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이 북미 문제라고? 우린 구경이나 하자고?

최종편집시간 : 2017년 12월 17일 00:03:20
북핵이 북미 문제라고? 우린 구경이나 하자고?
<칼럼>운전자 역할은 커녕 구경하는 거간꾼 노릇
결국 우리는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속의 개구리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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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04 08:07
이진곤 언론인
▲ 북한 조선중앙TV가 30일 방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의 전날 발사 영상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모니터를 배경으로 발사를 지켜보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북 핵·미사일 문제는 1차적으로 북한과 미국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언론들이 보도한 바로는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링 밖에서 구경이나 하면 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운전자 역할은 애초에 글렀지만 거간꾼 노릇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심산인가?

도대체 청와대 높은 이의 이 같은 배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①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한다 해도 동족인 우리를 상대로는 결코 그 힘을 과시하거나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통일 후엔 우리의 전략자산이 된다.

②북한의 핵무장 이유는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확약 받기 위해서다. 평화조약만 체결된다면 북한 핵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③기실은 이 모든 문제가 미국 때문에 빚어졌다. 미국이 6·25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주한미군을 진작 철수시켰더라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까닭이 어디 있었겠는가. 북한의 핵무장은 자위적 수단일 뿐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한사코 미국 말리고 나서더니

이제까지 많이 듣고 읽어왔던 주장들이다. 아니면 이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①핵비확산조약은 미국의 핵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다. 비보유국으로서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개발, 보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보유를 둘러싼 갈등은 근본적으로 미-북간의 문제일 뿐이다.

②미국이 다른 나라의 핵무장을 반대하고 억압할 권리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회의가 따를 수밖에 없다.

③미국이 끝까지 북한의 핵무장을 허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미국 스스로 그 문제를 북한과의 사이에서 해결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그 일에 끌려들어갈 이유가 뭔가.

가능성은 낮지만 아래와 같은 이유들로 그 청와대 높은 인사가 북한 핵문제를 애써 외면하려고 할 수도 있겠다.

①“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문재인 대통령, 7월 11일 국무회의). 문 대통령의 이 언급처럼 북한 핵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 또한 우리를 상대로 이 문제를 논의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국과 북한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②우리로서는 최우선이자 지상의 과제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것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우리의 동의 없는 한반도 내에서의 군사행동은 용인할 수 없음을 거듭 천명해 왔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염두에라도 둘까봐 우려를 표해 온 것이다. 미국만 평화를 원하면 문제될 일이 없다.

③북한으로서는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수립, 유지할 수 있다면 군사적 모험주의에 체제의 운명을 맡기려 할 리가 없다. 미국이야말로 북한의 핵무장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는 전쟁 유발세력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지구적 규모의 패권행사에 중독됐다. 미국이 욕심을 버리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우리 정부 안팎의 주요 인사들이 미국과 북한간의 직접 협상과 평화조약 체결 등을 기회 있을 때마다 촉구해 온 까닭이 달리 있겠는가.

단지 필자의 엉성한 추측일 뿐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아무래도 대의명분보다는 자신의 이념적 정향(定向)에 더 충실했을 개연성이 더 높다. 그런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여겨지지만 사람 속을 누가 알랴.

발언의 배경이 무엇이든 우리는 지금 냄비 속 개구리 신세다. 따뜻이 덥혀지는 수온에 몸을 담그고 안일에 빠져 있다가 이 지경을 맞고 말았다. 이미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을 때도 우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미국이 해결해 줄 터였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미국에 대한 기대 혹은 의존의 산물이었다. 그 이전, 그러니까 1992년에 이미 남북기본합의서와 함께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발효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서들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용북·친북(이라고 여겨지는) 인사들은 그 책임의 대부분을 미국과 당시의 우리 정부 측에 떠넘김으로써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 가속화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우리가 곧 냄비 속 개구리였다

