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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리의 죽음과 해리 왕자의 결혼


입력 2017.12.09 09:23 수정 2017.12.09 09:42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인종차별로 쓸쓸히 죽은 왕가의 며느리

유색인종에 이혼녀이지만 따뜻하게 며느리로 맞는 영국 왕실

해리 왕자의 약혼녀 메건 마클이 이혼녀라는 사실을 보도한 'seventeen'. Yaoo 홈페이지 화면 캡처. 해리 왕자의 약혼녀 메건 마클이 이혼녀라는 사실을 보도한 'seventeen'. Yaoo 홈페이지 화면 캡처.

영국의 해리 왕자가 결혼한다고 한다. 해리 왕자 커플의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결혼할 여성이 흑인 계열로 보였기 때문이다. 선뜻 믿기지 않았고, 혹시 사진이 잘못된 것일까 싶어 다른 기사들을 몇 개나 찾아봤다. 그럴 정도로 유색인종의 영국왕실 입성은 놀라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세계 어디나 왕실은 혈통, 인종의 순혈성을 매우 중시한다. 얼마 전 하와이에서 쓸쓸히 사망한 줄리아 리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녀는 대한제국의 황태자였던 영친왕의 아들 이구의 부인이었다. 영친왕의 가족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견제로 귀국하지 못하다가 박정희 정부 때에서야 들어올 수 있었다. 귀국한 후 줄리아 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이씨 왕가 종친들이 줄리아 리의 인종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서양인이 세자빈이 될 수 있느냐는 반발이었다. 일본 왕족인 이방자 여사도 서양인 며느리를 마땅치 않게 여겼다고 한다.

이런 게 왕실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그런데 서구권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정평 난 영국 왕실이 왕자의 흑인혼혈 부인을 받아들인 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이름은 메건 마클로 조명 감독인 백인 아버지와 테라피스트인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6세 되던 해 이혼했고, 그녀는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 졸업장을 땄다. 이것을 보면 가정환경도 그다지 유복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인이다. 심지어 이혼 경력도 있다. 그녀는 헐리우드 프로듀서 트레버 엥겔슨과 6여년 열애 후 2011년에 결혼, 2013년에 이혼했다고 한다. 아버지나 전 남편의 직업은 또, 연예계통이다.

1936년, 영국의 에드워드 8세가 심슨 부인과 결혼하겠다고 하자 영국 왕실이 발칵 뒤집혔다. 그녀가 미국인이자 이혼녀이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8세는 왕위냐 심슨 부인이냐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했고 결국 왕위를 버렸다.

그런데 2017년에 영국왕실은 미국인에, 이혼녀에, 유색인이기까지 한 메건 마클을 왕손의 부인으로 받아들였다.

찰스 왕세자가 원래 사랑했던 건 다이애너 비가 아니라 카밀라 파커 볼스였다. 하지만 카밀라는 평민이었기 때문에 결국 귀족인 다이애너 비가 쇼윈도 부인으로 선택됐다. 이럴 정도로 평민의 왕실 진입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해리 왕자의 형인 윌리엄 왕자가 평민인 케이트 미들턴과 결혼하며 이 금기를 이미 깼다. 그리고 이번에 해리 왕자가 다시 평민과 결혼하게 됐다. 그것도 미국의 하층민 출신과 말이다.

이 사건은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영국 왕실마저 미국 유색인 이혼여성을 받아들일 정도로 세상이 빠르게 진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한국 사회에 있던 편견의 벽은 영국 왕실처럼 빠르게 사라지고 있을까?

우리는 보통 미국과 영국이 인종차별 한다며 비난하지만, 우리도 심각한 상황이다. 심지어 인종이 같은 조선족마저 차별한다. 같은 내국인들끼리도 지역별로 선을 긋는다. 여성차별을 시정하자는 운동은 여성혐오란 장벽에 부닥쳤고, 성소수자 차별 문제는 정치인들이 입밖에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반발이 크다.

메건 마클은 지난 미 대선 당시 힐러리를 지지하며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미국을 떠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진보성향이다. 우리나라의 부유한 최상류층 집안에서 이런 진보 성향의 하층민 출신 타자 며느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능해보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보수성이 강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왕실보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보수성이 더 큰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리도 이제는 좀 더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사회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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