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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이민 2세가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방법


입력 2017.12.09 08:35 수정 2017.12.21 17:25        이석원 객원기자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13> 30세 청년 이태민의 일갈

스웨덴에서 태어나 KTH 졸업 후 SEB에서 일하는 재원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스웨덴 이민 2세인 이태민 씨는 초등학교 4년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 어린이들의 정서가 낯설지 않다. (사진 = 이태민 제공) 스웨덴 이민 2세인 이태민 씨는 초등학교 4년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 어린이들의 정서가 낯설지 않다. (사진 = 이태민 제공)
“만약 내가 스웨덴이 아닌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사고방식과 삶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달랐을 겁니다. 한국에서는 교육은 주입식 일변도였고, 토론을 잘 안가르치더군요. 기획사의 정해진 틀로 만들어지는 연예인 같아요. 창의성을 요구하는 소프트 스킬(Soft skill)이 약한 반면, 수학 등 정해진 정답을 맞히는 하드 스킬(Hard skill)은 굉장히 뛰어나죠. 그러다보니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해요. 하지만 그래서일까,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들도 생겨난 것 같아요.”

한국의 초중고 학생들은 학업과 진로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사실상 한계 상황에 도달해 있다. 사회적 고민과 교육계의 노력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지난 50년 이상의 시간동안누적되고 고착된 상황들은 쉽게 해결점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다보니 그 돌파구를 나라 밖에서 찾으려는 애씀이 점점 더 심해져간다. 이전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려고 애썼다면 요새는 아이들 스스로 자기 삶의 척박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실정이다.

최근 스웨덴과 관련한 인터넷 포털의 카페에는 심심찮게 고교생 이하 청소년들이 스웨덴으로 유학을 오고 싶다는 글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스웨덴은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부모 없이 홀로 유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스웨덴 거주허가를 취득하고 개인 신분번호(퍼스널 넘버)를 받아야만 자녀가 스웨덴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문의자들이 내뱉는 한숨 소리는 크다. 그 아이들은 대학이 아닌 고교 이하의 학업을 스웨덴에서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민 2세 이태민(Temin Lee. 30) 씨는 그런 아이들이라면 가장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태민 씨는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80여일 전 서울에서 7400여 km 떨어진 스웨덴 스톡홀름의 솔렌투나(Sollentuna)에서 태어났다. 일찍 스웨덴에서의 공부를 결심한 어머니가 시작점이었다. 스웨덴에서 공부하고 취업한 어머니가 한국에 살던 아버지와 결혼한 후 완전히 스웨덴에 정착함으로써 태민 씨는 한국인이 아닌 스웨덴인으로의 삶이 결정된 것이다.

사촌동생의 고교 졸업식 때 가족과 함께. 사진 왼쪽부터 이태민 씨와 어머니, 사촌동생과 친동생. (사진 = 이태민 제공) 사촌동생의 고교 졸업식 때 가족과 함께. 사진 왼쪽부터 이태민 씨와 어머니, 사촌동생과 친동생. (사진 = 이태민 제공)

당연히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스웨덴에서 모든 학업을 마쳤다. 그런데 초등학교의 경우 스웨덴에서 마치기는 했지만 시작은 한국에서였다. 태민 씨는 스웨덴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4학년까지 다녔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 산 시간은 길지 않지만, 유년의 기억으로도 태민 씨는 한국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학업과 진로의 부담감, 그리고 학교 안 경쟁에 대해 압박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가지는 것은 불가피하죠. 주변의 모든 것은 아이들에게 압박으로 다가오니까요. 제가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도 그랬는데, 지금 아이들은 더하겠죠. 그래서일까? 한국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수 많은 것들이 있더군요. 그에 비하면 스웨덴은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아마도 그래서 한국의 학생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스웨덴과 한국을 오간 그의 유년은 자칫 심한 혼란일 수도 있었다. 두 나라에 엄연히 존재하는 심각한 문화 차이를 온몸으로 받아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민 씨는 아무런 무리없이 다양성의 인정과 넓은 포용이 있는 스웨덴에서 이민 2세로 살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그가 적지 않은 인종 차별의 분위기를 느끼지 않았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느낌을 거의 받지 않고 살았다. 머리카락색도, 피부색도, 게다가 확연히 다른 눈동자의 색깔도 그가 스웨덴의 건강한 청년이 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스스로였다고 한다.