북한 핵 해결의 1차적 책임 당사국이 미국과 북한이라고 하자. 북한 핵에 1차적으로 노출될 나라는 어디인가? 휴전선 남쪽의 5000만 명이 훨씬 넘는 대한민국 국민보다 더 쉬운 위협 대상이 또 있을까? 그 점에서 우리는 조롱에 갇힌 새, 울타리에 갇힌 양의 처지로 내몰리는 중이다. 미국이 식민 종주국처럼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공인 받고, 미군이 한반도에서 떠난 후의 우리 신세는 어떻게 될까?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28일 국방부 업무보고를 듣는 자리에서 “북한과 남한의 GDP(국내총생산)를 비교하면 남한이 북한의 45배에 달한다”며 “절대 총액 상 우리의 국방력은 북한을 압도해야 하는데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가 정작 하고자 한 말은 “그 많은 돈(국방비)을 갖고 뭘 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중략) 막대한 국방비를 투입하고도 우리가 북한 군사력을 감당하지 못해 오로지 (한·미) 연합방위 능력에 의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그건 곧 ‘왜 자주국방에 자신이 없느냐, 왜 전작권 환수를 주저하는 것이냐’는 의미일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질타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전직 국방장관과 군 장성들을 겨냥해서 “그 많은 돈 떡 사 먹었느냐”고 호통을 친바 있다. 표현이 흡사하다. 당연히 의미도 같게 들린다.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그 많은 돈’을 ‘떡 사먹은’ 사람은 없다. 그 돈으로 우리 군의 장비가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대화 첨단화된 것은 맞다. 반면에 ‘그 많은 돈’을 들여서도 핵무장은 못해냈다. 그렇다고 이를 공격해서 될 일은 아니다. 북한처럼 NPT(핵비확산조약)에서 왜 탈퇴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 핵을 전제로 할 때 전작권 환수는 해답일 수 없다. 물론 현명한 대안도 되지 못한다. 기분대로 말 하란다면 ‘바보 같은 자존심’일 뿐이다.

선전선동하기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한번 말해보시라. 북한 핵의 1차 당사국은 미국과 북한이라 하고, 우리는 몇 차에 있거나, 있어야 하는가? 북한 핵이 실전 배치되면, 미국이 북한과 평화조약이라도 맺고 한반도에서 군대를 빼내면 우리는 도마 위의 물고기 꼴이 되기 십상이다. 말할 것도 없이 칼자루는 김정은의 차지다.

북핵의 표적 0순위가 우린데

문 대통령이 토로했듯이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우리 정부(그 청와대 고위 관계자라는 이)’는 “북한과 미국 간 대화를 통한 외교적 방식의 해결을 희망한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북-미 직접 대화에 있어 (한국이 빠진다고 해서) ‘코리아 패싱’을 우려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고 들린다. 아예 “그건 우리 일이 아니고 우리가 상관할 일도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격이다.

이 높은 분이 과거에 어떤 주장을 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잖다. 아마도 ‘미국의 군사적 대응 반대, 대화와 외교적 방식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끈질기게 주장했을 듯하다.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을 완강히 반대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훗날 ‘후회’한다고 술회하기라도 했다. 그렇지만 북한을 역성들어 온 사람들은 일이 이 지경에 이른데 대해 일언반사(一言半辭) 반성의 말이 없다. “어쩌라고? 전쟁이라도 해야 한다는 거냐?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미군부터 내보내라.” 이런 핀잔이라도 안 들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진작 화근(禍根)을 제거하는 일에 미국과 함께 지혜를 모았더라면 우환덩어리를 이 정도로 키워놓지는 않아도 됐을 것이다. 북한체제가 주민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면서도 핵무장에 매달릴 때 우리가 그 많은 돈을 퍼부어 주지만 않았더라도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수월했으리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운전석에 앉겠다던 문 대통령과 그 측근인사들이 그새 왜 마음을 바꾸어, 문제를 미국과 북한에 떠넘기고, “우리는 무시해도 돼”라고 한다는 것인가? 미국의 문제라면 그 나라에 맡기면 될 텐데 왜 ‘대화’ ‘외교’ ‘평화’ 등 방식을 주문하거나 간섭한다는 것인가?

이 절박한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을 두고 말하자면 북한 핵은 ‘0차적’으로 우리의 문제이고, 북핵의 표적 ‘0순위’가 바로 우리다. 이미 냄비 속의 물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1차적으로는 미국과 북한의 문제’ 운운하는 사이에도 수온은 비등점을 향해 치솟고 있다.

상호 무력대치하고 있는 양측이 함께 오순도순 평화를 구가할 수 있다? 극히 비정상적인 국가체제를 가진 집단이 상대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발휘할 때나 가능한 꿈같은 일이다. 마음으로는 꿈에서라도 그 천국을 경험해 보고 싶다. 김정은이 천사가 되는 그런 천국을!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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