철언 의원이 쥐게 된 것이다. 이후 1996년 총선에서는 박 의원이 이끄는 자민련이 대구를 석권한다.

1997년 12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대선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떠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총재로 복귀한다. 1999년 홍준표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서울 송파구(갑)에서 보궐선거가 열렸다. 이때 이회창 총재는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다. 이후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할 때까지 줄곧 정국운영의 칼자루를 쥐게 된다.

홍준표 스스로 ‘태풍의 눈’이 되어야

홍준표 대표는 대구 당협위원장 신청을 하면 안 된다. 사람들이 속으로 얼마나 비웃겠는가? 땅 집고 헤엄치려고 하느냐고 콧방귀를 뀔 지도 모른다. 당 대표가 선두에 서서 사즉생(死卽生)의 결연함을 보이지 않는데 어느 누가 죽기 살기로 앞장서겠는가.

홍준표 대표는 모든 것을 걸고, 내년 송파구(을) 보궐선거에 출마해야 한다. 여당에서 거물을 공천해주면 더더욱 좋다. 예를 들어 안희정 현 충남지사가 나와도 좋다. 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나와도 좋다. 그러면 전 국민의 눈길은 송파구(을)로 쏠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서울시장, 경기지사 그리고 홍 대표가 그토록 걱정하는 대구시장과 경북지사는 물론이고 부산·울산·경남·인천도 함께 분위기를 탈 수 있다.

선거는 구도와 인물 그리고 바람이다. 홍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좋은 인물들을 공천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스스로가 ‘태풍의 눈’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정치인생을 접는 쪽박이다. 구차하게 연명하느니 어차피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수를 던져야 하지 않을까. 목숨을 걸지 않는 승부사는 승부사가 아니다.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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