“초중고 모두 백인 스웨덴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 그들과 같이 지냈는데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모두가 외모나 배경에 큰 편견을 두지 않아서 나 역시 그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가 거의 없었죠. 그들보다도 오히려 제 자신이 친구들과 외모와 배경이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아마 오히려 제가 마음을 완전히 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아닐가 싶어요.”

한 벌에 수백만원 짜리 패딩을 입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공부를 잘 하는 아이와 학업 성적이 낮은 아이, 심지어는 ‘수려한 외모’를 지닌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가 차별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태민 씨는 이야기한다. 그가 한국에서 보낸 그 짧은 어린 시절, 그 때 보고 느꼈던 일상화된 차별을 그는 스웨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이태민 씨는 현재 스웨덴 최대 은행인 SEB에서 일하고 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출장 갔을 때의 모습니다. (사진 = 이태민 제공) 이태민 씨는 현재 스웨덴 최대 은행인 SEB에서 일하고 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출장 갔을 때의 모습니다. (사진 = 이태민 제공)

그는 스웨덴은 물론 유럽 전체에서도 꽤 명문으로 알려진 KTH(Kungliga Tekniska Högskolan. 왕립공과대학) 출신이다. 그리고 지금은 스웨덴 최대 은행인 SEB의 IT 분야에서 솔루션 엔지니어(Solution Engineer)로 일하고 있다 은행에서 사용하는 어플들을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부서다.

태민 씨의 이런 성장과 사회 진출은 꽤 많은 한국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학창 시절 내내 그야말로 ‘목숨을 건’ 학업을 수행하지도 않았다. 물론 친구들과 극한에 이르는 경쟁을 한 적도 없다. 그리고 스펙을 쌓기 위해 하루를 30시간처럼 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멋지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민 2세에 대한 막연한 마음졸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의 겪은 적 없다고 해도 인종 차별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또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가치관의 혼란이나 정서의 불안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또한 태민 씨는 ‘기우’라고 단정한다.

“이민 2세라는 게 특별한 의미는 없죠. 객관적으로 보면 모두 스웨덴 국적이니까요. 굳이 따지자면 이민 2세의 경우 오히려 이 사회 저 사회 모두에 유연하게 통합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죠. 어차피 스웨덴이라는 국가가 순수한 혈통에 대한 강박 관념 같은 게 거의 없고, 조상까지 올라가면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이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이민 2세라는 말도 결국 한국 사람들의 구분법 아닐까요?”

태민 씨는, 상당히 많은 스웨덴의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이스포츠(e-sports)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국제 무대에서 이스포츠의 혁혁한 성적을 낼 때 한국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반면 지난 해 겨울 태민 씨는 한국이 가장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현직 대통령의 스캔들이 시시때때로 스웨덴 언론에 보도될 때, 회사 동료들이 그 이야기를 할 때, 한 번도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던 한국이 처음 부끄러웠다고 한다.

태민 씨는 한국이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국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 결과에 중점을 두어서 지속가능성과 프로세스에 포커스를 안둔다’는 것이란다. 그런 것은 정치 경제 교육은 물론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삶에 큰 변화를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민 정책과 교육 방식에 있어서 지금과는 달리 보다 전향적이고 개방적으로 발전했으면 한다는 바람도 밝힌다.

마침 인터뷰 며칠 전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추첨이 있었다. 한국과 스웨덴이 같은 조에서 첫 경기를 갖게 된 것이다. 태민 씨는 과연 한국과 스웨덴 어느 쪽을 응원할까? 태민 씨는 독일을 응원하겠단다. 우문에 대한 현답했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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